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이면 기대되는 게 있다. 신문이다. 토요일 아침에 받아 보는 신문은 평일의 신문에 비해 내용이 풍성하고 재미있다. 특히 신간을 안내해 주는 지면에 흥미를 느낀다.
그 지면에서 내가 사고 싶은 책들을 고르곤 하는데, 그 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책들엔 인간의 재밌는 심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요즘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도 심리학이다. 인간의 심리엔 말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구석이 있다. 또 상반된 두 가지의 심리가 한 사람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을 나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신문에서 내 관심을 끈 책은 <가격은 없다>라는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인간의 재밌는 심리를 보여 주는 책들을 골라 보았다. (신문에서 <가격은 없다>에 대한 소개를 읽자마자 다른 책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 물건을 살 때의 심리 1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다. 백화점에서 내가 고른 스카프가 4만 원이라고 하면 우선 비싸다는 느낌을 갖고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다른 스카프가 6만 원이라고 하면 4만 원짜리 스카프가 상대적으로 싸 보여 그것을 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내가 고른 구두가 20만 원이라고 하면 비싸다는 느낌을 갖고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다른 구두가 30만 원이라고 하면 20만 원짜리 구두가 상대적으로 싸 보여 그것을 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심리를 설명해 주는 책이 있다.
윌리엄 파운드 스톤 저, <가격은 없다>는 “다양한 가격 정책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거기에 얽힌 심리학적 분석들을 보여 준다. 경우에 따라서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라는 주장을 편다.” “가격 설정이 중요한 것은,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의하면) 800달러짜리 구두를 팔고 싶다면 바로 옆에 1200달러짜리 구두를 전시해 두면 되는 것이다.” - (조선일보, 2011. 09. 17.)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감정은 이제 뇌 스캔을 통해서 눈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가지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포장 용기를 작게 만드는 것, 가격의 끝자리를 9로 맞춰 눈속임을 하는 것 등의 트릭들은 오래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이제 가격 컨설턴팅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판촉술의 마지막 장에나 나올 법한 수법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최근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하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들이 도입되고 있다. 가격을 매긴다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우리는 마음속의 욕망을 숫자라는 대중의 언어로 바꾼다. 이 책은 이런 전환이 놀랄 만큼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과정임을 밝혀 준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2. 물건을 살 때의 심리 2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에 이런 글이 있다.
어떤 부부가 가전제품 대리점에서 냉장고 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이 그 특정 모델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그들의 표정이나 대화를 통하여 판매원에게 즉각적으로 간파되었다.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 판매원은 그들 부부에게 접근하더니 “이 모델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지요? 그럴 만도 하지요. 이만한 기능을 가진 모델을 이 가격으로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지요? 제가 불과 20분 전에 그 모델을 다른 분에게 이미 팔아 버렸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우리 대리점에는 그 모델 재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부의 얼굴에는 실망의 표정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모델의 재고가 없다는 사실에 그 모델의 가치가 갑자기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부 중 한 사람이 판매원에게 그 모델의 제품을 근처 다른 대리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판매원은 “글쎄, 혹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번 알아보지요. 그런데 만일 다른 대리점에서 그 모델의 제품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구입하시겠습니까?”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들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판매원은 그들 부부가 원했던 모델을 근처 대리점에서 찾았다는 희소식을 전해 주면서 그들 앞에 계산서를 내놓았다. 그들이 원했던 모델이 실제로 구입 가능하다는 소식에 이들 부부는 그 모델의 제품을 구입하고 싶지 않다고 다시금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구입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미 이루어졌고 구두로 그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힌 이상, 이제 와서 구매를 취소하기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 부부 역시 말없이 볼펜을 집어들고 신용카드에 서명하고 있었다. -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 331쪽.)
이와 같은 일은 우리도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희귀성에 너무 큰 가치를 두면 이렇게 된다.
3. 가짜 갱의 심리
고교동창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선배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그 모임엔 상당한 재력가들의 부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임에 처음 나가게 됐을 때 그들의 겉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재력가의 부인이니 만큼 화려한 옷차림에 명품 가방을 들고 나올 줄 알았던 선배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매우 수수했던 것.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검정색이나 곤색의 정장 차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방도 명품으로 보일 만한 게 없었을 정도로 소박했다고 한다. 그들의 똑같은 옷차림에 대한, 그 선배의 말 한 마디가 압권이다.
“나는 그들만의 유니폼이 있는 줄 알았어.”
실제로 부자들 중에는 의외로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재력가는 재력가임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 돈 많은 걸 주위에선 다 알 테니까.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거리가 먼 옷차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갱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거리가 먼 옷차림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지적한 책이 있다. 정영문 저, <어떤 작위의 세계>라는 책이다.
“그는 갱 흉내를 내며 걸을 때도 약간 갱처럼, 그것도 흑인 갱처럼 걸었고, 바지도 통이 넓은 것을 팬티가 때로는 살짝, 때로는 심하게 드러나게 입었는데, 나는 그가 걷는 모습을 보며 진짜 갱이 아니니까 갱 흉내를 내며 걸을 때도 약간 갱처럼 걸을 수 있는 거야. 진짜 갱이라면 갱 흉내를 내지는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정영문 저, <어떤 작위의 세계>, 10쪽.) - (조선일보, 2011. 09. 17.)
“<어떤 작위의 세계>에는 뚜렷한 플롯이 없다. 이 소설은 표류기에 가까운 체류기인 동시에, '나'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는 대로 듣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고 경험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관념과 실재가, 사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정영문식 상상의 박물지이기도 한 것이다.” - (알라딘 제공, 책소개)
4. 자랑하는 심리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면 누구나 자만심이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적든 많든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나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304쪽.)
피아노를 잘 친다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다면 굳이 자신의 재능을 떠벌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약 아무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과장되게 말할 가능성이 있다.
인기가 많은, 유명한 연예인은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인기에 대해 자랑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 다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별로 인기 없는 연예인 또는 이제 인기를 조금 얻기 시작한 연예인은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인기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을 가능성이 많다.
* 결론
우리들 대부분은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이런 심리들에 속아 어리석은 모습을 하고 산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그러할 경우엔 그것이 정확히 보이는데, 자신이 그러할 경우엔 그 어리석은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