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아이네아스의 노래)> 4권에서 트로이야에서 빠져나와 힘든 항해를 한 아이네아스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드디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한 사실은 가증스런 여신을 통해 리뷔아의 대도시에 퍼진다.

 

베르길리우스는 소문의 여신(파마-로마 신화에서 소문 및 명성의 여신)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소문은 세상의 악 가운데 가장 빠르다.

그녀는 움직임으로써 강해지고 나아감으로써 힘을 얻는다.

그녀는 처음에는 겁이 많아 왜소하지만 금세 하늘을 찌르고,

발로는 땅 위를 걸어도 머리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지의 여신이 신들에게 화가 나

코이우스와 엥켈라두스의 누이로서 그녀를 막내둥이로

낳았다고 한다. 그녀는 발이 빠르고 날개가 날랜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괴물로 몸에 난 깃텰만큼 많은

(들어도 믿어지지 않겠지만) 잠들지 않는 눈과 혀와 소리 나는 입과

쫑긋 선 귀를 그 깃털 밑에 갖고 있다. 밤마다 그녀는

어둠을 뚫고 하늘과 대지 사이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한시도 눈을 감고 단잠을 자는 일이 없다.

또한 낮에는 지붕 꼭대기나 높은 성탑들 위에 않아 망을 보며

대도시들을 놀라게 한다. 그녀는 사실을 전하는 것 못지않게

조작된 것들과 왜곡된 것들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그녀는 신이 나서 여러 백성들 사이에 온갖 이야기를

퍼뜨리며 사실과 허구를 똑같이 노래해댔으니. -p125]

 

소문에 대해 이토록 완벽하고 유머러스한 표현이 있을까?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서사시를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나 신들이 많아 기억하기 쉽지 않고, 그들의 사상이나 생활 방식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 어렵지만 저런 문장들을 접하면 감탄하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먼 과거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며 전율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 사는 방식과 삶의 방향들에 고개 숙이게 된다. 시인의 멋진 문장들은 내 머리를 때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고전 읽기는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빠지며 더 즐거워진다. 책을 통한 그들과의 만남에 점점 친밀감을 느끼고 힘들게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는 것이 뿌듯하다.

 

[인간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인다네,

왜냐하면 나도 인간이기에.

내 마음을 움직인다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건

사상이나 강령에 대한 친밀감이 아니라

진정한 인류와의 넓은 유대감이기에.

 

슬퍼하며 집을 나간 하녀가 향수 때문에 운다.

그녀를 그다지 잘 대해 주지도 않았던 집을 그리워하며.....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선 죽음이요. 이 세계의 슬픔이다.

이 모든 것들이, 죽기에,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이 온 우주보다 조금 더 크다.

 

-페르난두 페소아, ‘기차에서 내리며’,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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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7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파마에 대해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페넬로페님처럼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리스로마 신화겠죠?^^

페넬로페 2022-01-17 19:01   좋아요 4 | URL
아이네이스뿐만 아니라 변신 이야기, 헤시오도스의 책에 다 나오는 걸로 되어 있어요^^

그레이스 2022-01-17 19:08   좋아요 4 | URL
변신이야기때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책읽는나무 2022-01-17 19:55   좋아요 5 | URL
두 분이 친하시단 걸 알고 나니까 왠지 댓글도 더 다정하게 나누시는 듯 합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2-01-17 22:03   좋아요 6 | URL
사실 저희가 책으로 연결되어 있고 만나면 책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정작 북플에서는 서로 댓글 잘 안 달아주는 시크한 사이입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2-01-17 22:19   좋아요 4 | URL
맞아요
ㅎㅎ
북플에선 시크했죠? ㅋ

Falstaff 2022-01-17 19: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고전입니다!

페넬로페 2022-01-17 22:04   좋아요 4 | URL
네, 호메로스보다 담백하고 읽기도 더 좋은 것 같았어요^^

책읽는나무 2022-01-17 19:5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의 즐거움!!!
페넬로페님이 진정한 공부왕이십니다^^
고전 읽기...사람과 신들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끊어 읽다 보면 흐름이 끊겨서 읽기가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하게 되던데...페넬로페님 쫌 멋지십니다^^

페넬로페 2022-01-17 22:06   좋아요 6 | URL
읽을때마다 힘들지만
신들이나 사람들이 돌고 돌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뿐입니다.
매번 어렵지만 서사시에 나오는 문장들의 표현이 넘 좋아서 그 매력에 빠져요^^

mini74 2022-01-17 20: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신곡에서 본 베르길리우스군요. 아 읽고싶어요. 이러면 안되는데 책도 많은데 ㅠㅠㅠ 페넬로페님 담아갑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1-17 22:06   좋아요 4 | URL
신곡도 올해 시작하고 싶어요.
우리들은 항상 읽을 책이 많죠 ㅎㅎ

청아 2022-01-17 2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두권의 조합이라니~👍둘다 담아갑니다.^^*<초콜릿 이상의..>는 집에 있는 것도 같은데 찾아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2-01-17 22:09   좋아요 3 | URL
초콜릿 이상의~~시는 자꾸 읽으니 더 좋아졌어요. 잘 모르지만 단지 그 느낌으로 공감이 가더라고요,
단지 제 느낌만으로 두 권을 조합했습니다 ㅎㅎ
근데 페소아의 시에도 베르길리우스가 나와요^^

청아 2022-01-17 22:13   좋아요 4 | URL
저도 페소아 좋아해요~♡♡
<초콜릿..>은 잃어버렸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는 절반가까이 읽었어요^^*

scott 2022-01-18 00:45   좋아요 3 | URL
미미님 있어요
초콜릿 이상
미미님 책탑 너머 꽂혀 있는거 본 것 같응 ㅎㅎㅎ

scott 2022-01-18 00:45   좋아요 4 | URL
페소아 시는
읽으면 읽을 수록 좋아집니다 ^ㅅ^

청아 2022-01-18 04:36   좋아요 3 | URL
네!!ㅋㅋㅋ어제 찾다 말았는데ㅠ 구매했다고 나오더라구요^^*

새파랑 2022-01-17 21: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전을 좋아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는 너무 어럽더라구요. 그런데 페넬로페님은 역시 👍

페넬로페님 바뀌신 프사 너무 잘 어울리시는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01-18 01:36   좋아요 6 | URL
저도 매번 어려워요.
그래도 자꾸 읽습니다.
특히 유럽 작가들의 책에 그리스, 로마 고전이 많이 언급되어 도움 많이 받아요.
프사는 한가람미술관의 앙리마티스전 벽보에서 가져왔어요.
마티스의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에서 따스함을 가져와 그린 거라는데 넘 맘에 들어요^^

독서괭 2022-01-17 2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고전은 고전인가 봅니다. 계속해서 변주되고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
갑자기 집에 존재하고만 있는 <오뒷세이아>가 책장에서 저를 노려보는 것만 같네요.. ㅜㅜ

페넬로페 2022-01-18 09:09   좋아요 2 | URL
네, 같은 이야기들이 돌고 도는데도 늘 새롭게 읽혀지는 것이 고전의 재미같아요. 근데 매번 읽기는 어려워요 ㅎㅎ

scott 2022-01-18 00: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고대 로마 최고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더 놀라게 만드는 작품!
페넬로페님은 진정한 독서의 고수!!^^

페넬로페 2022-01-18 09:11   좋아요 2 | URL
독서계의 진정한 고수는 scott님 이십니다. 고전에서 지금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세월이 지나도 그 본성들이 별로 많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18 0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고전이든 현대든 어쨌든 시를 이해하는 페넬로페님! 부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시는 대부분 읽다가 뭐라고 어쨌다고 이러면서 결국 내려놓는다는..... 서사시라고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1-18 09:14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제가 최근에 ‘시와 산책‘이라는 책을 읽는데 거기에 소개된 시집 몇 권을 읽고 있어요. 근데 시가 넘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그저 한글 공부처럼 읽고, 소리내어 읽기도 하는데 그저 느낌만 받아들이고 있어요 ㅠㅠ

페크pek0501 2022-01-18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슬퍼하며 집을 나간 하녀가 향수 때문에 운다.
그녀를 그다지 잘 대해 주지도 않았던 집을 그리워하며.....˝
- 이 부분에 저는 마음이 갑니다. ^^

페넬로페 2022-01-18 18:4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마음이 가더라고요~~

희선 2022-01-19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쓰인 거고 신을 이야기 한다 해도 거기에는 사람 이야기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런 거 별로 못 보기도 했네요 고전 읽기는 하면 할수록 매력에 빠진다니... 페넬로페 님은 그걸 읽는 즐거움을 아시다니 멋지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2-01-19 10:23   좋아요 0 | URL
고전을 읽다보면 인간의 보편성을 많이 보아요. 그 보편성으로 결국 인간의 삶이 비슷하고 연결되는 느낌이 제가 고전을 읽으며 즐거움을 찾는 이유예요. 읽을 땐 언제나 힘든데 읽고나면 뿌듯해져 기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