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오로라 공주>라는 드라마를 시청해 왔다. 그 드라마를 다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본 날이 보지 못한 날보다 많았다. 그 드라마를 본 사람으로서 느낀 점을 써 봤다.

 

 

 

극본 : 임성한

연출 : 김정호, 장준호

방송 : 월-금 저녁 7시 15분

 

 

 

 

1. 함부로 유언하지 말 것

 

 

 

남동생 황마마가 잠들기 전, 세 누나는 매일 모여 황마마를 위해 기도를 한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하라는 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셋이 모여 밤마다 기도하는 것이 정해져 있으면 나 같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그들은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태도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도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으로 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병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스트레스니까. 정해진 시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들이 밤 기도를 해 온 것이 이십 년이 넘은 것 같은데,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유언을 할 땐 상대가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지 아닌지를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함부로 유언하지 말 것.’

 

 

 

 

 

2. 본전 생각을 하지 말 것

 

 

 

세 누나들 중 특히 큰누나는 남동생을 자식처럼 귀하게 여긴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남동생 황마마가 하는 일이 자기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운다는 게 문제다. 황마마가 오로라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를 키우느라 나는 결혼도 못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반대를 했다. 둘이 부부싸움을 하며 오로라가 황마마의 뺨을 때릴 때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여자한테 뺨을 맞느냐며 둘을 이혼시키고 만다. 그 둘이 이혼하게 된 이유가 큰누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작 황마마는 오로라와 이혼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상황에 이끌려 이혼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불행해진다. 아이러니다. 남동생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던 큰누나가 오히려 남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 사랑이 크면 기대치도 크고 실망도 큰 법.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고 본전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본전 생각'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운 어머니도 아들의 신붓감을 고를 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본전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사랑한다는 여자가 맘에 들지 않아 결혼을 반대하여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많은 드라마가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본전 생각을 하지 말 것.’

 

 

 

 

 

 

......................<후기>

 

 

일반적으로 ‘본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자식인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난 딸들에게 본전이 생각나는 일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해 뭔가 희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으니까. 내 인생을 사느라 딸들에게 마음을 많이 쓰지 못한 것을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딸들이 나처럼 살게 되길 바란다. 딸들 역시 누군가에게 본전이 생각나는 일을 하기보다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길 바란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3-12-1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생각이 나요. 거기서 어머니가 했던 말이요.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페크pek0501 2013-12-18 17:08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반가워서 기절할 뻔했어요.
제가 전화를 받는 사이에, 저자께서 친히 방문해 주시디니 영광인 걸요.
(나도 저자가 되고 싶다.ㅋ)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이 말을 기억해 놓겠습니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행동과 따로 놀 때가 있다는 것, 또는 행복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해 그렇게 했는데 결과는 어긋나고 말 때가 있다는 것...

마녀고양이 2013-12-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언니, 명성이 자자한 오로라 공주를 보셨네요.
저는 한번도 못 봤어요..... 크크, 본전 생각을 하지 말 것.
맞아요, 자녀들 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 다 그런데... 저는 가끔 본전 생각이 나니... ㅠㅠ

페크pek0501 2013-12-18 17:24   좋아요 0 | URL
친정에서 저녁을 먹을 때 어머니가 그 드라마를 보시기에 따라 보게 되었어요.
드라마가 죽는 사람도 많고 내용도 엉망이라서 말이 많지요.
그래도 그 정도면 재밌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작가는 참 위대하구나, 하는 생각 들어요.
드라마 대본 쓰기가 제일 어려울 것 같단 점에서요...ㅋ
각 인물들에게 각각 대사를 준다는 게 훌륭하지 않나요?

Tomek 2013-12-1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에 가까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전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 임성한 작가에게 박수!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아마도 부정적인 면이 더 크겠지만)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13-12-19 09:08   좋아요 0 | URL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임 작가가 확실히 역량 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을 말도 안 되게 죽게 만들면서도 (어떤 사정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 되게 써나가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 정도라면 연속극을 볼 만하죠.
요즘 재밌는 걸 못 봐서 드라마 보다가도 자꾸 딴 생각이 나던데...
응답하라94도 재밌어요. 언제 하는지 몰라서 어쩌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것이라서 그렇지... ㅋ
댓글,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19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된 시집살이하다 며느리를 본 여자가 모진 시어미가 되는 것은 본전 때문이라고 하지만...젊은 시절 시부모에게 소홀히 한 여자도 아들 결혼 시켜 며느리를 보면 자기에게 순종하길 바라는 욕심은 무엇때문일까요?

페크pek0501 2013-12-19 22:57   좋아요 0 | URL
호호~~ 저는 그런 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딴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쩔쩔매는데 넌 왜 안 그러냐? 하는 생각이겠죠.
요럴 땐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비교하는 거죠.
인간의 이기심 아니겠어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조금만 알아야지 백 퍼센트를 알게 되면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될 거라고 봅니다. 그나마 이기심을 우리가 숨기고 살아서 봐 줄 만한 거겠죠.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12-20 13:41   좋아요 0 | URL
오호...맞습니다.비교대상이 무엇이냐도 중요하죠.결국은 견강부회, 아전인수적 해석이 문제입니다.

삼십대만 접어들면 아저씨처럼 걸걸한 목소리로 웃는 여자들이 많은데 페크 님은 아직도 호호 웃으시나 봅니다.

페크pek0501 2013-12-20 20:53   좋아요 0 | URL
예, 저는 걸걸하지 않아요.
아줌마가 되면 겁이 없어져서 쥐가 지나가면 뻥 차버린다고 하던데,
저는 아직도 쥐가 무섭고 밤길이 무섭고 그래요.
딸들이 크고 나니 저보다 더 겁이 없어요. 저를 보호해 주려고 한다니까요.
보호자가 바뀌어 버렸다고나 할까요. ㅋㅋ

웃을 땐 호호호~~~

마태우스 2013-12-2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장으로 알려진 드라마에서도 멋진 교훈을 얻어내는 페크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페크pek0501 2013-12-26 14:54   좋아요 0 | URL
벌써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곧 있으면 새해가 되네요.
즐겁게 보내셨습니까?

드라마 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드라마에서도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요... 시간을 잘 못 맞춰서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시간이 맞으면 드라마 시청도 좋습니다.
그런데 꼼짝하지 못하고 쭉 보고 있는 게 어려워서 저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책이 좋더라고요. 언제든 중지해도 지장이 없는 게 책이라서요...ㅋ

마태우스 2013-12-2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전 루비반지 보고 있어요. 다시보기로 보는데, 정말 막장이면서도 묘하게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페크pek0501 2013-12-30 11:36   좋아요 0 | URL
호호~~ 그러시군요. 저는 루지반지, 몰라요. ㅋ

2발3일의 가족여행을 마치고 어제 늦게 돌아왔는데, 마태우스 님이 다녀가셨다는 것... 반가워요. ^^ TV 출연으로 바쁘시겠지만 내년에 알다딘 서재에 자주 나타나시길 바라는 페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