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세기 이상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온 노학자의 독서론



독서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



 


장마철 폭우로 걱정하다가 밖에서 맹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차린다. 아파트 뒤에 있는 조그만 숲에서 어느 날부터 울어대기 시작했다. 매미들의 절규처럼 들리는 이 합창을 듣노라면,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새는 눈이 부쩍 나빠진 것 같은데, 읽고 싶은 책은 끝이 없다. 하여, 나의 책읽기는 언제나 아쉽고 부진하다.

 


잠시 눈을 돌려 책 더미에서 아담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 교수의 독서론을 담은 독서공부. 저자의 생애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모두 걸쳐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어를 국어로 배우게 되었다는 저자. 그에겐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 이름도 있다. 그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50년 여름에는 이른바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기차를 간신히 얻어 타고 부산으로 귀향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에서나 들어볼 법한 경험담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어려웠던 시기를 견딜 만 하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 독서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급하게 버리고 간 책들을 구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독서의 기본을 익히기 시작했다. 학교가기 전부터 시작하여 반세기 이상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 저자의 삶은 바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 독서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것 같다. ‘독서는 앎이고 배움이자, 그 자체로 인간의 성숙 과정에 이르게 하는 삶이었다고.


 

어린 저자에게 최초의 독서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였다. 그의 읽기인생은 바로 듣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실감나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온몸으로 책읽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번이고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저자가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살갗이 움찔대고 눈이 빛나며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리는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추억하는 최초의 책읽기는 바로 할머니의 이바구듣기였던 셈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의 듣기가 읽기, 나아가 쓰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여기서 온몸으로 책읽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을 때 나타나는 몸의 생리적 반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온몸으로 책읽기변신하기였다. 읽는 자신이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되고,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가 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에게 읽기란 나의 재창조였고, 신생(新生)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부터 흥미를 보였던 문학읽기는 무엇보다 변신하고 둔갑하기였던 셈이다.


 

책읽기 과정에서 독자에게 요구되는 온 몸으로 책읽기마음의 변신모두는 공통적으로 책읽기에 참여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요한다. 상상력은 이제 신경가소성이 가져다주는 신경 네트워크 형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책읽기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되어간다. 말 그대로 독서를 통해 는 거듭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평생 지속한 책읽기는 변신의 독서였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온 몸으로 책을 읽으며 마음의 둔갑을 수행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건 파우스트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단테의 정신혹은 두이노의 비가에 담긴 정신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방랑하다보면 길을 잘못 들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하여 탐색하다가도 되돌아 나오는 등의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파우스트의 정신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파우스트에 언급되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말은 떠올리게 된다. 그건 이 말이 바로 방랑과 시행착오, 그리고 순례의 과정을 겪어내는 인간의 정신을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이를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의 과정을 끌어안는 책읽기의 정신이라 이해해보았다. 평생에 걸친 저자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함께 찾아낸 그의 공부론’, 공부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 피우는 중년의 책읽기 여정에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에서 각 교과 과목을 매우 세분화해놓은 수업을 듣곤 한다. 국어과목을 예로 들면, 학교에서 나가는 진도에 따라 교과내용을 예습, 복습할 수 있는 수업, 그리고 독서 및 글쓰기또는 독서 논술이란 이름으로 별도의 분야를 제공하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 나아가 가정에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노골적인 요구도 받는 모양이다. 이 과정은 효율성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학습이 아닌가 싶다. 책읽기든 공부든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시행착오를 겪어볼 겨를 없이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가도록 요구하고,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길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학생에 따라 어느 정도는 이런 시스템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에 너무 의존하게 된 나머지, 개인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이런 시스템에만 익숙해지는 경우다. 이런 방식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좋지 않은 방식으로 폐기되곤 한다. 이른바 시행착오의 과정이 부족하다. 당사자가 현상을 개선하고 극복할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열규 교수의 독서 편력기를 읽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감성과 지성을 갖춘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아이들에게 책 선택의 주도권을 주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은 주도적인 독서가뿐만 아니라,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독자들에게 반세기가 넘는 저자의 독서 경험을 풀어낸 독서를 통해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초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유년시절 글자를 처음 만난 후 소년과 청년 시기를 거치며 폭넓은 삶의 기초를 독서로부터 다졌다. 장년과 노년에 이르러서는 형성된 자신만의 독서 기술을 통해 자유자재로 변신하기도 하고,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다. 수잔 손탁이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라고 했던가. 이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의 독서 예찬이 아닐까 싶다. 독서란 어제의 나, 낡은 나를 죽이고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저자의 독서론을 정리해볼 수 있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마칠까 한다.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1]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내 정서 속에 몽땅 녹아들게 하는 것이었다. 내 감각으로 남김없이 그 이야기를 집어삼키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 속의 모든 사건, 등장인물의 모든 움직임이 내 몸속의 뼈마디며 근육줄기 속에서 살아 약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들었다. 귀만이 듣고 있었던 게 아니다. 물론 처음엔 귀가 열리지만 이내 살갗이 따라서 움찔대고 눈이 빛나고 입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동동거린다. 그 모든 과정이 바로 할머니 ‘이바구’ 듣기였다."(29)

[2]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도 ‘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문학 읽기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인격이나 인성의 탄생을 위한 모태일지도 모른다."(85)

[3] "그것(읽기)은 단순한 정서적인 또는 지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건 새로이 무엇으론가 바뀌는 것이었다. 변신(變身)이었다. 나는 크눌프가 되고 토니오 크뢰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읽기는 나의 재창조였다. 아니 신생(新生)이었다."(86)

[4] "문학 읽기를 통해 나는 홍길동처럼, 손오공처럼 변신하고 둔갑했다. 마음의 둔갑. 문학 읽기란 그런 것이다. 희망, 동경 같은 낱말들이 나를 매혹하기 시작한 것도 그 덕분이다."(99)

[5] "릴케는 짙푸른 아드리아해가 내려다보이는 두이노성에서 창작에 몰두하곤 했는데, 이 시집의 제목은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괴테 《파우스트》의 주인공이나 단테 《신곡》의 주인공처럼 방랑과 시행착오와 순례를 겪어내는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153)

[6] "괴테는 일찍이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사람은 무엇인가를 구하는 동안 잘못에 빠진다’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파우스트의 정신’ 이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는 ‘단테의 정신’ 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이노의 비가》의 정신이기도 하고."(15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3-07-1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미가 벌써 우나요? 저의 동네는 아직입니다. 조만간 울것 같긴한데 그러면 얼추 올장마도 끝나가는구나 하는데 아직 울지않는 걸 보면ᆢㅠ
저도 몇년 전 이 책 읽었습니다. 참 좋더군요. 공부도 읽으면 좋은데 걍 다음 생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ㅋ ㅋ

초란공 2023-07-19 12:22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 매미는 지난 주부터 울었던 것 같은데 성질이 좀 급한 녀석들인가 봅니다. ^^;; 짝 찾느라 숫기 충만한.... <공부>는 찾아놓은 김에 설렁설렁 읽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