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요일
나는 토요일이 좋다. 우리 식구 모두 늦잠을 잘 수 있어서 우선 좋고, 신간을 소개하는 신문 지면을 볼 수 있어서 좋고, 재밌는 TV 프로그램이 많아 좋다. TV 프로그램을 예를 들면 드라마 ‘왓쳐’가 있고 잠이 안 오면 밤11시에 방송하는 ‘속풀이쇼 동치미’가 있다. ‘속풀이쇼 동치미’를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난 그걸 보며 남들의 생각을 읽는 게 흥미롭다. 설령 그 프로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걸 생각해 낸 것은 인간이니까 남들의 머릿속이 궁금한 나에겐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인간 공부가 된다고 할까.

 

 

 

 

 

 

2. 계획
이런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매일 독서를 하되 칼럼집을 펼쳐 칼럼 한 편 이상 읽고 다른 책을 읽기. 밤에 잠자기 전엔 시집을 펼쳐 시 한 편 이상 읽기.

 

 

칼럼으로 시작해서 시로 끝나는 하루! 멋질 것 같았다. 그런데 잘 실천하다가 안과에서 치료를 받을 일이 생겨 버려서 이 계획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오늘이 되었다. 눈 치료는 끝났다. 더 이상 안과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눈에 또 병이 날까 봐 마음놓고 책을 보지 못 하겠다. 그저 조금씩 책을 볼 뿐이다. 한 달에 열 권을 읽을 수 있었던 나의 삼십 대 초반의 시간들이 새삼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땐 그게 행복이었는지 몰랐었는데.


  
나의 행복은 책에 대한 흥미를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는 것.
나의 불행은 책을 실컷 볼 수 없다는 것.
역시 하늘은 두 가지 모두를 주지 않네.

 

 

 

 

 

 

3. 판단의 어려움
올바른 의견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어떤 판단을 하려 할 때 보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같은 일이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하고, 시간에 따라 생각이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현명한 최종 판단은 없다고 본다.

 

 

 

 


  
4. 어려운 일
지인이 큰 병을 얻거나 가족을 잃어 슬픔에 빠져 있다면 누구나 그를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 함께 슬퍼하며 울어 줄 수도 있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은 따로 있다. 지인이 회사에서 승진을 했거나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어 기쁨에 빠져 있을 때 진심을 다해 함께 기뻐해 주는 일이다.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이 배가 아프지 않으면 다행이다.

 

 

 

 

 

 

5. 후회
안톤 체호프의 ‘로실드의 바이올린’이라는 단편 소설을 한 번 더 읽었다. 아내 마르파가 죽어 가고 있을 때 야코프는 후회되는 일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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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을 보며 야코프는 웬일인지 자기가 평생 단 한 번도 그녀를 소중히 대하거나 불쌍히 여기거나 손수건 한 장이라도 사주거나 결혼식장에서 뭔가 맛있는 것을 가져다줄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며, 항상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입은 손해 때문에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윽박지르기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물론 그녀를 때린 적은 없지만 그래도 위협은 했고, 그녀는 겁에 질려 꼼짝 못 하곤 했다. 그렇다. 그러잖아도 지출이 많았기에 그는 그녀가 차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뜨거운 물만 마셨다.(132쪽, 로실드의 바이올린)

 

-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에서.
...............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로실드의 바이올린’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은 미성숙하고 어리석고 경솔하다. 나를 보니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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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8-14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왓쳐 넘나 재밌어요. ocn드라마 진짜 잘만들더군요ㅎㅎ

페크(pek0501) 2019-08-14 22:41   좋아요 1 | URL
반갑군요, 물감 님도 왓쳐를 보시다니...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헷갈려서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선인과 악인을 선명하게 구분해 만드는 드라마나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스타일인 듯.

그런데 내용이 복잡해서 꽤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장점으로 생각하고 시청합니다만... ㅋ

hnine 2019-08-14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톤체홉의 저 단편집은 저도 참 인상깊게 남아 있어요.
책 표지도 예뻐서 더 기억에 생생하지요.
전 30대를 정신없이, 책 읽을 여유없이 보냈고, 여유가 없는 생활이라는 것 조차 인식 못하고 보낸 시절이었는데 요즘이야말로 하루 종일 책 붙잡고 있어도 되는 때가 되니 오히려 그게 아상할때가 있어요.
건강이 최고. 그러니까 그 외의 것엔 큰 욕심 놓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19-08-14 22: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민음사에서 나온 체홉의 단편집도 있는데 그것도 좋았어요. 단편의 달인이라고 할까요. 쉽게 읽히고 그러나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드는 체홉의 기술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지요

30대를 바쁘게 보내셨군요. 저는 그때 책에 시간 투자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욕심 안 부리고 글도 조금만 쓰고 있답니다, 건강이 최고 최고!!!

blanca 2019-08-14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일에 공감합니다. 그냥 인간 본성이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그걸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난 안 그럴 자신이 있다,고 여겼는데 이것도 오만이었더라고요. 나이듦이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왓쳐가 재미있군요! 저도 한 번 봐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9-08-14 22:51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 오랜만의 방문이십니다. 잘 지내시죠? 반가워요.

남에게 축하해 줄 일이 있을 때 배가 아픈 건 아니지만 건성으로 하는 경우도 있죠. ㅋ
그런데 암에 걸린 친구가 그걸 잘 이겨 냈을 땐 정말 진심으로 기뻐해 주게 되더라고요. 그때 암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는 느낌도 들고요.

여러 면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9-08-15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운 날 초록색으로 가득한 공원의 작은 길 같은 사진이 예뻐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일을 위로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쉬운 게 아닌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아서요.^^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조금 낫지만, 어제는 정말 더웠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신가요.
페크님, 편안한 광복절 휴일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8-16 11:14   좋아요 1 | URL
저 사진은 흑석동의 현충원ㅡ국립묘지에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풍경이 좋답니다.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 날씨는 덜 더워서 견딜만 하네요. 이렇게 해서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나 봅니다. 빨리 가길 바란 여름이었지만 막상 간다고 하면 서운해지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ㅋ

늦여름을 즐기기로 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 2019-08-16 0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보기 어려우면 기분 안 좋을 듯합니다 눈이 괜찮아져서 다행이네요 책은 쉬엄쉬엄 보시고 자연을 만나도 괜찮겠습니다 산책 하시는군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어리석기도 하죠 어떻게 해도 아쉬운 일이 있겠지만 나중에 많이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나을 듯해요 이렇게 생각해도 잘못하고 말지만... 그건 사람을 대할 때 자주 그러죠 자신도 죽을 때 다른 사람한테 잘한 것보다 잘 하지 못한 걸 떠올릴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19-08-16 11:10   좋아요 1 | URL
여러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그래요. 잘못한 일만 생각나더군요. 죽을 땐 더욱 그럴 것 같아요. 잘못하고 반성과 후회를 하고 또 잘못하고 반성과 후회를 하고...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안 것은 산책 덕분이었어요. 특히 우뚝 솟은 푸른 나무들을 좋아합니다. 산책은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 산책 습관을 들였지만 말이죠.

날씨가 한결 선선해진 느낌입니다. 이젠 아침저녁으로는 덥지 않을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