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장과 순간
박웅현 지음 / 인티N / 2022년 9월
평점 :
한 번씩 이런 책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박웅현’이라는, 이름만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람이 왜 이런 책을 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독자의 성원을 많이 받아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이 책은 왼손으로 책의 겉표지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나머지 부분을 잡고 그냥 휘리릭 넘기며 읽어도 되는 책이다. 양장본, 많은 여백, 두꺼운 재질의 종이, 거기에 저자가 좋아하는 여러 작가의 문장들... 그리고 저자의 감상과 느낌이 조금 적혀있을 뿐이다.
[“나의 조건을 벗어나는 의미가 존재한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오직 인간적인 언어로 된 것만을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하고 말한 카뮈를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곧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품 안의 고양이가 더 중요하다”라고 했던 장 그르니에를 떠올리게 하며,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던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기억하게 한다.
-p18]
나는 책을 읽을 때, 이런 문장을 만나면 가장 짜증이 난다. 카뮈와 도스토옙스키, 카잔차키스는 그냥 그들의 책에서 읽으면 된다.

이 빨간 글씨!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말하고 싶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이 문장을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루스트의 그 많은 아름다운 문장 중에 이 문장을? 저자는 결국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을 인용했을 뿐이다.
이 책은 출간된 지 한 달 후쯤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 받게 되었는데 벌써 1판 4쇄이다. 그만큼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기대한 만큼 나의 실망도 크다. 이 정도의 책은 칠순잔치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돌릴 문집 정도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활자가 된다.
재료가 고갈된 계절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동서문화사, p.125)’에 나온 구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료가 부족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