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어울리지 않게 요즘 시집을 읽고 있다. 흙보다 시멘트에 친숙한 내가 시를 읽는다는 게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 한때 시집만 사서 읽은 적이 있고 시에 흠뻑 빠진 적이 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들을 부러워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와 다른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요즘 계절과 알맞은 것 같아 ‘다시 봄이 돌아오니’라는 시를 뽑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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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돌아오니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이웃의 목소리는 흥이 나고 커지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이 하려 하네
심지어 여러 갈래 진 나뭇가지도
양옥집 마당의 묵은 화분도
- 문태준,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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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활짝 피었다.
봄을 다시 만났다. 아니 겨울과 이별했다. 아니 지난 시간과 이별했다.
우리는 늘 이별을 한다. 사람하고만 이별하는 게 아니다. 시간과도 이별을 한다. 어제와 이별하고 오늘을 만났다. 한 시간 전과 이별을 했고 일 분 전과도 이별을 했다. 같은 시간이란 건 없다. 같은 순간이란 건 있을 수 없다. 현재 시간이 소중한 이유다.
어떤 목표를 이루게 되는 미래만 중요한 게 아니기에 그 목표를 위한 과정에 있는 현재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현재의 소중함을 알겠다.
내 서재 왼쪽의 책 사진 밑에 이런 문구를 적어 놓은 것도 현재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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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함과 즐거움을 얻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현재를 즐긴다. - 페크(pek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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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

이런 풍경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