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있어 며칠 앓은 적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으로 바로 갔겠지만, 요즘은 열이 나면 병원 문턱에도 갈 수 없으니 일단 해열제로 버텨보기로 했다. 그런데 해열제를 먹어도 열은 내리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혹시 암에 걸린 건 아닌지, 몸에 다른 지병이 시작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많이 힘들고 두려웠다. 만약 내가 아프면 육체의 고통도 견뎌내기 힘들겠지만, 난 아직까지 죽는 것이 두렵다. 알려진 사후의 세계로 가는 것도 그렇고, 그런 세계가 없더라도 갑자기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이 허무하다. 시몬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 여사의 말처럼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섭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것이 인간에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나 겪어야 할 당연한 거지만, 죽음은 불안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에게 치명적인 것은 넘어지는 것이다. 특히 욕실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거동이 힘들어진다. 시몬의 어머니 역시 욕실에서 넘어져 2시간을 기어 겨우 전화기 있는 곳으로 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퇴골 골절인줄 알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암이 발견되었고, 수술한 후 고통스럽게 겨우 30일을 더 살고는 죽는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30일간의 엄마의 병상일지와 더불어 엄마와 자신간의 애증의 관계와 추억, 딸이 바라본 엄마의 삶,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치료의 불필요성 등이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인의 정서로 봤을 때, 이 담담함은 얼핏 냉정하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난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였다. 지금 나에겐-이 책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것이 사실인 두 분의 노모가 있고, 딸아이가 한 명 있어서인지 보부아르의 표현이나 생각에 많이 공감되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고 판단하는 엄마의 모습은 별로 일관적이지 못하다. 고집스럽다 싶을 만큼 낙천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신경질적이면서도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표현된 그녀의 엄마는 딸에게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딸에게 바랬다.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 당연히 그렇듯이 자식에게 집착한다. 두 딸이 친한 것도 싫어할 정도로 자신감도 없었다.

 

"내게는 권리가 있다"

이런 가혹한 말로 자식을 짜증나게 하고 얽어매었다(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부모로서 조금은 이러한 보상을 딸에게 원하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엄마와의 갈등으로 일찌감치 집에서 나온다. 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계속 나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했을 때, 시몬의 어머니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한 번씩, 나는 언니 두 명과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 각자가 표현하는 엄마는 다 다르다. 그리고 엄마의 단점과 그녀에 대한 원망의 내용도 다르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엄마의 모습으로만 각인되고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엄마를 본다. 여자로서의 엄마, 남편의 아내로서의 엄마는 잘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보부아르 역시 그럴 것이다. 엄마라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부아르가 추억하는 엄마의 모습과 행동에 대한 느낌은 시몬의 자의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p146]

 

보부아르는 자신의 엄마를 장례미사에서 호명되는 이름으로 다시 주체적으로 생각한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허해지고,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치르며 엄마와 화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보부아르가 원하는 여성의 삶으로 살아주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영위해나갈 삶이 있고,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 인정받아야하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치르는 과정에서 보부아르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그렇게 엄마와 화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와 더불어 시간 역시 소멸한다. 그리고 나이 들어 갈수록 나의 과거는 점점 쪼그라든다. 그 결과, 내 나이 열 살 때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는 나의 청소년 시절을 억압하던 적대적인 그 여자와 더 이상 구별되지 않기에 이른다.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 때면 나는 두 여자 모두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P148]

 

친정엄마가 당신의 수의를 미리 맞추어 두신건 거의 30년 전이다. 작년에 친정집이 이사를 했는데, 치매를 앓으시는 엄마는 당신의 수의를 가져왔는지 계속 물으신다. 인간이 죽고 나면 곧 모든 것이 타고 없어지는데 잠시 입을 그 옷이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저승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꼭 믿으시기에 그러실 것이다. 난 가톨릭교도이지만 영생이나 천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하는 건 알지만 그냥 난 그렇다. 죽음이 두렵지만 죽은 후엔 모든 것이 소멸되었음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프랑수아즈 여사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병상에 있을 때 병자성사를 거부한다. 마사 경본이나 십자고상, 묵주를 서랍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신앙에 대한 의심도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겐 종교가 삶의 버팀목이자 핵심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위한 신앙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기계적이고 마음에도 없는 기도를 거부한 것이다. 내가 아는 자매님은 묵주를 돌리며 남을 험담한다. 같은 신앙인이지만 난 그런 모습에 질겁한다. 병원에서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 뜻대로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솔직하지 못하다. 그냥 살려달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것이 기도의 형식에 맞지 않으니 그녀는 그 거짓된 기도를 거부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라고 말하며 병원에서도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하루를 충실히 보내려 한다. 죽음 앞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죽기 전 하루라도 더 성실하고 열심히 살려는 집념이며, 생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병원.

육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병원에 들어서면, 우리는 더 이상 주체적 인간이 될 수가 없다. 본의 아니게 성기를 드러내 보일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지 못해 침대에서 배변을 해결할 수도 있다. 고통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상관없어지고 그저 지금 고통이 없어지기를 바랄뿐이다. 인간적인 최소한의 체면조차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보부아르는 불필요한 생명연장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그것에 대한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이 책에는 무수히 많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난 슬펐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사는 것에 대한 신산함도 느꼈다. 어찌 그 가혹하고 모진 고통들이 몇 자의 글로 다 표현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나의 두 노모는 예전에는 잘 하지 않으시던 말씀을 요즘 많이 하신다. 내가 전화를 걸 때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렸을 때, 항상, ‘전화해주어 고맙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 ‘고맙다’.....그렇게 나의 두 어머니는 나와 화해하고, 순수해지시고, 너무나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저 그 분들에게 아주 편안한 죽음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던 셈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이 일을 각기 혼자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엄마는 회복기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임종에 이르는 과정에 해당했던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엄마와 근본적으로 갈라져 있었다. -p144]


댓글(35)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7-22 01:4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늙으신 어머님들이 고맙다라는 말을 더 자주 하시게 되는게 일반적인건가봐요. 저희 시어머님께서도 요즘 부쩍 그러시던데..... 친정어머니야 원래 그러셧던 분이지만요.
얼마전에 친정 어머니가 혹시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를 안하고 싶다며 저에게 어떻게 그거 신청하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친정아버지까지 같이 가서 해드렸어요. 하는김에 저도 하구요. 그날 기분이 참 야릇하더군요. 보부아르가 살던 시대의 어머니나 지금 여기 우리 세대의 어머니나 다들 비슷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었을듯 해서 아마 이 책이 공감이 많이 갈 거 같아요. 저도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페넬로페 2021-07-22 10:00   좋아요 5 | URL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 어머니들의 옆모습을 뵈면 아이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저도 연명치료를 반대하는데 이 책에는 그 부분이 많이 나와 있어 공감했어요. 죽음이라는 것과 그와 연관된 것들을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듯 해요^^

새파랑 2021-07-22 09:06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아프신건 다 나은건가요?
전 종교가 없긴 하지만, 사후에 천국이 있다고 확신이 들더라도 그래도 사는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이런 편안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왠지 그럴때마다 슬퍼지더라구요 ㅜㅜ
그래서 오늘도 즐겁게 보내기로 😊

페넬로페 2021-07-22 10:05   좋아요 8 | URL
네, 새파랑님 말씀이 맞아요.
지금 현재 잘 사는게 정답인것 같아요. 누구나 편안한 죽음을 바라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이 더 많아 슬퍼요 ㅠㅠ
그저 오늘 하루 잘 보내기로 해요.
날씨가 덥네요
새파랑님.
건강 유의하세요^^

미미 2021-07-22 10:27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죽음은 사실 삶을 에워싸고 있는데 일상에서 대부분 그 점을 망각하고 살아가죠. 또 그래야 하고요.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한 번씩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하니 인생은 참 놀랍습니다. 이 책 요즘 인기네요~♡ 저도 준비되어 있는데 저에겐 또 어떨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1-07-22 11:34   좋아요 6 | URL
죽음에 대한 미미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잊고 사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곁에 지금 어떤 탄생보다는 죽음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는것 같은데 그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암담해요~~이 책 읽고난 후의 미미님의 느낌 정말 궁금합니다^^

2021-07-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7-23 05: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철 없을 때는 양육의 핑계로 나를 컨츄럴하는 존재로 엄마를 인식했었는데 말이죠 ㅠㅠ 엄마가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엄마와의 대화가 더 편해지고 관계가 좋아졌어요. 이제는 엄마의 삶과 인생이 잘 가꾸어지길 소망하게 되더라고요.

페넬로페 2021-07-23 09:55   좋아요 5 | URL
엄마와 딸의 관계라는게 참 그렇죠. 저는 너무 늦게 엄마의 삶을 생각해본것이 후회가 되요. 그래서 더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데 사는게 바빠 잘 안되고 있어 아쉬워요^^

페크pek0501 2021-07-27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요를 이미 눌렀었지만 좋아요 수가 49라니...
제가 도달해 보지 못한 숫자이옵니다. ^^**

페넬로페 2021-07-27 17:43   좋아요 4 | URL
아마 이 책이 죽음에 관한것이고 누구나 부모님 생각이 나서 공감했던것 같아요 ㅎㅎ
페크님, 좋아요 눌러 주셔서 감사해요^^

독서괭 2021-08-06 15: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다시 읽어도 멋진 리뷰예요^^

페넬로페 2021-08-06 18:03   좋아요 2 | URL
저의 글을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8-06 15: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멋진 리뷰 당선 추카 합니다

8월의 무더위 안무셔움 ^ㅅ^

페넬로페 2021-08-06 18:04   좋아요 3 | URL
네, 이런 기쁨으로 더위를 이길 수 있어 더 기분 좋은데요, ㅎㅎ
감사합니다**

mini74 2021-08-06 15: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저도 페넬로페님 글 읽고 이 책 찜했어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1-08-06 18:0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어요^^

미미 2021-08-06 15: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2관왕 축하드려요~저도 이 책 샀어요!!(엄지척)♥

페넬로페 2021-08-06 18: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미님!
외동딸인 미미님의 감상 기다려집니다^^

scott 2021-08-06 18:23   좋아요 3 | URL
저도 기대 .🖐 합니다 ^ᆞ^

새파랑 2021-08-06 16: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완전 👍👍 축하축하 드려요~!!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너무 감사드려요^^

그레이스 2021-08-06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초딩 2021-08-06 1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07   좋아요 3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26   좋아요 3 | URL
thkang1001님,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06 20:39   좋아요 2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려용^^

bookholic 2021-08-07 0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다음 달에도 기대하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8-07 10:06   좋아요 1 | URL
네, 감사드려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8-14 09:25   좋아요 1 | URL
하나의책장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