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면 12월이다. 앞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아 ‘새해,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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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었다.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을 응모하여 일곱 번이나 낙선한 뒤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는 다음 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위해 7년이나 습작 기간을 가졌으리라. 그런 긴 세월을 보냈기에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실패할 때 배울 기회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낙선할 적마다 자기의 소설 작품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궁리함으로써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여러 번 가졌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그가 일곱 번 낙선한 건 좋은 경험이라 볼 수 있다.


나 역시 글을 쓰느라 노트북을 끼고 살았으나 오랜 기간 동안 성과가 없었다. 내게 '글쓰기'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연인 같아 때로 맥이 풀렸고 때로 소질 없음을 탄식했다. 글쓰기를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구점에 가서 공책 한 권을 사고 나면 언짢은 기분이 풀리곤 했다. 매일 글을 써서 그 공책을 글로 가득 메우고 나면 나의 글쓰기 역량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새 희망의 길을 열어 주어서다.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으로 봤던 장면을 다시 보는 것도 새 희망을 갖게 했다. 높은 곳에 오른 다이빙 선수가 공중에서 세 번 회전한 후 멋지게 입수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 하고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 다이빙 선수도 수없이 실패하면서 꾸준히 연습하여 공중회전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나도 꾸준히 습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엔 밑바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다. 수영을 그만하고 싶을 땐 내 발이 밑바닥에 닿지 않아 당황했다. 물속에서 발버둥을 쳤으나 내 몸이 올라가지 않고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발이 수영장 밑바닥에 닿았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몇 번의 시도 끝에 밑바닥을 발로 차고 헤엄쳐서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내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했기에 물속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이 일로 '밑바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건강을 염두에 두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몇 년 전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로선 도전이었는데 활력을 얻고 싶어 용기를 냈던 것.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 밑바닥에서부터 배우는 게 좋았다. 왜냐하면 발레를 배우면서 나의 발레 실력이 수영장 밑바닥처럼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고 오로지 한 단계씩 올라가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배울 예정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발레 실력이 향상될 터였다. 발레만 그렇겠는가. 글쓰기를 비롯해 악기 연주, 그림, 외국어, 요리 등 뭐든 꾸준히 배우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이 향상되지 않겠는가. 실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은 그 자체로 값지다. 최소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운때가 맞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운이 들어오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운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실력과 운때가 서로 만나서 결실을 거두는 날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물론 아무런 노력 없이 사는 자에게는 운때가 소용없다.


새해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많겠다. 요즘 글쓰기 강좌가 인기 강좌로 떠오른 것을 보면 글쓰기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이들이 전념을 다했지만 성과가 없다고 쉽게 단념하지 않기를 바란다. 목표를 이루려면 으레 실패라는 정거장을 거쳐야만 한다고 여기길 바란다. 실패했다는 것은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분투했다는 것이고, 분투했으니 이전보다 높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한 횟수가 늘었다는 것은 자기의 글쓰기 역량이 그만큼 신장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믿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과정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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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에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내 글을 <추억의 글>로 올린다.





(후기)..............................

주 1회로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이 열 명이 넘는데 그중 책을 낸 이들이 몇 명 있다. 이번엔 세 명의 수강생이 책을 내어 합동으로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고 한다. 날짜를 잡아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소감을 나누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조촐한 모임이다. 바야흐로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수강하는 강좌는 미리 책을 읽고 가야 하는 강좌다. 그리고 책을 낸 수강생들끼리 모이는 '스터디 모임'을 두 개 갖고 있다. 하나는 '철학이나 사회학 관련 책'을 읽고 얘기 나누는 모임이고, 또 하나는 '세계 단편 소설'을 읽고 얘기 나누는 모임이다. 이렇게 세 군데에서 다룰 책을 매달 읽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보니 바쁘다. 그래서 내가 꼭 읽어야 한다고 여기는 필독서를 많이 읽지 못하고, 지인들이 낸 책들은 아예 읽을 엄두를 못 다. 


한 달을 반으로 나누어 15일은 책을 읽고 15일은 글을 쓴다. 물론 외출하는 날에는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한다. 지난 토요일에도 지방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오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있어 신문을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 다음날은 쉬느라 집안일 외에 아무것도 못했다.    


게다가 연로한 친정어머니의 집 살림까지 도맡아 해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어 시간이 축난다. 


칼럼으로 써 놓은 글들이 있으나 신문에 기고할 목적으로 쓴 것이라 이곳 서재에 올릴 수가 없다. 신문에 기고할 글은 미발표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3년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오늘 올리는 이유를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글을 새로 쓸 여유가 없어 이미 올렸던 글을 또 올리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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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8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그런 열정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책을 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전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ㅎㅎ

그나저나 신춘문예 7번 낙선하고 드라마 작가된 분...저는 그것도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10번 낙선하고 계속 드라마 시나리오 써도 데뷔 못하는 사람 여전히 많습니다. 작품이 의외로 좋은 낙선작도 많이 봤어요. 이건 진짜 운과 연대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1인이에요. 누구나 노력합니다만...드라마 작가는 진짜 우연적인 인맥이 좌우하더군요..

페크pek0501 2025-11-29 11:11   좋아요 0 | URL
(앞으로 두 번째 책을 내겠지요...ㅋ) 열심히 사는 건 아닙니다. 밤을 새고 글을 쓸 정도의 노력은 안 합니다. 건강을 챙기며 즐길 뿐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성과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늙어가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은 나이 들수록 취미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노인정에 가는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 제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 보내 줘야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혼자 계시지 못하더라고요. 그땐 학교에서 논술 선생으로 일할 때라 제가 시간적 여유가 없었거든요. 저는 우리 애들한테 심심하니 와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운이 좌우한다는 것, 동감입니다. 운과 우연성을 소재로 칼럼을 쓰고 있어요.^^

잉크냄새 2025-11-30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어진 사람이 일어나는 첫 단계는 땅을 손으로 짚는 것이죠.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넘어진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겠고요.

페크pek0501 2025-11-30 13:37   좋아요 0 | URL
넘어진 사실을 인정해야 조심할 수 있겠지요. 뭘 배우든 기초 단계에 있다는 것은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만하죠.^^

희선 2025-11-30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해도 해도 잘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는 게 중요하겠지요 재능 타령하기보다 쓰기, 꾸준히 쓰는 게 재능이다 하는 사람도 있기도 하네요 성과가 없으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좋아서 쓴다면... 제가 그러네요

페크 님 여러 사람과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시는군요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즐겁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십일월 마지막 날이에요 십이월 반갑게 맞이하시고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5-12-02 17:16   좋아요 1 | URL
저도 글쓰기는 잘 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걷다 보면 확 나아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질 뿐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여러 사람이 만나 다양한 의견을 접하는 것이 저는 좋더라고요. 유익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예. 벌써 12월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죠. 희선 님도 마무리 잘하는 12월 보내시고 새해 계획을 잘 세워서 반갑게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5-12-04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12월 한 달을 보내면 새해네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떠올려 보는 시기가 된 거지요.
어제는 비상계엄 1년이 되는 날이었네요. 시간이 왜 그리 빠른지...
차분하게 새해의 새로운 각오를 지금부터 하나씩 적어 보아야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요. 페크님. 이달에도 화이팅 하세요.^^

페크pek0501 2025-12-04 12: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벌써 12월이라니 1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새해 계획을 하나 세웠답니다.
모나리자 님도 파이팅!!!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은빛 2025-12-06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는 걸 좋아한다는 건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글을 잘 쓰지 않을까요? 같은 이유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할 확률이 높겠죠. 아마도.

저는 제가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 싫어하는 면도 엄청 많지만요.

페크pek0501 2025-12-09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글쓰기 취미가 있는 것, 입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얼 하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자식들은 다 컸는데 말이죠. 이젠 아이들이 저의 보호자 역할을 할 때가 많네요. 이달에 음악회 가자고 티켓까지 사 놓고 저보고 그날 시간 비워 놓으라고 하네요. 예전과 거꾸로 됐어요.
운동도 글쓰기 취미 만큼이나 유익하죠. 새해엔 운동에 시간을 더 많이 들일 생각입니다. 독서와 글쓰기와 운동을 하면서 지낸다면 나름대로 잘 사는 거라고 봅니다.^^

2025-12-28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0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