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티븐 킹이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는다고 했더라?’ 나와 비교하고 싶었던 거다.
이미 읽은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책장이 있는 거실과 책이 쌓여 있는 안방을 오가면서 찾으니 안방 침대 옆에 수십 권의 책이 쌓여 있는 곳의 맨 아래에 있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나는 독서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대개 일 년에 책을 70~80권쯤 읽는다. 주로 소설이다. 그러나 공부를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좋아서 읽는 것이다. 나는 밤마다 내 파란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것도 소설을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일 년에 70~80권쯤 읽는데 주로 소설이란다. 소설가인 그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그런 대작가가 겨우 소설만 읽다니. 그 정도의 작가라면 철학, 사회학, 심리학, 윤리학, 종교,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해야 되는 것 아닌가.
‘주로 소설만 읽는다.’ 이 말은 소설만 읽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소설엔 심오한 통찰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은 심오한 통찰력이 있어서 다른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이 소설만 읽어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론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삶과 세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좋아서 소설을 읽는다는 그의 글을 읽으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는 걸 무지 좋아해야 할 듯싶다.
난 책을 읽을 때 연필로 인상적인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내 느낌이나 생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무릇 사랑이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서.
내 느낌이나 생각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알았다. 내가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을. 이상한 일이다. 살아 계셨을 땐 보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만날 수 없는 지금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리운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별의 순간이 올 때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가 보다.
「죄책감이란 초대하지 않아도 밤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서.
내 느낌이나 생각 : 죄책감을 갖고 산다면 행복은 가질 수 없다. 죄책감과 행복은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니 죄를 짓고 살지 말 것.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때리는 쪽이 되기보단 차라리 맞는 쪽이 될 것.
누군가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난 빌려 주기 싫어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완독한 책을 또 들춰 보길 좋아하는데, 누가 빌려 가서 그 책이 집에 없으면 마음이 답답해서다. 과장해서 말하면 신경질이 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 간 축들의 공통점은 빨리 되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내 책엔 느낌이나 생각을 써 놓은 게 많아서 책을 빌려 간 사람이 내 비밀스런 일기를 보는 것 같아 싫고 나의 유치한 생각을 들킬 것 같아 싫다.
책을 빌려 주지 않는 게 미안하긴 하다. 그래서 아예 새 책을 사서 선물한 적이 몇 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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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과 관련한 책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칼릴 지브란, <예언자>
5월이 가기 전에 올리고 싶었던 장미꽃 사진입니다.
저 혼자 보기 아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