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반 뻬뜨로비치 벨낀의 이야기’-알렉산드르 뿌쉬낀
《돌고 돌아 다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대학 1학년 여름 방학동안 외삼촌의 주선으로 **은행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은행의 고객 중 무작위가 아니라 철저히 엄선된 20개 정도의 가정을 방문해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미리 우편으로 사전양해를 구했다고 했는데 그냥 이러한 설문조사에 응해달라는 통보에 불과했다. 설문지의 내용은 일종의 호구조사였는데, 그것은 상당히 세밀하고 구체적이었다. 각 가정의 구성원에서부터 세대주의 직업, 직책, 나이가 포함되고, 은행에서 실시하는거라 당연히 가진 재산을 묻는 내용이 많았다. 연봉에서부터 저축, 부채, 집의 소유 여부 등 요즘 같으면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을 내용을 그때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던 시대였다. 내가 맡은 지역은 잠원동(반포)이었는데, 고층 아파트 한 동과 주택가에 위치한 집으로 가서 직접 고객을 만나야 했다.
알바는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일단 경비아저씨가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첫 날에 실패하고 그 다음에 담배 한 갑을 사서 다시 도전했다. 아저씨는 일단 동 대표에게 문의를 했고 마침 그 동 대표 아주머니가 설문대상자라서 은행에서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나를 자기 집으로 오게 했다. 설문조사를 거부하는 몇몇 분들을 동 대표 아주머니가 설득해주기도 해서 난 그 동의 설문조사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서울에서도 강남의 아파트에 사는 그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일단 직업이 거의 판사, 의사, 검사, 대기업 이사였다. 집 역시 자신의 소유가 많았고, 은행에 일정액의 저축이 있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해놓고 살지는 않았지만, 나름 대한민국 최상층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는 여러 종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가와 반 지하에 있는 집까지 다양하게 방문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문전박대하지 않았고, 분명 대답하기 곤란한 것도 잘 말씀해주셨다. 20개의 세대 중에 한 곳만 완강히 설문조사를 거부해서 난 은행의 승인 하에 그 곳만 빼고 알바를 마칠 수 있었다. 그 여름에, 집집마다 다니며 했던 그 일이 너무 힘들었고 아직 어렸기에 그때 그들의 삶을 오롯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거기엔 분명 양극화된 것으로 나누어진 것들이 존재했는데도 그저 알바가 끝나기만을 빌었다. 은행에서 지급한 알바비는 그 당시 상당히 큰 액수였고, 난 친구들과 지리산 천왕봉으로 떠났다. 제대로 등산 한 번 안해 본 내가 지리산 정상으로 오르면서 또 한 차례의 개고생을 했고, 그렇게 1학년의 여름 방학은 지나갔다.
2학기가 시작되고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문득 잠원동의 그 동 대표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알바를 끝내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에 그 분에게 고맙다고 엽서를 썼다. 내가 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저러해서 정말 고마웠다’라는 내용을 짧게 썼고, 그 밑에 다시 뭔가를 썼다. 그냥 고맙다고만 했으면 됐을 텐데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가을이어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종로의 그 길에 노란 은행잎이 물들기 시작해서, 남자친구 하나 없는 내 마음이 허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고마웠다는 그 짧은 글 밑에 난 급기야 이것을 쓰고 말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옮긴이 최선, 민음사)
그땐 이 시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작품인지도 몰랐고, 강남에서 판사의 아내로 잘 살고 계시는 분에게 하필 왜 이 시를 적어 보냈는지 내가 나를 모르겠다. 지극히 순진하고 순수했던 스무 살의 내가 보낸 그 엽서를 받고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하다. 기뻐했을지, 아니면 황당해 했을지,....지금은 나이가 꽤 들어 할머니가 되어 있을 그 분이 그런 엽서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런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엽서에 적은 푸시킨의 시는 정작 그분이 아닌 나에게 보내고 싶은 시였던 것 같다. 대학 생활에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떠돌기만 했던 외로웠던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이제서야 <알렉산드르 뿌쉬낀>을 만났다. 푸근하게 느껴지는 ‘푸시킨’이 아니라 발음하기도 힘든 ‘뿌쉬낀’을 만난다. 그만큼 세월은 지났고, 나 역시 많이 변했을 것이다.
열린책들, NOON시리즈 중 두 번째로 선택한 책은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벨낀 이야기>이다. 원제목은 <고 이반 뻬뜨로비치 벨낀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발행인의 말과 함께 다섯 개의 짤막한 단편이 들어있다. 1830년 8월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볼지노 영지를 방문했던 뿌쉬낀은 모스끄바에 콜레라가 유행중이어서 석 달 동안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이 쓰여 졌다고 한다. ’이반 뻬뜨로비치 벨낀‘이라는 가상의 작가가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긴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벨낀은 아마 뿌쉬낀 자신일 것이다. 러시아라는 나라에는 워낙 대문호가 많아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은 덕분에 그 시대의 모습들은 나에게 어느 정도 익숙했다.
<마지막 한 발>,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 아가씨>라는 제목의 다섯 개의 단편엔 지극히 러시아적인 소재가 많이 들어 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술, 지주와 커다란 영지, 귀족들의 사랑과 결혼, 장의사와 역참지기라는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등 이 소설의 소재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생소한 것은 ‘결투’라는 소재였다. 걸핏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남자들은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는 이유로 결투를 벌이고, 이 결투는 러시아 사회에서 정당한 것이었다. 총알 한 방에 사람이 죽어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들은 결투를 하고, 결투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수치가 된다. 1830년 뿌쉬낀이 31세의 나이에 집필한 <마지막 한 발>은 결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결투를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다른 곳에 총을 쏘아 목숨을 살려주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나지만, 7년 후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자신은 결투로 인한 총상으로 38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자신이 이 소설을 집필할 때 미리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지는 않았을 텐데 이 소설을 읽고 그의 죽음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이 책에 나오는 다섯 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다시 뿌쉬낀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생각났다. 이 시야말로 이 소설들에 딱 어울린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지만 다들 좋고 행복하게 끝맺는 이 소설들에서 현재는 슬프고 힘들지만 모든 것은 순간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서술한 듯하다. 물론 이 소설에 여러 슬픔과 풍자가 있지만 무겁지 않았다, 여느 다른 러시아 작가들처럼 심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도 않았다, 조그맣게 웃기도 하며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네 인생엔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 우연과 성급함과 불행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어 해피엔딩만 될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Se amor non e che dunque(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