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에 영감을 준 글쓰기의 출발점

(feat.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원제: Writing without Teachers)

 

피터 엘보 지음 | 한진영 옮김 [페르아미카실렌티아루네] (2024)

 



피터 엘보(Peter Elbow)...


온라인 서점 앱을 보다가 만난 이름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곧바로 기억나지 않았다. 앱에서 저자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고서야 그가 글쓰기 책 힘 있는 글쓰기의 저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글쓰기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에서 출간(2014)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보기 시작했던 때가 2015년이었다. 당시에 난 아마도 글쓰기까지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누가 이렇게까지 9년 동안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남길 줄 알았나. 서점에서 이 책을 이따금씩 만나곤 했지만, 제대로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내가 여전히 블로그에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힘 있는 글쓰기를 만났을 때 읽고 글쓰기를 시도해 보면 좋았겠다.

 

저자의 이름을 발견한 건, 이번 달에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가 새롭게 출간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책과 더불어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의 첫인상은, 두 권 모두 글쓰기에 관한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글쓰기 책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가 궁금해서 저자의 프로필 자리를 책에서 찾아보았는데, 저자의 이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무심코 표지를 보았더니 이제야 저자와 간단한 책 소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책 내부에서 저자와 소개하는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시도라고 여겨졌다. 저자의 이력을 찾다가 발견한 점이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표지다.

 

아무튼 표지에서부터 저자의 이력을 더 찾아보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 아티스트웨이(줄리아 카메론)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에 큰 영감을 준 장본인이라는 점이었다. 이 글쓰기 관련 베스트셀러에서 적용하고 있는 방법론이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모닝페이지열풍을 일으켰던 인물이 바로 피터 엘보였다. 참고로 그가 제안한 글쓰기 방법론은 하버드 글쓰기 강의로 실용적인 글쓰기 가이드를 제시했던 저자 바버라 베이그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피터 엘보가 제시한 이 글쓰기 방법이 도대체 어떤 방법이기에 이렇게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걸까, 더 궁금해졌다.

 

출판사 소개 글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저자가 제안한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가 글쓰기에 대한 본인의 불안과 좌절, 무력감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실패를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추출해내었고 훗날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라 할 수 있겠다. 서문에 따르면 저자는 자신의 무작정 글쓰기(free writing)’방법을 다른 작가의 글쓰기 책에서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적용해보게 되었다. 저자는무작정 글쓰기를 때로는무의식적 글쓰기’,‘지껄이기’,‘수다떨기라고도 소개한다. 달리 말하면, ‘무작정 글쓰기는 우리 각자의 자각/이성/로고스가 개입하고 우리를 통제하지 않는 글쓰기라고 이해된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은 방황하고 좌절한 기억이 있을 테다. 나 역시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이란 조건에도 정신적 피로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물론 프리라이팅(free writing) 기법을 알지 못한 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리걸패드(노란 종이 묶음으로 된 노트)에 내 모든 걸 쏟아내듯 끄적거려 본 경험이 있다. 나의 자괴감과 열등감, 원망과 고통의 기억 모두를 뱉어버리듯이 말이다. 떠오르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휘갈기듯 계속 써본 후 더 뱉어낼 것이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뭔지 모를 심리적인 안도감 같은 것이 찾아왔음을 기억한다. 저자가 이렇게 글쓰기로 내뱉는 행위가 저자가 의도한 것에 부합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이제 이 책에서 소개 된프리라이팅을 과거에 방황하며 뱉어내듯 무언가를 썼던 경험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 언급된 프리라이팅 방식과 비교해보니 내가 적용했던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기억을 되돌아보면, 나는 이미 피터 엘보의 글쓰기 방법을 이때 영접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불안과 고통의 경험에서 나온무작정 글쓰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얼핏 보기에 저자가 제안한 글쓰기 방식이 글 쓰는 이의 무의식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훈련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방식으로부터 어떻게 내가 원하는 글, 보다 좋은 요건을 갖춘 글을 쓰는 데로 나아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많은 창작자/작가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온 아티스트웨이에서 소개한 바로 그 글쓰기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제안하고 실천했던 저자의 책과 이제 만나게 된 셈이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벽과 같이 무언가에 막혀버린 느낌을 종종 받았다. 글쓰기에 조금 소심해지고 의욕을 잃기도 했는데, 피터 엘보를 만난 것은 마치 일종의 계시(그냥 계속 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글쓰기 연구의 대가가 50년에 걸쳐 축적한 성과를 아무리 많이 내게 보여주든, 이 책이 30년 넘게 옥스포드 대학에서 글쓰기 바이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든, 내가 직접 글을 써보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나의 우려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에 관한 조언도 책에 담아놓았다. 저자가 제안하는 교사 없는 글쓰기 모임활동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격려 속에서 자신의 글을 계속 써나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존의 아티스트웨이를 좋아하는 작가들,‘모닝페이지를 시도해 본 열혈 독자들이 함께 글쓰기를 하고 격려해간다면 각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혼자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10분 정도 프리라이팅을 하라는 것도, 사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마련하는 문제인 것 같다. 현대인들의 집중력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주면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매리언 울프가 프루스트와 오징어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인간에게 읽기와 쓰기 행위란 결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함께 글쓰기 루틴을 꾸준히 지켜나가다 보면 서로에게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나 직접 시도해 보는 독자만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피터 엘보의 다른 책 일상어 문식성도 유명한 듯하고 관심이 가지만, 이 책의 분량과 가격의 압박이, 번역서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 두꺼운 교과서가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역자가 너무 많은 책은 잘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프리라이팅개념을 소개하고 있는 실천적인 가이드로서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가 2023년에 출간한 책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쓰기 행위가 책읽기의 최종 목표 혹은 종착지는 아니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대로 읽고 쓰는 능력을 매우 귀하게 여기고 책읽기에서 더 나아가 글을 잘 쓰게 되길 열망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한다.”(17) 진화상으로 볼 때, 인간에게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이 독특한 능력(읽기와 쓰기)이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보다 애초에 우리는 왜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일까? 저자 피터 엘보가 소개하는 프리라이팅이 우리의 글쓰기 향상에 어떤 토양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래간만에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돌아왔다. 최근 나의 글쓰기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느끼던 차였다. 이제 이 책과 더불어 10년 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진 원점에서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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