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참으로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책을 한 권 산다는 것은 대단히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우리 집이 아주 없이 살지는 않았지만,돈을 내맘대로 펑펑 써보고 다닌 적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나름대로 쪼개가면서 살았던 거 같다.
그래서 책을 사기 위해서는 며칠 간 점심을 굶던가(아침하고 저녁은 집에서 먹으면 되니까),
착하고 넉넉한 선배한테 빈대를 붙던가 해서 점심 값을 모아 책 한권을 살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학기초에 책값 예산을 과대 포장하여 일부 남는 돈으로 책을 사 볼 수 있었고...
나머지는 도서관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이놈의 도서관은 내가 찾는 책은 항상 다른 놈이
먼저 대여를 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태백산맥 1권은 몇 번의 대출시도 끝에 포기해야 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니면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 가서 죽치고 앉아서 책을 보던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는 종로서적에서 하루 종일 서서 다 보았다. 앉아서 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나도 앉아서 보았을 터인데,다들 서서보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몇 시간을 서서보았다.
결국 그 책보고 집에 와서 몸살로 드러누웠지 아마.. 그래서 책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구한 책들이다 보니 사본 책을 끝까지 안 읽는 경우란 있을 수 없었다.
(이건 과장이고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맑스의 "자본론"은 서문 읽다가 때려치웠다.
나의 무지와 머리가 샤프하지 못함에 비애가 느껴졌던 책이다.)
직장을 잡고 돈을 버니 어지간한 책은 사볼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더군다나 인터넷 서점이 생기고 나니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책은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 것으로 취하는 책이 많아진 대신 읽어서 내 안으로 취하는 책은 더 적어진 것 같다.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는 별로 변함이 없지만, 어렵게 구한 책이 아니고 쉽게 구한 책이라
절실함이 떨어지고 그만큼 소중하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아직 1권의 책도 구매하지 않았다. 안 지르고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몇 끼의 점심을 굶어가며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을 때의 뿌듯함을 다시 느끼긴 어렵겠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패턴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