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을 읽는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줄거리, 작가가 말하려는 메시지나 의도, 좋은 표현의 문장 등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들보다도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읽는 재미를 최고로 친다.
신형철의 해설에 이런 글이 있다.
“소설의 가치를 정서적, 미학적, 인식적 가치로 분류해 보는 일은 단순하나마 쓸모 있는 일일 것이다.”(박완서, <기나긴 하루>, 265쪽)
그에 따르면 소설에서 다음의 세 가지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정서적 가치 - 감동과 교화로 요약될 정서의 어떤 파고를 유발할 때의 가치.
미학적 가치 - 문장 세공술과 서사 건축술의 장관을 보여 줄 때의 가치.
인식적 가치 - 인간과 세계의 ‘숨은 진실’을 예리하게 제시할 때의 가치.
이를 쉽게 말하면,
정서적 가치란 감동과 교화가 있을 때 생기는 가치.
미학적 가치란 문장의 아름다움이 있을 때 생기는 가치.
인식적 가치란 숨은 진실이 있을 때 생기는 가치.
이 중에서 인식적 가치에서 말하는 ‘숨은 진실’이 내가 앞에서 말한 ‘비밀’에 해당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소설에서 인식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소설가는 자신이 아는 ‘비밀’을 독자에게 알려 주는 사람인 셈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커다란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더듬거려 가며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밝혀 보려고 애쓰는 발견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또 “이제껏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 앎이야말로 소설의 유일한 도덕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인간의 비밀, 세계의 비밀 등 수많은 비밀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다 알지 못한다. 소설가는 자신이 포착한 그 비밀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이때 그 비밀이, 인간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긴 하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일 때에 독자는 소설가의 통찰에 감탄한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
2.
우리가 예상했던 일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일치하는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소설이 있다. 박완서 저, <기나긴 하루>라는 소설집에 들어 있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소설이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이 소설에서 화자의 아들 창환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거리에서 경찰의 쇠파이프를 맞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들이 죽은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화자는 손위 동서와 전화로 통화하며 쏟아 낸다. 이 쏟아 낸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비밀’이라고 이름 붙이겠다. 그럼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비밀’이 무엇인지 정리해 본다.
비밀 1 :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화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배려해 주면 고맙기보다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화자의 친한 친구 명애는 아들 잃은 화자를 배려하여 자기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딴 동창을 통해 그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화자는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화자는 친구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남에게 배척당하는 기분을 느낀다.
“형님 제가 뭘 잘못했다구 이렇게 손도를 맞습니까? 제가 손도를 맞는다는 건 창환이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게 되거든요. 그럴 수는 없었어요. 저는 떨치고 일어나 즉시 준비를 하고 환하게 웃으며 결혼식장으로 달려갔죠. 명예가 어쩔 줄 몰라했지만 저는 늠름하게 굴었어요. 마음으로부터 축하도 했구요. 명애 아들이 장가드는 거 저 정말로 안 부러웠어요. 걔 아들하고 창환이하곤 댈 것도 아니니까요.”(185쪽)
“(아들 장가들일 때 저를) 따돌리는 것만 아니꼬운 줄 아세요. 너무 잘 해주는 것도 싫어요. 그게 다 한통속이거든요.”(187쪽)
비밀 2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가 부러운 사람은 ‘남의 산 자식’이 아니라 ‘죽은 남편’이다.
“우리 그이가 회갑도 못 넘기고 세상 뜬 데 대해서도 여한 없어요. 창환이를 앞세우지 않고 자기가 휘딱 앞서갔으니 참 복도 많다 싶어 부럽다 못해 얄밉기까지 한걸요. 제가 부러운 건 오직 그이뿐이에요.”(189쪽)
비밀 3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달라진다.
“창환이를 잃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뭔 줄 아세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증조모님 제사도 안 중요해진 것 중의 하나일 뿐이지, 다는 안녜요. 그런 변화엔 저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192쪽)
“(또) 전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했는데 이젠 내가 보고 느끼는 내가 더 중요해요. 남을 위해서 나를 속이기가 싫어요. 무엇보다도 피곤하니까요. 가장 쓰잘데없는 걸로 진 빼기 싫어요. 또 있구말구요. 그전엔 장만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젠 버리는 게 더 중요해요. 형님보담은 좀 덜했지만 저도 물건 욕심이 꽤 있었잖아요. 누구네 집에 가서 예쁜 접시나 찻잔만 봐도 어디 쩨인가 물어보고, 역시 다르다고 감탄하고, 눈독 들인 건 기어코 장만하고, 그게 사는 재미였죠. (…) 갖고 싶은 걸 애써 장만하고 나면 그리 기쁘더니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다 짐스러워요. (…)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내가 물건이 싫으니까 남에게도 물건을 선물한 적이 없어요. 물론 창환이 잃고 난 후에 생긴 새 버릇이지만서두요.”(193쪽~195쪽)
비밀 4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는 젊어졌다는 소리가 욕같이 들린다.
“지금은 아네요. 젊어졌다는 소리도, 좋아졌다는 소리도 꼭 욕같이 들려요. 그렇다고 늙어 보인다거나 야위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아녜요. 그런 소리 들으면 내가 하루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보내고 있는지 들킨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197쪽)
비밀 5 : 화자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질 땐, 안에서 맞아줄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라 있을 때이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할 때와 안에서 창숙이나 창희가 열어줄 때가 있잖아요? 안에서 맞아줄 사람이 있을 때가 없을 때보다 좋은 게 인지상정이련만 전 그 반대예요. 그들의 마중을 받으면 창환이의 빈자리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나도 모르게 무너져내리듯이 밖에서 꾸민 나를 포기해버리죠. 그러나 열쇠로 문을 따고 빈집에 들어섰을 때는 딴판이에요. 창환아, 에미 왔다. 그렇게 활기 넘치는 소리로 말을 걸며 들어가는 거예요. 핸드백을 내던지면서 옷을 벗으면서도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도 연방 말을 시키죠. 그럴 때는 집 구석구석이 창환이로 가득 차는 거예요.”(200쪽)
독자는 여기까지만 읽어도 자식을 잃고 나면 어떤 모습의 어머니로 살아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소설이 여기까지만이라면 이 소설은 그저 평범한 소설에 불과할 것이다. 이 소설을 평범한 작품에서 수작으로 끌어 올린 것은 다음의 비밀에 있다.
비밀 6 : 화자는 병든 청년인 아들을 웬수덩어리로 취급하는 친구를 보고서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화자의 친구 명애가 화자를 어느 친구의 집에 데리고 간다. 그 집엔 몇 년 전에 차 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치고 나서 하반신마비에다 치매까지 된 청년 아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아들을 이름 대신 ‘아이구 이 웬수, 저놈의 대천지 웬수’라고 불렀다. 화자는 명애가 왜 그 집 모자의 비참한 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아들이) 죽는 것보다 못한 경우를 보고 위로받아라’하는 것이었음을.
“인간성 중 가장 천박한 급소죠. 그 급소만은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아무리 잘나고 건강한 아들을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미리 보호막을 친 거였는데, 딴 친구도 아닌 명애가 나를 그렇게 취급하다니, 정말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205쪽~206쪽)
“(그 친구가 아들이) 욕창이 생길까봐 하루에도 몇 번씨 그 짓을 한다나봐요. (아들을) 엎어 뉘었다가, 바로 뉘었다가, 모로 뉘었다가, 그 장대한 아들을 자유자재로 굴리면서 바닥에 닿았던 부분을 마사지하는데, 그동안도 잠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거였어요. 아이고 이 웬수덩어리는 무겁기도 해라. 천근이야, 천근. 근심이 있나 걱정이 있나, 주는 대로 처먹고, 잘 삭이고 잘 싸니 무거울 수밖에. 내가 이 웬수덩어리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못 죽어, 이 웬수야.”(206쪽)
“우리는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명애가 먼저 아이 참, 하면서 손을 내밀어 거들려고 했죠. 나도 덩달아 환자를 뒤집는 일을 도우려고 손을 내밀었구요. 그러나 웬걸요. 우리의 손이 몸에 닿자마자 환자가 이상한 괴성을 질렀어요. 여지껏 흐리멍덩 공허하게 열려 있던 환자의 눈이 성난 짐승처럼 난폭해지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요. (…) 그때 비로소 악담밖에 안 남은 것 같은 친구 얼굴에서 씩씩하고도 부드러운 자애를 읽었죠. 아이구, 이 웬수덩어리가 또 효도하네, 하는 친구의 말로 미루어 어머니 외에 아무도 그를 못 만지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닌가봐요.”(207쪽)
그리고 화자는 난폭해진 아들을 다루는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이것이 반전이 있는 대목이다.
반전.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제가 말예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다 있을까요? 형님,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게 가슴 한가운데를 깊이 훑어내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아프고 쓰라려 울음이 복받치더군요. (…) 제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참고 있었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대성통곡, 방성대곡보다 더 큰 울음이었으니까요.”(207쪽~208쪽)
친구 명애가 화자를 위로하기 위해 '병든 아들이 있는' 친구 집에 데리고 갔는데, 위로는커녕 화자를 더 질투 나게 부럽도록 만들었다는 것. 놀라운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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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여러 개의 비밀들을 음미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할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이 빗나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게 해 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모처럼 수작을 읽는 좋은 독서를 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깐 예전에 어떤 소설집에서 읽은 거였다. 그래서 두 번 읽은 게 되어 버렸다.)
물론 독자마다 다른 시각으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은 문학의 매력이다.
끝으로, 작가는 실제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미 경험한 뒤에 이 소설을 썼음을 밝혀 둔다. 이 사실을 알고 읽는다면 독자로서 더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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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다면, 그는 그 작가의 애독자일 것이다. 나 역시 애독자로서 박완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었다. 한때 그의 단편소설집을 ‘문학 교과서’로 생각하고 즐겨 읽은 적도 있다.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작가 같다.
그의 작품 중, 추천할 만한 것을 골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