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원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라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를 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첫 번째 줄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노인은 다른 부서의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이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다고 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장군에게 용서를 해 달라고 더듬더듬 말했고 장군은 "허, 정말… 나는 벌써 잊어버렸다니까. 아직도 그 얘기요!"라고 말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브리잘로프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을 찾아가 재채기에 대해 해명했으나 장군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 장군을 또 찾아가 사과의 말을 했다. 장군은 "꺼져!"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는 공포에 질려 속삭이듯 "뭐라고요?"라고 물었고, 장군은 "꺼지라니까!" 하고 발을 구르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관복을 벗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여기까지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관리의 죽음'의 내용이다.



소설 속 주인공 체르뱌코프는 상관의 위압적인 고함 소리에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숨지고 만다. 이처럼 마음의 병으로도 숨이 끊어질 만큼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재채기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행해질 만큼 우리 인간은 가련한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체르뱌코프는 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브리잘로프 장군은 체르뱌코프가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려는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의 거듭되는 사과에 분노가 치밀었다. 체르뱌코프는 장군이 자기의 사과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 여겨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 배려할 수도 없었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 부서는 다르지만 브리잘로프 장군은 상관이고 체르뱌코프는 하급 관리이다. 소통과 공감을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중 누가 더 노력해야 할까? 아랫사람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윗사람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의 마음에 무심한 자는 남의 고통에도 무심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윗사람이 언제나 윗사람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브리잘로프 장군도 자기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아랫사람이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교훈은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심한 체르뱌코프는 자기 실수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집착은 불행을 낳기 쉽다. 채근담에 '마음이 물들지 않고 집착이 없으면 속세도 신선의 세계이고, 마음이 구애받고 탐닉하면 낙원도 고통의 바다가 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기억해 둘 만하다. 



두 번째 교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침이 튀었다면, 체르뱌코프가 그 일에 그토록 집착하지 않았으리라. 아랫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게 된다. 반면에 윗사람은 아랫사람 앞에서 오만에 빠지기 쉽다. 오만에 빠지면 브리잘로프 장군처럼 상대편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 없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하여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화를 표출시킨다. 상대편에 비해 직위가 높으니 화를 내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약자를 대하는 강자들의 일반적인 태도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권력관계 때문이다. 상관의 성난 태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한 하급 관리인 체르뱌코프. 그와 같은 약자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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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의 ‘바로 가기’ 링크를 한 번씩 클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72001000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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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1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7-21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체호프의 저 단편을 읽으면서 놀랐던게 뭔가 결말로 이어지는 중간단계 없이 ‘그리고죽었다‘ 이렇게 끝내는게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담담함 속에 감춰진 냉혹함? ㅋ

페크pek0501 2023-07-21 19:1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인상에 남았어요.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로 끝나는 소설이죠.
작가 체호프가 의사이기도 했으니 마음의 병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 잘 알았기에 소설에 그런 죽음을 자신 있게 넣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인간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있지요. 감춰진...

감은빛 2023-07-21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채기로 튄 침이 얼마가 되었건 간에 그로 인해 사람이 죽다니!
장군이라는 자가 엄청나게 무서운 인상이고 평소에도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대했을 것 같아요.
페크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 교훈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페크pek0501 2023-07-21 20: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무서운 인상이죠. 부드럽게 말하며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잊어버렸다니가 아직도 그 얘기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니 주인공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자기 기분에 취하면 상대편을 배려하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희선 2023-07-22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걱정이 많은 사람이네요 한번 사과했으면 괜찮을 텐데... 그런 사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겠지요 상사라면 밑에 사람 성격이 어떤지 조금은 알잖아요 짜증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이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했다면, 좋았겠네요 사람은 마음의 병으로도 죽죠 누구나 마음이 단단하지 않기도 한데...


희선

페크pek0501 2023-07-22 11:44   좋아요 0 | URL
소심한 사람이 대체로 작은 일에도 과민하죠. 그래서 작은 일을 큰 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죠.
그가 사과할 때 장군이 따뜻한 말투로 대답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희선 님, 토요일이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coolcat329 2023-07-22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리의 죽음 이 소설집의 첫 이야기죠~정말 짧으면서도 강렬한 오프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페크pek0501 2023-07-23 10: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드라마, 라는 소설도 강렬하게 끝나죠.
비 오는 일요일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23-07-22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