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파란 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9
토니 모리슨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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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도에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이 1941년을 배경으로,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대학에서 강의하며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던 토니 모리슨이 직접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자신에게 내재된 경험과 감정을 언어를 통해 풀고, 정리하고 싶은 열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뼛속까지 사무친, 뭉쳐지고 일그러진 무수한 얘기 중에 어떤 것을 꺼내 어떻게 전개해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도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첫 소설을 뻔한 내용으로 채우지 않았다. 작가는 억울하게 핍박받은 피해자로서의 흑인을 서술하기보다, 검둥이로 불리는 흑인 공동체 안을 먼저 들여다봤다. 1970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지만 토니 모리슨은 뒤늦게 1993년판에 서문을 덧붙인다. 서문에서 그녀는 작품을 쓴 의도와 구성방식을 설명한다. 작가는 바깥에서 받은 미움이나 증오로 인한 스트레스와 힘듦을 왜 안에서 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남들의 멸시나 배척을 저항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초래되는 더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것에 작가는 관심을 가진다. 지독한 자기비하의 피해자는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의 기질로 자신보다 약한 공동체 안(여자와 어린이)을 공격하거나, 또는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아를 무너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린 나이나 성별이나 인종으로 인해 해로운 외부 영향력에 가장 저항하기 힘들 법한 인물의 삶으로 들어가려는 기획(p.8)’을 했다고 한다.

 

토니 모리슨이 던진 이 문제의식은 단지 흑인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든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특히 남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파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존감의 결여는 어린 아이의 자존감을 빼앗아 결국 폭력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양산한다. 다만 흑인이나 유대인처럼 민족 전체가 핍박받은 경우는 해결되지 못한, 뿌리 깊고 복합적이며 단단한 문제가 더 많을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늘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안 좋은 일이 생겨 고통을 받다가도 그것이 극복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희망도 가질 수 있다. 그러다 행운이 찾아오면 웃을 일이 생기고 지난했던 과거는 자신을 성장시킨 밑거름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억울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 오하이오주 로레인에 사는 촐리, 폴린 브리드러브부부에게는 결코 그런 삶이 주어지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잠시 사랑(연민인지도 모른다)에 빠져 결혼하지만 곧 촐리는 바깥을 돌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폴린이 일하러 가야할 곳은 백인의 집이다. 녹색과 흰색이 섞여있는, 문은 빨간색인 예쁜 집에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웃으며 제인과 놀아주고, 강아지와 고양이가(p.17)’사는 흑인들이 동경하는 백인의 집에서 폴린은 마치 그곳이 자신의 집인 양 쓸고 닦고 열심히 요리를 한다. 촐리는 분노와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아내에게 퍼붓는다.

 

당연히 촐리와 폴린은 싸운다. 남자가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에 여자가 되받아치며, 부부는 육탄전을 벌인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그들의 아들인 새미는 촐리의 머리에 프라이팬을 내리친다. 촐리는 정신을 잃고 그제야 싸움은 끝난다. 촐리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아내 머리를 후려친다. 그 가족은 나앉게 된다. 전형적인 불행한 집구석이다.

 

[내쫓기는 것과 나앉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내쫓기면 어딘가 갈 데가 있지만, 나앉으면 갈 곳이 없는 것이다.나앉는다는 건 무언가의 끝이었다. 우리의 형이상학적 조건을 정의하고 보완하는,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사실이었다.()당시 셋집살이를 하던 흑인 촐리 브리드러브는 자기 가족을 나앉게 만들었기에 인간적 배려가 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짐승 무리에 합류한 것이다. 정말로 늙은 개, , 쥐새끼 같은 검둥이가 되었다.

-p.32~33]

 

그런 짐승 같은 환경에서 자란 그들의 딸 페콜라는 의지할 대상이 없다. 가족이 페콜라를 보호하거나 지탱해주지 않으므로 그녀는 당연히 자존감을 지킬 수 없다. 정체성의 혼란이 와 인종적 자기혐오를 나타내게 된다. 페콜라는 자신을 부정하며 노란 머리의, 얼굴이 하얀,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 본연의 모습에서 시작된 모든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페콜라만이 아니다. 백인의 피가 섞여 있는 갈색 피부의 깡마른 여자들은 조용한 흑인 동네에 살며 집을 멋지게 가꾼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백인의 일을 세련되게 하는 법을 배운다. ‘펑키함을 죽을 듯이 싫어하며, 자신의 몸에서 그것이 절대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 여자들이 남자를 잘 수발할 것을 알기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남자가 그들을 선택해 결혼한다. 자신은 유색인이라 생각하며 검둥이를 혐오한다. 미묘하며 구분이 잘 되지 않은 자신의 검둥이 성향을 언제라도 뭉개려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p.113).

 

이 소설의 화자인 클로디아와 그의 언니 프리다에게 주어진 환경 역시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신분과 계급 모두에서 소수자인 건 페콜라와 마찬가지다. 그들의 부모는 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들도 걸핏하면 매를 맞는다. 겨울날 가죽띠로 맞는 둔탁함보다 봄의 개나리와 라일락에서 꺾은 녹색 회초리로 맞는 쓰라림의 강도가 훨씬 강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들과 페콜라가 다른 점은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족에게 불이익이 닥치면 같이 맞서 싸운다. ‘나앉는 것의 두려움을 알기에 재산과 소유를 향한 갈망을 가지고 셋집살이에서 벗어나고자 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맨다. 페콜라가 끔찍한 일을 당해 임신했을 때 클로디아와 프리다만이 아기의 안전한 탄생을 기원한다. 그들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둘이었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연대, 특히 여성 연대의 필요성을 그들이 보여준다.

 

똑같은 상황일 때, 인간의 행동은 왜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매번 궁금하다. 누군가는 내부로 향해 자신의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고, 다른 누군가는 내부에서부터 사랑하고 뭉치며 같이 저항하는지가?

 

촐리는 젊은 시절 덤불 속에서 어린 소녀와 성행위를 할 때 백인에게 발각되며 굴욕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그때 자신이 느낀 충격과 무력감에 대한 분노를 그 대상인 백인에게 표출하지 않고 어린 소녀를 증오하며 경멸한다. 그 이후로 촐리는 모든 분노를 바깥인 아닌 내부로 퍼붓는다.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아내와 딸에게 푼다. 이런 일은 너무 많다. 나약하고 졸렬한 인간들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퍼붓는 폭력적 성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이 생각났다. 그동안 완전 잊혀 진 기억이었다. 누가 나에게 그 인형을 선물했는지 모르지만 인형의 생김새는 페콜라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 긴 속눈썹이 있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인형을 눕히면 눈이 감기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난 인형을 갖고 놀았지만, 똑같은 모습의 인형을 선물 받은 이 소설의 화자인 클로디아는 그 인형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인형을 망가뜨려버린다. 자연스럽게 흑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백인에게 옮겨놓는 무심함을 클로디아는 경계한다.

 

토니 모리슨의 첫 장편소설인 가장 파란 눈은 촘촘하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여러 감정을 표현한 글이다. 사계절로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넘나드는 시점에 군더더기가 없다. 작가가 제기한 인종적 문제의식은 결국 보편적 인간 삶으로까지 확대되고 연결되는 역할을 한다. 다만 팽팽했던 전개가 소설의 후반부에 촐리와 폴린의 삶의 설명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아쉬웠다. 긴장이 풀어졌다. 서문에서 말했듯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느낌이다.

 

[그랬다.

흑인 여자아이가 백인 여자아이의 파란 눈을 갈망하고, 그 갈망의 중심에 자리한 참혹함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그런 갈망이 실현되었을 때의 끔찍한 폐해뿐이다.그애가 받은 손상은 전면적이었다.팔을 접어 손을 어깨에 얹은 채 파닥거렸다. 날아오르려 영원히 기를 쓰지만 그 헛된 노력이 기괴할 정도인 새처럼. 닿을 수 없는-볼 수조차 없는-마음속 계곡을 가득 채운 푸른 허공만을 응시하며, 날개는 있지만 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헛되이 파닥거리는 새.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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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0-02 1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습니다.

몇 안되는 제 전작주의 작가
중의 한 명이지요.

어떤 책은 또 모니터링도 해서
더 애착이 가는 그런 작가일까요.

내부의 번뇌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에게 투사하는 촐리 속
에 내재된 악에 대한 묘사가 참...

<Home>의 출간도 기대해 봅니다.

페넬로페 2024-10-02 19:29   좋아요 3 | URL
책을 읽다보면 전작 읽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는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오래간만에 토니 모리슨의 소설 읽었는데, 내용도 좋았지만 언어의 풍부함에 놀랐습니다.
기회되면 조금씩이라도 토니 모리슨 다시 읽기 하고 싶어요^^

서곡 2024-10-03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꽃잎이 진한 파란색 수국 같네요...페넬로페님 오늘 개천절 휴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4-10-03 13:06   좋아요 2 | URL
아, 수국인가요?
저는 파란 눈만 보느라 정작 꽃잎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책에 표지 디자인 설명이 있으면 좋은데 그런게 없더라고요.
서곡님!
휴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요^^

서곡 2024-10-03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리슨은 제 기억에 제가 완독한 책은 오래 전에 읽은 ‘재즈‘ 밖에 없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10-03 13:08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예전에 토니 모리슨의 작품을 읽었는데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요.
이번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잘 알게 되어 쉽게 읽은 것 같습니다^^

서곡 2024-10-03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란 수국 사진 제 블로그에 포스팅했답니다 ㅎ 제주도에서 다채로운 수국꽃들을 잔뜩 본 추억이 떠오릅니다...

페넬로페 2024-10-03 15:11   좋아요 2 | URL
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4-10-04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빌러비드>가 취향에 안맞았어서 손 놓았는데, 약간 빌러비드랑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페넬로페 2024-10-04 18:31   좋아요 2 | URL
빌러비드보다는 훨씬 편하게 읽으실 수 있어요. 아무래도 흑인의 이야기니 내용은 비슷하게 흐를지 몰라도 이 소설은 잘 읽힙니다^^

독서괭 2024-10-08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상황일 때, 인간의 행동은 왜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매번 궁금하다. 누군가는 내부로 향해 자신의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고, 다른 누군가는 내부에서부터 사랑하고 뭉치며 같이 저항하는지가?˝
이거 저도 항상 궁금합니다.. 어떻게 애들을 후자의 누군가로 키울 수 있을지?!!
<가장 파란 눈> 아직 못 읽었는데, 예쁘게 새로 나왔군요! 페넬로페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4-10-08 15:37   좋아요 1 | URL
저도 항상 궁금했는데, 토니 모리슨 작가가 그 부분에 대한 것을 주제로 글을 써주어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정답은 없었어요.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쁘게 간다는 것이 아쉬웠고요. 독서괭님께서는 당연히 애들을 후자로 키우시죠. 지금 잘 하고 계시다는 걸 보지 않아도 압니다.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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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의지(Wille)와 욕망(Begierde)이다. ‘우주의 근원적 실재는 무한한 결핍에 시달리는 맹목적 의지라는 성격을 가지며, 그것이 개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 인간은 끝없는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이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이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이며 염인주의자(厭人主義者)이기도한 쇼펜하우어는 산다는 것 자체를 고통이라고 여긴다. 그는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무수한 문학 작가들이 그의 추종자였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말하는 것은 딱 한가지다. 쇼펜하우어는 우주의 근원 자체가 맹목적인 욕망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욕망을 극복하고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끝없는 욕망이 이어진다.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되면 곧바로 다른 욕망이 찾아온다. 보통 동시다발적인 욕망이 존재한다.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되어도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고,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고통에 시달린다.

 

사는 게 고통이고 힘든 이유가 인간에게는 욕망뿐만 아니라 권태도 갖고 있는 것이다. 모든 욕망이 충족되면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권태를 느낀다.(인간이란 동물은 참 어렵다)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사람은 욕망보다는 권태로 인해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수한 빌런들은 더 많이 갖고, 자신이 모든 세상을 지배하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인간의 상상력,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시간 의식 등도 인간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든다.

 

욕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욕망은 우리에게 목표를 부여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게한다. 하지만 문제는 욕망은 끝이 없고, 그것이 충족되어도 행복감은 잠시뿐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법은 금욕주의적인 의지 부정, 심미적 직관(욕망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세계로의 이동)과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직관적 인식이다. 인간의 성격도 타고 나기에 고치기 힘들지만,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격도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된다.

 

요즘 대한민국에 쇼펜하우어 열풍이 엄청나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불안한 상황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고민,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조금은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유행일지라도 한번쯤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것을 새겨둘 필요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욕망을 억제하기는 힘들다.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다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쓸모없는 것인가에 대한 객관화와 정확한 경계는 꼭 있어야 한다. 누군가 해주는 것이 아닌, 각자가 가져야 할 경각심에 쇼펜하우어는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사가명강 시리즈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책이라 잘 읽히고 이해가 잘 된다. 다만 철학적 깊이가 조금 부족하고, 너무 많은 예시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예시가 신박하지 않고 고리타분해 지겨웠다. 쇼펜하우어 입문서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냉소적이고 심지어는 악의적으로까지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인생과 인간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만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인생에 대해서 퍼붓는 냉소는 우리가 삶과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두면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동안 대단한 일로 생각하면서 집착했던 것을 하찮은 것으로 보게 되면서 평온한 마음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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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20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욕망이라고 해서 다 안 좋은 건 아니겠지요 좋은 욕망을 가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게 있어야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겠지요 이루지 못해서 고통일지, 그것보다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기는 고통이 더 힘들 것 같은데... 사는 건 고통이죠 어쩌면 뭔가 바라서 그런 걸지도... 바라는 건 없는데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건데...


희선

페넬로페 2024-09-20 16:32   좋아요 2 | URL
사람이 좋은 욕망보다는 불필요하고, 자신을 다그치는 욕망을 더 많이 갖는게 고통의 원인 인 것 같아요.
희선님은 바라는게 없으신가요?
저는 바라는게 너무 많아 고통스러운가봐요 ㅎㅎ

페크pek0501 2024-09-20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요즘 쇼펜하우어 책이 많아요. 저도 한 권 구매했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워요. 인간은 불행이 없으면 권태로울까요? 권태롭거나 불행한지 잘 모르겠어요. 인간은 원래 우울한 성향이 있다는 글도 기억이 나네요. 쇼선생의 글은 일독할 만하지요.^^

페넬로페 2024-09-20 22:46   좋아요 3 | URL
저는 발자크의 소설을 읽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읽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권태라는 것이 큰 불행의 원인이 될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24-09-22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서가명강 시리즈로 나온 책이네요. 이 시리즈에 좋은 책이 많다고 들었어요.
이 책은 21년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도 자주 보였던 것 같았어요. 출판 트렌드일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에 잘 맞는 책일수도 있겠지요.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폭염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갔어요.
달라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4-09-22 23:26   좋아요 3 | URL
요즘 쇼펜하우어 열풍이 부는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 딱 한가지 인 것 같아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 안에서 내실을 다지고, 불필요한 것을 추려내는 것요.
날씨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서늘하네요. 그래서인지 감기 몸살에 걸렸어요. 코로나 증세와 비슷한데 내일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서니데이님께서도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세요!!

독서괭 2024-09-26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쇼펜하우어.. 헤어스타일이 멋진데요? ㅋㅋㅋ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직관적 인식’이라니, 의외로(?) 아름다운 해결책입니다.

페넬로페 2024-09-26 15:28   좋아요 2 | URL
알려진 에피소드와 쇼펜하우어의 모습이 약간 일치하는 것도 같아요 ㅎㅎ
우리 모두 하나라 욕망의 지배를 예외없이 모두 받는다는 주장을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는것 같아요~~

2024-10-01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4-10-01 22:57   좋아요 2 | URL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요.
오늘 갑자기 장례식장 갈 일이 생겨 옷 잔뜩 껴 입고 다녀왔습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 하세요^^
 














한 작가의 전작읽기는 쉽지 않다. 외국 작가인 경우, 모든 작품의 번역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워 전작읽기의 범위도 모호하다. 나는 전작읽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그들이 쓴 모든 작품이 다 좋을 수는 없다. 전작읽기라는 목표에 매달려 고생하느니 차라리 다른 새로운 작가를 많이 만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19세기 전반부의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인간극>이라는 총칭으로 치밀하게 담고자 했던 발자크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아주 기발하고도 발칙한 방법을 고안한다. 바로 인물재등장기법이다. 같은 인물을 자신의 여러 다른 작품에 계속 등장시키는 것이다. 발자크를 그만 읽고 싶어도 다시 등장하는 그 인물이 궁금해 주저앉게 된다. 이러다 국내에 소개된 발자크의 소설을 다 읽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루이 랑베르잃어버린 환상에 잠깐 등장한다. 뤼시앙 샤르동이 파리에서 만난 다니엘 다르테즈가 속해 있는 여러 천재들의 서클에서 루이 랑베르는 리더였지만, 뤼시앙이 그 서클에 가입했을 때 이미 루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상태였다. 뤼시앙과 마찬가지로 지방 출신인 루이 역시 파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루이는 파리 학계 분파들의 싸움, 교육기관의 태만, 가난과 병약함에 의해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외삼촌이 있는 블루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 중의 하나로, 신비스런 천재이고, 그들의 첫 번째 우두머리이고,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는 여러 이유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고, 뤼시앙도 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자주 듣곤 했던 그 사람을 잃고 난 후, 이들은 모두 다르테즈를 그들의 우두머리로 여기고 있었다. -‘잃어버린 환상’, p.243]

 

인간극중 철학소설로 분류되는 루이 랑베르는 발자크의 자전적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루이가 다녔던 방돔 기숙학교를 발자크도 직접 다녔고, 그곳에서 경험한 것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서술자로 개입하지만, 루이 역시 발자크 자신이다. 스승 없이 혼자서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한 루이는 엄청난 기억력과 이해력으로 자연과 우주를 직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뛰어난 유추와 투시력, 상상과 몰입, 집중, 명상으로 현실에서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를 만난다. 그것은 신비주의로까지 연결된다.

 

루이의 철학적이며 과학적인 사유는 광기와 몽상을 가져와 평범함과 순종을 원칙으로 하는 기숙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는 의지론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론을 증명하려했지만 신부에게 노트를 빼앗긴다

서술자는 의지론에 대해 설명하지만 이 부분은 상당히 어렵다.

 

[루이 랑베르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는 근원적으로 영기를 가진 물질이 존재하며, 그것은 기본적인 정신 에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 물질이 변화되어 의욕(volution)’의 근원인 의지(volonté)’가 된다. ‘의지는 일군의 힘인데 그 힘에 의해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행위들을 재현한다. ‘의욕이란 인간이 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그 행위를 말한다. 랑베르에게 사유(pensée)’는 의지의 산물들의 진수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사유의 본질인 관념(idée)’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관념은 행위를 구성하며 그 행위에 의해 인간은 사유할 수 있다. 이렇게 의지와 사유는 두 가지 기본능력이며, 의욕과 관념은 그 두 가지 활동에 따른 두 가지 결과이다.()

-p.181~182, 역자해설에서]

 


이러한 이론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신비주의에 대해 많이 서술되고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의 번역자인 송기정 선생이 집필한 오노레 드 발자크에서 도움을 받았다.

 

발자크는 <동물자기(動物磁氣)>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동물자기론은 18세기 말 독일 의사인 프란츠 안톤 메서머가 제창한 이론이다. 우주는 보이지 않는 유체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의 몸에도 유체가 존재한다. 유체의 순환이 원활하면 건강하고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난다는 것이 메서머의 주장이다. 빈에서 추방된 메서머는 파리에서 환영받았고, 그에게 치료받고자 돈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쇠막대기로 환자를 치료했으며 종종 사람들은 신경 발작을 일으켰다.(믿기지 않는다) 1784년 메서머의 제자였던 피세귀르 후작은 자기적 최면을 발견한다. 최면에 걸린 사람은 투시력을 획득하고 현재와 미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발자크는 자기적 최면이야말로 인간과 신이 직접 소통하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매료당한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로마 교회의 예배 의식에는 반대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발자크는 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신비주의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이자 과학이었다. 1830년대 프랑스에는 신비주의가 유행이었고 수많은 신비주의 단체와 종파가 활동했다. 발자크에게 신비주의는 주술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이 가능한 과학이었다. 그는 과학, 철학, 신비를 분리하지 않았다.

 

1832년에 집필된 루이 랑베르에도 동물자기 이론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루이는 자기 세계에 빠져 경험하지 않고 투시와 통찰만으로 실제를 설명할 수 있다. 루이는 짧은 생의 마지막 시기에 강경증 발작을 일으킨다. 59시간 동안 시선을 한 곳에 붙박은 채 꼼짝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그의 아내 폴린은 그가 육체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폴린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루이는 28세의 나이로 죽는다. 루이 랑베르는 과도한 지적 활동이 에너지를 탈진시켜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인간 조건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지식 추구가 루이를 광기와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중에서]

 

 

평범한 사람이 천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고, 광적인 행동들의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을 이끌고 발전시킨 이는 천재가 대다수이다. 천재로 태어나 능력을 잘 펼친 사람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천재들은 피지도 못하고 좌절했을 가능성이 많다. ‘루이 랑베르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직관할 수 있는 천재적 기질을 지녔지만 자본주의가 이미 승리한 그때, 그가 파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처세에 약한 사람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현실적 감각이 없는, 머리로만 존재하는 사람은 당연히 불행하다. 그런 사람에게 남는 것은 광기와 죽음뿐이다.


발자크의 소설, 루이 랑베르는 소설로서는 재미가 별로 없고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다. 발자크는 이 소설로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번 얘기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설움과 방돔 기숙학교에서 보냈던 힘든 생활을 루이 랑베르라는 인물을 통해 객관화시켜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 시절 발자크는 엄청난 독서를 했고, 그의 천재적 기질은 이 소설의 주인공 루이와 많이 닮았다. 발자크가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써야만 했던 것이 어쩌면 그를 살게 했을 원동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삶도 루이 랑베르와 비슷한 결말을 맺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무덤에는 이름도 사망 날짜도 새겨지지 않은 초라한 돌 십자가 하나만 세워져 있었다.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꽃은 미지의 향과 색채를 담고 이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심연 속으로 떨어져버렸던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처럼 그 역시 거만하게 자기 삶의 비밀을 모두 내던진 채 무(無)속에 빠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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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18 0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하마터면 뇌경련이 올 듯한 발자크였다고 기억합니다. 다시는 펼쳐보지도 않았습니다. 흑흑...

페넬로페 2024-09-18 09:29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재미가 없는 소설이더라고요.
그나마 해설을 읽어 배경이 이해된 게 다행이었어요^^

새파랑 2024-09-18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작읽기 힘들다는데 동감합니다~!! 발자크는 이름부터 어렵다는.... 그래도 페넬로페님은 꾸준히 전작하시는군요~!!

전 발자크 2권 읽었지만 벌써 지쳤습니다 ㅋㅋ

페넬로페 2024-09-18 15:42   좋아요 2 | URL
독서 동아리에서 올해 발자크 읽기를 해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있어요. 저는 아무래도 발자크보다는 프루스트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님
추석 연휴에 책 많이 읽으시네요^~~
즐독하시길요^^

청아 2024-09-18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고 있던 걸 서재 이웃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썼다던지,
친구랑 통화하다가 비슷한 생각을 최근에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 우주의 일부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이런 내용이 칼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과도 연결이 되고 양자물리학과도 관련지어 논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페님의 이 글도 저에게 마찬가지예요. 종종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갑자기 ‘도를 아십니까‘
가 생각나는건 적당히 하라는 제 이성의 속삭임이겠지요?ㅎㅎㅎㅎ)

아무튼 읽어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책 좀 읽다 들어와 봤습니다.

페넬로페 2024-09-18 22:56   좋아요 3 | URL
발자크가 쇼펜하우어 철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쇼펜하우어 사상이 서양의 이성 중심 철학보다 불교나 인도 철학에 더 근접하더라고요.
이 글에서 말한 동물자기론이 동양의 기 사상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음양오행이라는 우주의 원리처럼 발자크도 신비주의를 과학으로 봤고요.
루이 랑베르가 소설로서는 좀 재미가 없는데 소설 외적인 면이 흥미로웠어요^^

희선 2024-09-20 0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다고 느꼈는데 끝까지 읽고 이렇게 쓰시기도 했네요 발자크는 사업이 잘 안 돼서 소설을 쓰게 됐군요 발자크가 쓴 소설이 다 좋은 건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소설을 쓰다니 대단하기도 합니다 돈을 갚으려고 썼다고 해도...


희선

페넬로페 2024-09-20 16:34   좋아요 1 | URL
재미없어도 제가 웬만하면 책을 끝까지 읽어요. 루이 랑베르가 조금 재미 없었지만
다른 요소들이 흥미롭더라고요.
발자크의 인생 자체가 완전 소설입니다^^
 
















연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조각난 기억이 하나 있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일요일 낮에 아버지가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 옆에서 같이 영화를 봤는지, 아님 왔다 갔다 하며 한 번씩 TV 화면을 쳐다봤는지 확실하지 않다. 검정색으로 칠해진 벽에 딱 두 점의 그림만 걸려있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도 영화의 두 장면만 기억 속에 돌출되어 있다. 한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혼자 낚싯배에 앉아있는 것과 항구에 뼈만 남은 물고기를 매단 배가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 영화가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 노인과 바다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 읽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들은 풍월로 대충 내용을 알아, ‘인간은 파멸당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소설 속 문장의 전후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나는 이제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50년 동안이나 어부로 살았지만 산티아고에게 남은 건 조각배 하나와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보이는밀가루 부대 조각으로 기워져 있는 돛, 거의 텅 빈 판잣집이다.

 

그에게는 동료이자 제자인, 자신을 다정하게 돌봐주는 착한 소년 마놀린이 있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띤눈과 신념, 겸손이 있지만 노인은 팔십 사일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어부로서의 운이 다했다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 되지만 노인은 팔십오 일째 되는 날에도 바다로 나간다. 이른 새벽에 커피 한 잔만을 마시고 물병 하나만 싣고 조각배를 바닷물에 밀어 넣는다.

 

노인은 노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간다. 노인은 끊임없는 생각을 하고, 큰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헤밍웨이가 부리는 문장의 마법이 시작된다. 그의 문장은 산티아고가 있는 망망대해의 한가운데를 단 하나뿐인 세상으로 만든다. 헤밍웨이는 그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산티아고와 단둘이 만난다. 조류와 바람, 산티아고가 하는 말에 내 모든 감정이 두둥실 떠오른다.

 

드디어 엄청나게 큰 청새치가 미끼인 정어리를 문다. 힘센 그 놈은 노인의 배를 먼 바다로 끌고 간다. 낚싯줄이 계속 풀어져 끊기게 될 위험이 있으니 노인은 낚싯줄을 등에 감은 채 적당한 힘으로 버텨줘야 한다. 고기는 물속에 있다. 23일 동안 노인과 청새치의 힘겨루기는 팽팽했고 그것을 견디느라 노인은 뼛속까지 피로함을 느낀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손에서 쥐가 난다. 원을 돌며 버티던 청새치는 결국 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고 노인은 고기의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쪽 옆구리에 작살을 꽂는다.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아 있는 힘, 그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의 마지막 고통과 맞섰다.]

 

노인은 자신의 어부 생활 통틀어 가장 큰 고기를 낚았지만 피 냄새를 맡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상어 떼에 의해 죽은 청새치의 살은 뜯겨 나간다. 노인은 그때마다 작살과 몽둥이로 상어를 내리치지만 소용없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이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는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은 온갖 생각을 한다. ‘자신 옆에 소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 낚시에 걸린 큰 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 이라는 생각, 고독하다는 생각.

그리고 고기를 그냥 놓아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한다.

 

영화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의지만 봤을 것 같다. 파멸당할 지라도 패배할 수 없다는 인간의 힘을 당연히 믿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떠나신지 오래되고 나도 초로의 나이가 된 지금, 이제야 읽은 이 소설에서 나에게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뭣하나 자신의 손에 쥔 것이 없는 산티아고가 내뱉은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이나, ‘그냥 물고기를 놓아 주었더라면이라는 말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묵묵함과 성실로 평생을 살았고 어부가 지녀야 할 지혜와 기술을 가졌지만 그것으로 산티아고는 오늘만을 살 수 있다. 내일 그는 다시 고독과 사투가 있는 망망대해로 나가야만 한다. 그런 그에게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은 과거를 견딘 영광뿐이다. 무엇이 소중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저 그의 가슴에서 출렁이는 파도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19617월 엽총으로 자살하기 전 출간한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이라 더 그런 느낌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 자신이 바로 산티아고 노인일수도.

 

[한데 너를 이토록 녹초가 되게 만든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판소리로 만나는 노인과 바다라니, 관람하기도 전에 마음이 설레고 기대되었다. ‘국악인 이자람고수 박근영만이 덩그러니 있는 무대였다. 조용히 앉아서 판소리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노인과 바다만 듣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자람의 공연은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레이션과 모든 장르의 판소리와 액션이 있는, 완벽한 모노드라마였다. 큰 동작이 없었고, 동선도 넓지 않았지만 그 어떤 다른 공연보다 압도당했다. 소설책 한 권을 이자람 한 사람을 통해 통째로 관객들이 읽을 수 있었다. 거기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관객들의 추임새도 있어 재미있기도 했다. 다른 언어로 된 소설을 판소리로 만든 것이 참신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내가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춘향가수궁가같은 전통 판소리 공연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자람,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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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9-16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판소리 노인과 바다는 생각도 못했네요. 헤밍웨이의 문장의 마법이 판소리의 가락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게 신기 합니다. 와~어떤 경험일까 저도 들어 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9-16 09:13   좋아요 2 | URL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이자람씨와 고수 한 명이 어쩜 그렇게 무대를 채울 수 있는지 놀라웠어요.
판소리와 함께 장면들을 몸으로 표현해(실감나게 연기를 하더라고요) 주어 더 입체적이었고
유머 코드도 많았어요.
마힐님!
중국에도 추석 명절이 있나요?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요^^

서곡 2024-09-16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 이보영 배우가 낭독한 오디오북이 있더라고요 함 들어보고는 싶은데 아 왜 이리 다양한 책과 콘텐츠가 많은지요...

페넬로페 2024-09-16 09:53   좋아요 2 | URL
그만큼 이 스토리가 매력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밀리의 서재에서 열린책들판으로 성우들이 연기하듯 들려주는 오디오북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직까진 책을 직접 읽어야 글을 쓸 수 있겠더라고요^^

stella.K 2024-09-16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공연 어디선가 또 한다는 소식 못 들었죠? ㅠ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어요. 페페님의 이 리뷰를 읽으려고 그랬나 봅니다. ㅎㅎ
전 오디오북 체험만 잠시 해 본 적은 있는데 그럴 수 있겠네요. 책이란 지고로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사람은 흔적 남기길 좋아한다는데. ㅋ

페넬로페 2024-09-16 12:37   좋아요 2 | URL
앗, 신기한 우연이네요.
오늘 아침 스텔라님께서 생각하신 노인과 바다는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는 이때껏 여러 번 공연되었더라고요.
아마 그녀의 시그니처인 것 같아요.
무대 공연에서 온 힘을 다해야해서 아마 장기공연은 힘들성 싶어요.
기회되시면 한 번 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유수 2024-09-16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엊그제 이 공연 보러 저도 다녀왔는지라 너무 반가운 글입니다ㅎㅎ리뷰 귀하게 읽고 갈게요.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4-09-16 12:43   좋아요 2 | URL
앗, 반가워요, 유수님.
저는 금요일 저녁에 보고 왔어요.
유수님 감상은 어떤지 궁긍합니다^^
유수님께서도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요^^

유수 2024-09-16 12:48   좋아요 2 | URL
저도 금요일에 봤어요. 1부가 조금 초과였죠. 지방 사는지라 고속버스를 타야해서(그 다음 편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 15분여 남기고 나와야했어요 ㅜㅜ 저는 헤밍웨이의 원작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공연 정말 좋았습니다. 자람님 공연은 기회가 되면 가려는 편인데 판소리 공연은 처음이라 더 놀랍고 좋았어요. 남아서 끝까지 본 친구를 부러워하며 다음을 기약하던 차에 이 리뷰를 보니 너무 기쁘네요 ㅎㅎ

페넬로페 2024-09-16 12:58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굳이 인터미션이 없어도 되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자가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어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는 2부에 니콜이 우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끝까지 같이 보지 못해 아쉬워요 유수님^^

유수 2024-09-16 21:43   좋아요 2 | URL
저도 너무 아쉬워요. 페넬로페님처럼 같이 본 친구(공연 두번째 본다는)도 니콜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했거든요. 어땠을지, 어땠기에! 증폭되는 궁금증을 페넬로페님 후기로 달랩니다. 저도 후기 짧게라도 기록해봐야겠어요.

2024-10-10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0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냐 니에리 레드 마운틴 AA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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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가 계속 되어 힘들다고 투덜댔는데, 기온이 조금 내려가니 마음이 스산하다. 신맛과 쓴맛이 잘 어우러진 향이 입 안에 오래 남는 ‘케냐 니에리 레드 마운틴‘을 마시며 내 마음의 간사함을 지운다. 이 커피가 나에게 감사하며 살라고 가르쳐준다. 여기에 달콤함을 더하는 건 네 몫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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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9-13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잘 지내셨나요.
날씨가 다시 더워지고 비가 옵니다.
추석 연휴가 오늘부터 시작이라서 명절인사 드리러 왔어요.
즐거운 명절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4-09-13 23:59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비 그치면 날씨가 조금 시원해지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길요^^

2024-09-14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5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4-09-16 0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즐커하시며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길요~~

페넬로페 2024-09-16 09:13   좋아요 2 | URL
서곡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