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남일, <서울 이야기>
그 서울의 밤에 전기가 들어왔다. 1887년 경복궁 후원 건청궁과 향원정 일대에서 처음으로 전구 750개가 불을 훤히 밝혔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2년쯤 앞선 일로, 직접 목격한 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백성들로서는 담장 너머로 멀리 비치는 10촉광의 불빛마저 도무지 믿기 힘든 도깨비불이 아닐 수 없었다. 민간까지 전기가 보급되는 데에는 훨씬 더 시간이 필요했다.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처음으로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35쪽)
⇨ 전구 750개가 불을 밝혀 환한 세상이 된 것을 본 이들은 신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으리라. 그때의 광경은 사람들에게 가슴 뻐근한 감동을 주었을 것 같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열흘 전쯤에 도쿄로 돌아왔다. 그는 약속했던 연재를 포기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제대로 읽을 기회도 사라진다. 기사가 폭주하면 제 글을 마음대로 넘겨버리는 신문사 탓을 하지만, 이제 초대 통감을 사살해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도에 일대 충격을 던진 나라에 대해 정색을 하고 언급하는 일 자체에 무언가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적어도 1909년 가을의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히 구축한 국력을 바탕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너끈히 치러낸 국가적 자부심을 그 역시 한 사람의 제국 국민으로서 기꺼이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79쪽)
이번 여행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일본인이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나름대로 무한히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에 따른 경영자의 기개입니다. 만주, 한국을 유람해보니 과연 일본인은 믿음직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떳떳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인이나 조선인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79~80쪽)
⇨ 이 글은 나쓰메 소세키가 쓴 글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두 번이나 읽은 팬으로서 나는 그에 대해 실망하게 되었다. 작품의 훌륭함과 작가의 훌륭함은 별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웠다. 제국주의의 침략성에 대해 비난하기는커녕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하게 느껴졌다니.
백화점의 ‘엘레베타 걸’이나 판매를 담당하는 이른바 ‘쇼프 걸’은 조선인에게는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타이피스트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전문직 신여성이었다. 여학교 졸업자는 물론이고 외국 유학생까지 구름처럼 지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선발 기준은 철저히 ‘미모’였다. 심훈의 장편 『영원의 미소』(1933~1934)에는 이미 문사로 활동하던 한 신여성이 생활고에 못 이겨 백화점 판매원으로 들어가자 벌어지는 소동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156쪽)
⇨ 지금과 시대가 다른 만큼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1>
또 어떤 때에는 이렇게도 말했다.
“별 수 없지 않소? 그 양반들은 고귀하신 분들이지만 나는 가난한 시골 주교에 불과하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지 못했다. 다른 여러 가지 기이한 일 중 하나인데, 어느 날 저녁 최고위층 동료들 중 한 사람 집에 가 있을 때 그가 어쩌다 불쑥 이런 말을 입 밖에 낸 것 같다.
“참 훌륭한 괘종시계요! 참 아름다운 양탄자요! 하인들의 제복이 참 화려하오! 이런 건 얼마나 귀찮을까! 오! 나는 이런 사치품은 싫소. 이런 것들은 줄곧 내 귀에 이렇게 외칠 뿐이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91쪽)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사치를 증오하는 것이 지적(知的)인 증오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증오 속에는 예술에 대한 증오가 들어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성직자들에게는 연극과 의식을 제외하고 사치는 잘못이다. 그것은 실제로 그다지 자비롭지 못한 습관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다. 호사스러운 신부는 자가당착이다.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동의 먼지와 함께, 그 신성한 빈곤을 다소라도 자신이 갖지 않고서, 끊임없이, 그리고 주야로 저 모든 고통과 저 모든 불행과 저 모든 빈곤에 접할 수 있겠는가? 화롯가에 있으면서도 따습지 않다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가?(91~92쪽)
⇨ “호사스러운 신부는 자가당착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훌륭한 성직자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
3.
존 윌리엄스, <스토너>
매스터스가 공짜로 제공되는 점심 때 나온 완숙 달걀을 수정구처럼 높이 들고서 이렇게 말했다. “대학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 스토너 군? 핀치 군?”
그들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지. 스토너는 대학을 커다란 저수지처럼 생각하고 있을걸. 도서관이나 유곽처럼 말이야.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자신을 완성해줄 물건들을 고를 수 있는 곳, 모두가 같은 벌집의 작은 일벌들처럼 힘을 합쳐 일하는 곳. 진실, 선함,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모퉁이 너머 바로 다음 복도에 있다는 것이지. 아직 읽지 못한 바로 다음 책, 아니면 아직 가보지 못한 바로 다음 서가에.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그 서가에 이를 것이고, 그러면……그러면…….” 그는 달걀을 한 번 더 바라본 다음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스토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턱이 우물우물 움직이고, 검은 눈이 밝게 빛났다.(43쪽)
⇨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이 글을 책에서 뽑아 옮기면서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스토너와 핀치의 깊은 우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교수일 뿐이지만 핀치는 학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스토너는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학과장의 미움을 사게 된다. 스토너에게 불만을 품은 학과장으로 인해 핀치가 스토너를 해고해야 하는 곤란한 일이 생긴다. 그때 핀치는 스토너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토너를 사려 깊게 배려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아주 멋진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그는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서서히 깨달았다. 어느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오후에 그녀의 집을 찾아갈 핑계를 찾아내고 있었다. 어떤 책이나 논문 제목이 떠오르면 그것을 적어두고 일부러 제시 홀 복도에서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 그래야 오후에 그녀의 집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며 그 제목을 알려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265쪽)
⇨ 스토너는 캐서린 드리스콜과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들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예전에 <스토너>를 읽은 독자의 리뷰를 본 적이 있다. 몇 개의 리뷰에서 이 소설엔 특별한 사건이 없다고 해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읽어 보니 특별한 사건이 몇 개나 있었다. 그리고 스토너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는데 내가 읽어 보니 그는 장점이 많은 특출난 사람이었다. 학문과 책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가졌고 인내심이 많았으며 선한 사람이었다. <스토너>를 읽은 독자라면 스토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토너>는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