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즐기는 것 : 공자는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을 최고로 쳤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
글쓰기를 예로 들면 이렇게 되겠다.
글쓰기를 아는 사람보단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낫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보단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
즐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다는 것.
2. 1만 시간의 법칙 : ‘l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하고 있는, 말콤 글래드웰 저,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어떤 일에 하루 세 시간씩 10년간 몰입하여 1만 시간을 보낸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 의하면,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그밖에 어떤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연습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한다는 것은 성공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걸 말하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가 성공만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닐 듯싶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만의 취미가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특히 쓸쓸할 수 있는 노년에 하루에 몇 시간씩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3. 자기만의 세계 :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취미로 게이트볼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데, 게이트볼이 없었다면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낚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도, 낚시 없이는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에 기대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기는 일’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영화 감상, 음악 감상, 악기 연주, 등산, 낚시, 그림 그리기 등 든 무엇이든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즐거운 삶을 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무엇에 빠져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불행하진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므로 무료하지 않게 살려면 꼭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세계(자기만의 취미)를 가질 것.’ (여기에 건강과 경제적 안정은 기본 조건.)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다는 것은 그 세계를 즐긴다는 것이다.
4. 글쓰기의 즐거움 : 학창시절에, 심심하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 피아노를 치면 기분전환이 되곤 했다. 지금은 피아노 대신 글쓰기가 그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 <어느 쪽으로 마음을 둘까>의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고 나서 이틀 뒤에 읽어 보니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고쳤다. 고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다른 형식의 문장일 땐 반복하는 말을 피하기
초고 : 10년간 초중고 학생들에게 논술 수업을 해 주며 돈을 벌었어. 고3학생에게 개인지도를 할 때는 내 체중이 빠지기도 했지. 논술시험을 망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 봐, 수업료도 적지 않았으므로 큰 돈 받고 그 결과가 나쁠까 봐. 그러면 그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으므로.
수정한 글 : 10년간 초중고 학생들에게 논술 수업을 해 주며 돈을 벌었어. 고3학생에게 개인지도를 할 때는 내 체중이 빠지기도 했지. 논술시험을 망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 봐, 수업료도 적지 않았으므로 큰 돈 받고 그 결과가 나쁠까 봐. 그러면 그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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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의 ‘없으므로’를 ‘없잖아’로 고쳤다. 이럴 땐 같은 말 반복이 거슬려서다.
2) 같은 형식의 문장일 땐 반복하는 말로 통일하기
초고 : (…) 이런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행복한 것이라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라고.
수정한 글 : (…) 이런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니 행복한 것이라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었으니 행복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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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의 ‘받았다는 점에서’는 ‘받았으니’로 고쳤고, 초고의 ‘얻을 수 있어서’는 ‘얻었으니’로 고쳤다. 이럴 땐 같은 말 반복이 통일감을 주어서다.
나에게 글쓰기란 문장을 가지고 노는 일이며, 그리하여 나만의 세계를 갖는 일이다. 아마 난 늙어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가 있는 한.
5. 독서의 즐거움 : 글쓰기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독서를 좋아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다음의 글은 글쟁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게 읽을 만하리라.
나는 대개 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듣고 (…) 어디에 가든지 책 한 권을 들고 다닌다. 언제 어느 때 탈출구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 자동차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을 때도 있고, 수강 취소 신청서에 지도 교수의 서명을 받으려고 어느 따분한 대학 건물의 복도에서 (…) 15분쯤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그밖에도 공항 대합실에서, 비오는 오후에 빨래방에서, 그리고 귀중한 신체 일부를 난도질당하려고 최악의 장소인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지각하는 바람에 꼬박 30분을 허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책은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126쪽~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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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언제나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집중력이 있어야 스티븐 킹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 그런데 스티븐 킹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저 책이 좋아서 읽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대개 일년에 책을 70~80권쯤 읽는다. 주로 소설이다. 그러나 공부를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좋아서 읽는 것이다. 나는 밤마다 내 파란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것도 소설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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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의 아들 오웬이 일곱 살 때쯤에 색소폰 연주자에 관심을 가져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테너 색소폰을 사 주고 음악인 보위 씨에게 레슨을 받게 해 준 얘기다. 그리고 아들에게 연주의 재능이 있길 바랐다. 그런데 7개월 후 그는 색소폰 레슨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한다. 그는 아들이 색소폰 연주를 좋아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오웬의 속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연습을 중단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보위 씨가 정해준 시간 동안만 연습을 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방과 후 30분씩, 그리고 주말에는 한 시간씩이었다. (…) 그러다가 연습 시간만 끝나면 곧바로 색소폰을 케이스에 집어넣었고, 다음 레슨이나 연습 시간이 될 때까지는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아들이 색소폰으로 진짜 공연을 하는 날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나 연습만 하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즐거움이 없다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가 더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고 재미도 있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편이 낫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181쪽~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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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어를 음미하다 : 앞에서, 나에게 글쓰기란 문장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독서 역시 나에겐 문장을 가지고 노는 일이다. 문장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좋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독서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독서를 하는 첫째 이유는 책이 그저 재밌기 때문이다. 책을 즐기는 것이다.
요즘 ‘논어 열풍’으로 논어를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밑줄을 친 구절을 다시 음미하며 즐겼다. 여러분도 읽으며 즐겨 보시길.
(“ ” 안의 문장은 <논어>에서 발췌한 것임.)
“배우고 제때에 그것을 복습하는 것은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벗들이 먼 곳에서 오는 것은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남이 자기의 실력을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은 또한 군자답지 아니하냐.”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다.”
“사람으로 인자하지 않으면 예(禮)는 해서 무엇할 거며, 사람으로 인자하지 않으면 음악은 해서 무엇하랴.”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게 넓고, 소인(小人)은 노상 근심에 차 있다.”
“빈한(貧寒)하면서 원망하는 일이 없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하게 구는 일이 없기는 쉽다.”
“군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소인은 남에게 추궁한다.”
“과오를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과오라 하겠다.”
“비루(鄙陋)한 사나이와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그것을 얻으려고 근심하고, 그것을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게 될까 근심한다. 진실로 그것을 잃게 될까 근심한다면 못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그것이란 벼슬자리를 말함.)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즐기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