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학생인 큰애가 말했어. 교환학생으로 뽑혀 외국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어.

 

 

돈 쓸 일만 생기는군.

 

 

10년간 초중고 학생들에게 논술 수업을 해 주며 돈을 벌었어. 고3학생에게 개인지도를 할 때는 내 체중이 빠지기도 했지. 논술시험을 망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 봐, 수업료도 적지 않았으므로 큰 돈 받고 그 결과가 나쁠까 봐. 그러면 그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잖아.

 

 

이젠 그렇게 신경 많이 써야 하는 고등학생 말고 중학생과 초등학생만 가르칠 생각이야. 문화센터 강사를 할까 하다가 학교를 택했지. 학교에서 논술 강사로 일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을 수업하는 거라서 별 부담이 없어 좋아.

 

 

그런데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하지.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 이럴 때 초라해져.

 

 

그래도 이 나이에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하는 생각. 이럴 때 자부심이 생겨.

 

 

나, 1962년생이야. 예전에 젊었을 땐 이 나이쯤 되면 사모님 소리 들으며 우아하게 살 줄 알았어.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법. 수업하기 위해 학교에 갈 때 전혀 우아하지 않다고 느껴.

 

 

그래도 나, 이렇게 생각할래.

 

 

내게 중등학교 정교사 교원자격증, 논술지도사 자격증, 석사학위 등이 있는데, 이런 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니 행복한 것이라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었으니 행복한 것이라고.

 

 

다음의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한 가지가 불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법이오. 당신이 어느 것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오.

 

 

-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에서.

 

 

 

 

 

 

 

그대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대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걱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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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3-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요플레 포장지를 핥아먹으면서
저도 전혀 우아해지지 않는다고 느껴졌어요 ㅠ

좀 막연하고 일반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여성의 일 중에 '선생님' 참 좋아보이던데요

페크pek0501 2012-03-29 15:04   좋아요 0 | URL
신지님. 요플레는 그렇게 먹는 게 정 답 입 니 다.ㅋ
커피를 마실 땐 우아하게... 고요.
이 글 쓰고 나서 우아함, 이란 말에 꽂혔어요. 그동안 이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초라하게 느껴질 때 신지님의 이 말을 기억해 내겠습니다. 여선생님이 좋아 보인다는... 말.
힘이 솟는군요.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2-03-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니까 우린 걱정할 게 전혀 없는 거네요.ㅎㅎ
좋은 글 감사해요. 걱정을 덜었어요.
그나저나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따님, 축하해야 되는 거죠^^
좋으시겠어요. 아흐~ 우리딸도 그런 거 좀 앞으로 하면 좋을텐데요.
글고 페크님, 왠지 논술지도 쪽 일 하시는 것 같단 생각했는데 맞네요.^^

페크pek0501 2012-03-29 15: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레이야님. 걱정할 게 없는 거예요.
교환학생에 대한, 님의 댓글 읽고 님 덕분에,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어.”이걸 추가해 넣었답니다. ㅋ 이걸 빠뜨리고 쓴 거죠. 저 이렇게 엉터리예요. ㅋㅋ

따님도 잘 하고 있을 거예요. ㅋ

제가 좀 문학적이면 좋을 텐데, 논술적이어요. ㅋ 그래서 글이 안 되고 있다는....ㅋ

노이에자이트 2012-03-2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력이나 자격증이 화려하네요.페크 님 연배의 여자들 중 이 정도 경력인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페크pek0501 2012-03-29 15:08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격증을 써 먹게 될 줄 몰랐어요. 대학교 4학년때 한달간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는데, 교사란 똑같이 수업을 합니다. 그때 여러 반을 돌아다니며 같은 내용으로 반복 수업하는 것에 질려서, 학교 선생은 되지 말자, 그랬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 다른 데 취직했었죠.
그런데 결혼한 이후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다니... 인생은 미스테리입니다.ㅋㅋ

숲노래 2012-03-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마음이 좋은 마음을 낳을 테니까요.

페크pek0501 2012-03-29 15:09   좋아요 0 | URL
예, 된장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하더군요. 중요한 건 웃는 마음인 거죠. ㅋ

마태우스 2012-03-2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페크언니는 자격증도 많으시군요. 논술지도 자격증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거 몰랐어요. 기생충 강의하는 건 자격증이 필요없거든요. 그냥 배워서 하면 될뿐.. 글고보면 전 의사면허증 말곤 별다른 자격증이 없어요. 알라딘 명예의 전당도 자격증으로 쳐주려나요.^^

페크pek0501 2012-03-29 15:10   좋아요 0 | URL

아, 마태우스님. 의사면허증 있으면 다른 자격증이 필요없는 거예요. 게임끝이죠. 거기에다 알라딘에서의 명성, 그거면 된 거죠. 뭐가 더 필요하나요? ㅋㅋ

신지 2012-03-29 18:01   좋아요 0 | URL
논술? 시간도 많고 그래서 내가 공짜로 가르쳐주겠다고 여러번 말했는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더군요. 세상은 자격증을 믿지, 사람을 믿지 않는구나,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 중의 하나 ㅋㅋ

2012-03-3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30 14:55   좋아요 0 | URL
신지님, ㅋㅋ 웃깁니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자격증, 이라는 종이 쪼가리를 믿는단 말씀이죠? 그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지요.ㅋ

stella.K 2012-03-2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똑똑하고 든든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페크pek0501 2012-03-30 14:58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정말 그래요. ㅋㅋ 제 뱃속에서 어떻게 그런 똑똑한 딸이 나왔는지 제가 감탄한다니까요. 대학3학년인데 벌써 학교에서 보내 주는 미국 견학 2주일간 갔다왔어요. 새벽까지 공부하기도 하고, 자원봉사 100시간을 채우기도 하고, 토플 토익 공부도 하고... 매학기 장학금은 꼭 타 오고... 제가 "넌 누굴 닮아 그렇게 똑똑한 거니?"라고 묻곤 해요. 그리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답니다.

ㅋㅋㅋ 여기까지 재수없게 딸자랑질이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ㅋㅋ

stella.K 2012-03-30 15: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한테는 마음 것 하셔도 돼요.^^

꼬마요정 2012-03-3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따님이 부럽습니다. 저도 교환학생이든 머시기든 외국 가서 공부 한 번 해보고 싶네요...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냥 놀러 가고 싶구나..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30 15:00   좋아요 0 | URL
아, 꼬마요정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죠?

공부하든지 놀러 가든지,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꼬마요정님이 저는 부러운데요. 저는 외국 가는 게 싫거든요. 여행이든 뭐든... 집에 편안히 있고 싶어요. ㅋㅋ 큰애가 저와 달라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ㅋ 또 보 아 요.

2012-03-31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31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3-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글을 이제야 봤네요~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더 반가워요.
따님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기회를 얻었네요~ 부러워요, 축하하고요!^^

페크pek0501 2012-04-02 14:20   좋아요 0 | URL
ㅋㅋ 순오기님이 공감하신다니 기쁩니다. 너무 솔직한 글이라 괜히 썼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올리고 나서 확 지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제 자신이 너무 드러난다고 느낄 때 그래요. 꼭 이런 글 쓰고 나면 다음부턴 나를 드러내는 글 안 써야지, 다짐을 한답니다. ㅋ

자식은 잘해도 근심, 못해도 근심인 것 같아요. 외국 가서 얼마나 적응을 잘 할지, 그 공부가 도움이 될지, 어떨지... 등등 걱정이 되네요. 그래서 사실은 기쁜지도 모르겠어요. 본인은 아주 기뻐하고 있어요. 자신 없어했거든요.

순오기님, 지금 비 와요. 창문 열고 비 냄새 맡으며 커피 한 잔 해야겠어요. 저 오늘 늦잠 자고 일어났어요. 모처럼 달콤하게... 아, 저는 식구들 나가고 없는 월요일 아침이 너무 좋아요. 아마 순오기님은 이런 기분을 잘 아실 것 같아요. 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