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 전에 엄마가 떠나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버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그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란 엄마와 관련된 일 뿐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러 가려고 했었지만, 결국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식이 되었다.

 

머리와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캐리어를 꺼내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기 시작했다. 지금이 겨울이고 날씨가 많이 추워질지도 모르니 그냥 이것저것 구겨 넣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오감을 통한 고통과 불편을 조금도 느끼기 싫은, 죽은 이보다 산 사람인 나 자신을 오롯이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침에 택배가 왔다. 큰 스티로폼 박스에는 지인이 보내준 제주산 돼지 삼겹살과 목살이 엄청 많이 들어 있었다. 두껍게 잘려진 고기가 먹음직스럽고 신선해 보였다. 이 좋은 생고기를 냉동고에 넣어 얼리기 너무 아까워 친구 비아에게 전화해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고기의 반은 비아에게 나누어주고, 반은 끝까지 냉동고에 넣지 않고 냉장 칸에 넣어 두고 집을 나왔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여전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겹고도 반복적인 그것은 조금의 정상참작도 허용하지 않은 채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그 날 아침에 넣어 둔 고기는 여전히 싱싱했다. 보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는 핑계로 나는 고기를 구워 남편과 딸아이를 먹였다. 그 다음날엔 언니네 식구를 집으로 오라고 해 또 고기를 구워 먹였다. 집은 고기 냄새로 가득 찼다. 내 불경의 증거가 된 고기냄새가 신들의 저주를 불러 온 것인지 나는 바로 무기력증에 빠져 버렸다. 몸도, 마음도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롤랑 바르트가 19771026일부터 1978621일까지 어머니를 잃은 후 2년간 써내려간, 상실의 슬픔을 표현한 애도일기는 모호할 정도로 순간의 느낌만이 있다. 상황을 잘 모르기에 그의 감정과 느낌에 바로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난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르트의 느낌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들어 있었다.

 

상실의 슬픔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다. 시리도록 날카롭거나 명료하기보다 뭉뚱그려진 감정으로, 축 쳐진 육체의 무거움으로 더 많이 다가온다. 현존에서 부재로 순식간에 바뀐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애틋함과 허무함이 느껴질 때마다 눈물이 난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뱅제는 스물두 살 때 어머니가 되었고, 스물 세 살 때 해군장교인 남편이 전쟁에서 전사함으로써 미망인이 되었다. 그 후 바르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바르트는 엄마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1980년에 사망했다.

 

나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내 어머니의 육체를 알고 있습니다.‘라는 바르트의 글처럼 우리 형제들도 서서히 소진되어가는 엄마의 육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벼운 알츠하이머로 시작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몸이 굳어져 간 엄마는 마지막까지 자연적으로 당신의 생명을 꺼뜨렸다. 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온전히 케어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엄마와 남은 우리 형제들이 유일하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엄마의 영정사진은 정말 고왔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본래 있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보정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 언니와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길에서 영정사진 찍으라고 어떤 사진사가 호객행위를 했다고 한다. 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 언니가 출근하고 나서 엄마는 혼자 길거리의 사진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영정사진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죽음을 일찍부터 준비했다. 엄마 친정 동네의 솜씨 좋은 분에게 아버지와 당신의 수의도 미리 맞춰두었다. 수의는 오랫동안 엄마를 기다려왔고, 몸의 모든 근육이 빠져나가 미라처럼(이런 표현을 딸아이는 끔찍해한다. 어쩜 할머니에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뼈만 남은 엄마를 부드럽고도 포근하게 감싸 안고 떠났다. 불꽃으로 곧 사라질 찰나의 순간뿐 이었지만.

 

 

고대 뤼디아 왕국의 왕인 크로이소스는 아시아의 헬라스인과 주변의 나라를 복속시켜 자신의 왕국을 강하게 만들었다. 당시에 헬라스의 모든 학자가 번영의 절정에 있던 뤼디아의 수도 사르데이스를 방문했는데 아테나이의 솔론도 그곳을 방문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으며 솔론에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솔론은 크로이소스의 기대와는 달리 끝까지 크로이소스라고 대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크로이소스는 화를 내었다.

 

[“아테나이에서 온 손님이여, 나를 그런 평범한 자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다니 그대는 내 행복은 완전히 무시하는 거요?” 솔론이 대답했다.

크로이소스 전하, 전하께서는 제게 인간사에 관해 물으시지만, 저는 신께서 매우 시기심이 많고 변덕스러우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나이다. 인간은 오래 살다 보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보고, 겪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겪어야 하나이다.크로이소스 전하,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보아하니, 전하께서는 큰 부자에다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사옵니다. 큰 부자라도 운이 좋아 제가 가진 부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즐기지 못한다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많은 거부(巨富)가 불운했는가 하면,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운이 좋은 사람도 많사옵니다.누군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말고,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제가 말한 복을 가장 많이 타고나고 그것을 끝까지 누리다가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야말로 제가 보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 같나이다.

p. 43~44,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

 

죽음을 통해서만 행복을 알 수 있다는 솔론의 지혜의 말이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게 느껴진다. 결국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엄마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당신의 삶은 죽음으로 행복을 인정받았는가? 그러기를 바라며, 엄마에게 받은 지극한 사랑으로 내 삶은 여기까지 운이 좋은 채로 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항상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긍정의 말들이 떠오른다.

 

 

[이 당혹스러운 부재의 추상성. 그런데도 그 추상성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비로소 추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추상은 부재이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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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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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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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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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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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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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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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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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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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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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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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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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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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4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글을 안 쓰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했는데... 무슨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지금은 편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픈 마음은 낫지 않겠네요 살수록 아픔은 늘어가는... 페넬로페 님 건강 잘 챙기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런 말이라니...)


희선

2025-01-04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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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1-04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를 떠나보내셨군요. 마음 속에 그분을 간직하고 있는한 돌아가신 분은 다른 형태로 아직 존재하고 계시다고, 저는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로 했답니다. 제 방식의 애도인가봐요.
천천히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긍정의 가르침을 주셨던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예요.

2025-01-04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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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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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1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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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1-0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큰일이 있으셨군요 ㅜㅜ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2025-01-04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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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0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죽음 앞에선 다 무너지더군요. 하지만 또 시간이 다시 세워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가잖아요. 모쪼록 남은 가족분들과 함께 서로 위로하며 슬픈 마음 잘 다독이시기 바랍니다. 힘 내시고요.
삼가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5-01-04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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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04 14:50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새해 인사를 못했네요. ㅎ 고맙습니다. 페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01-04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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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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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2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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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5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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