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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 (2020)
‘한 순간도 혼자일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를 발견하다’ - [I]
올해는 세기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남긴 5대 걸작 중 가장 먼저 세상에 나왔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소설은 《죄와 벌》이다. 한 달 전에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정리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한동안 책표지만 들여다보고 시작하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새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감날이라는 마음으로 독후 기록을 남겨본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앞부분은 무엇보다 소설을 이해하는 배경 혹은 단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듯하다. 보다 개인적인 생각들은 뒷부분에서 정리해갈 계획이다.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8년의 시베리아 유형살이를 마치고, 도박으로 더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던 시기에 절박하게 써내려가야 했던 작품이었다. 유럽에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급속하게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19세기 중반의 러시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페테르부르크의 도시 빈민 지역에 세 들어 살던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이하 ‘로쟈’)는 망설이며 광장으로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가난에 짓눌려있던 법학부 대학생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더위 때문이었을까. 로쟈는 자신의 물건을 맡긴 전당포 고리대금업자 자매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나온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분명함에도 추리심리소설처럼 읽힌다. 소설의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른 청년이 사건 후 여러 사람들과 엮이며 벌어지는 약 2주 간의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죄자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을 묻고 있기도 하다.
그는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처럼 소설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소 지루하지만 명료하게 읊곤 하는 톨스토이와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많은 정보를 인물의 내면 의식이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지독한 가난을 겪고 있던 배고픈 청년이 살인을 저질렀다. 독자는 그의 살인 동기를 텍스트에서 캐내야 한다. 가난만으로도 살인의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로쟈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그의 입에서 말하는 ‘살인의 이유’는 역사에서 등장했던 혁명가의 ‘진실‘에 더 잘 부합하는 듯하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청년이 낙인찍히고 감옥에 가지만,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은 사람들이 우상을 세우고 숭배까지 받는 현실인 것이다. 나폴레옹은 한 공동체를 파괴하고, 학살을 자행했으며, 자신의 군대를 버리거나 무모한 전투에 수 십 만 명의 부하를 잃었는데도 말이다. 이보다 더 부조리한 현실이 있을까.
로쟈에게 이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는 이와 관련한 논문까지 써서 발표하기도 했으니. 논문에서 그는 인간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열등한(평범한) 부류’와 ‘비범한 부류’로. 평범한 부류는 인구를 늘리고 공동체의 재료가 되는 사람으로, 예의바르고 순종적이다. 반면 비범한 부류는 재능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로, 사회에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양심에 따라 기존의 법과 질서를 뛰어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움직이고 인도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고대 서양 철학의 ‘질료와 형상’과 같은 전통적인 이분법 논리의 전통에서 형성된 가치관처럼 여겨진다. 여기서 ‘형상’은 ‘본질’ 혹은 ‘내재 원리’ 혹은 ‘이데아’에 가까운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인물로 로쟈는 예수,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을 언급한다. 로쟈는 이들이 기존의 법과 질서를 파괴한 이들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타인을 파괴할 권리’가 부여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사회에 아무 쓸모없고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인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여서 그의 재산을 수많은 이들의 극빈해결에 사용하는 것이 ‘선’이라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을 뒷받침한다. 공리주의의 기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이는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인류사의 한 시기를 특징짓는 사상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확장해가던 서구 문명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또 위력을 발휘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로쟈는 자신이 한 행위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와 같은 존재를 죽인 것뿐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선행을 위해 하나의 범죄쯤은 불가피하다는 궤변으로 들린다. 다만 역사 속 ‘위인’들의 행적을 보면 로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대의를 위해 일어선 모든 혁명가는 대개 그랬으니까.
하지만 소설의 후반에서 로쟈는 소냐에게 자신이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 난 이미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은 셈이지.’(제2권, 230)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살인의 동기가 공리주의적인 대의를 지향하긴 했지만, 자신은 이런 일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고한 전당포 자매를 왜 죽어야 했을까? 로쟈는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지점에서 범행에 대한 정당성을 상실하고 만다. 러시아어로 ‘범죄’가 ‘선을 넘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소설의 후반에서 로쟈는 자신이 예수나 나폴레옹과 같이 선을 넘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살해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역사의 메시아처럼 타인을 죽이는 일을 성공시켜 하나의 ‘예술’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을 ‘비열한 쓰레기’라고 비하하면서 스스로를 ‘미학적 이’라고 부른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로쟈는 자신이 인간을 죽인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거사’에 실패한 자신에게 실망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미학적 수치’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조롱한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김연경은 《살다, 읽다, 쓰다》에서 로쟈의 살해 동기를 ‘메시아 콤플렉스’(117)로 설명한다. ‘내가 예언자이자 혁명가인가 시도해보았더니 아니더라’라는 거다. 그러므로 김연경은 로쟈의 살인을 ‘오만한 자기중심주의와 자폐적인 선민의식의 산물’(같은 책, 118)로 표현한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로쟈에게 소냐는 자수를 권한다. 이에 로쟈는 ‘놈들(일차적으로 경찰과 사법당국일 듯)이야말로 수백만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기꾼에 비열한이며, 자신을 겁쟁이, 바보라고 비웃을 것’이라고 하면서 경찰서에 가기를 거부한다. 로쟈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더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에 반해 소냐는 “너무 괴로울 거야.”라며 로쟈를 걱정한다. 소냐는 이 문제가 로쟈 자신의 문제라는 것, 자신에게 거짓된 상태로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모티프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서 얻었다.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중년 여성 두 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되기 직전에는 한 대학생이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고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이야기가 ‘현대성을 입증한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제정의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현실, 자본주의로 인한 급속한 빈부격차,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울한 징후를 예민하고 면밀하게 읽어냈다.
여기까지는 소설의 배경을 이해해보고자 역자 해설과 다른 책을 참고해서 정리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다층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할 만한 실마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읽고 《죄와 벌》에 대해 글을 썼다. 당대의 사상과 문학 이론은 여러 훌륭한 평론가의 글을 참조하면 될 듯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눈에 들어왔던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개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을 두 번째 읽고도 곧바로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주목했던 부분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지엽적인 것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소설의 제목과 관련한 철학적인 논의의 주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독서에서는 처음 소설을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도시라는 공간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게는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공기가 필요하다
우선 소설 속의 인물들에 주목하기 전에 이들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낫겠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다. 발트해에 접한 항구도시로, 20세기에는 주로 레닌그라드로 알려졌던 곳이다. ‘페테르(Peter)’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의 이름과 같은 ‘베드로’를 뜻하면서 동시에 ‘돌, 바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흔히 페테르부르크를 ‘반석 위의 도시’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대한 암반 구조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알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19세기 중반에 이 도시는 러시아의 행정수도로서 유럽으로 나아가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도시는 거대한 국가의 수도로서 화려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발트해를 바라본 북부의 도시라는 예상과 달리 찌는 듯한 7월, 불길한 전염병이라도 돌 듯 한 날씨가 이어진다. 타지에서 막 도착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로쟈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는 페테르부르크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도시가 만들어졌을까요. (...) 관청직원들과 온갖 부류의 신학생들의 도시지요! (...) 지금은 오로지 해부학 하나에만 희망을 걸고 있지요, 정말이오!”(제2권, 16) 이 말에서 도시와 시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무신론적 분위기, 이를 테면 유물론과 니힐리즘 사상, 맬서스의 수학 공식에 따르는 인구 증가의 법칙, 다윈의 진화론과 여기에 얽힌 논쟁 등. 이성에 보다 큰 가치를 두는 사상 조류가 마치 ‘끓는 가마솥’처럼 부글대며 뒤섞여 있던 대도시를 연상케 한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로쟈와 대화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곳은 미친 자들의 도시더군요. (...) 페테르부르크만큼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드물 거요. 기후가 주는 영향 하나만 봐도 그렇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전(全) 러시아의 행정 중심지니, 그 성격이 모든 것에 반영될 수밖에요.”(제2권, 306) 숨 막히게 하는 더위 속에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이자 암울한 사건과 사람들의 우울한 영혼을 거머쥔 도시. 소설을 읽는 내게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본 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은 돌무지로 만든 고분 같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로쟈가 세들어 사는 골방은 천장도 낮고 매우 좁은 공간이었는데, 오죽하면 로쟈의 어머니 풀헤리야 라스콜니코바가 아들의 방을 처음 보고 “네 방은 어쩜 이렇게 형편없니, 로쟈, 꼭 관 같구나.”(358)라고 하지 않았는가.
살인을 저지른 로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반면, 사람들이 이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기절하거나, 앓을 정도로 소심하고 병약하다. 로쟈가 머무는 공간은 그의 기분을 옥죄듯, 인물의 심리를 압박하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집에 돌아온 로쟈는 마당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 못 같은 것을 두들겨 박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마치 ‘관’과 같은 자신의 방에 누워있던 로쟈는 누군가 관에 못을 받는 듯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시시각각 갇힌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자각한다. 소설 전체에 걸쳐 로쟈는 ‘1아르신의 공간’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한다. 1아르신은 약 71 cm에 해당하는 길이로, 성인의 신체 너비에 해당하는 길이단위로 보인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보면, 1아르신의 공간이란 ‘관’의 너비에 해당하는 길이라고 연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관과 같이 좁은 공간에 갇혀 간신히 몸을 누인 청년을 말이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누가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을까. 그럴만한 공기도 충분하지 않았을 테다. 살인 전에는 ‘가난’이라는 현실에, 살인 후에는 ‘법과 규범’이 그의 영혼을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 여기에 찌는 듯한 7월의 더위는 로쟈를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한다.
사람이 회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삶을 포기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안의 모든 갈등 요소들을 억누르고 권리를 포기한 다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당장 행동 혹은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 앞에서 로쟈는 강물에 뛰어들 욕구를 물리치고 ‘1아르신의 공간’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 사실을 고백하는 로쟈의 말을 엿들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에게 “사람은 누구나 공기가 필요한 법이지요, 공기, 공기가... 그 무엇보다 말이요!”(제2권, 264)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로쟈의 친구 라주미힌의 친척형이자 예심판사인 포르피리는 로쟈의 범행 사실을 알고 그를 압박하는 동시에 자수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맹세컨대 삶이 당신을 이끌어줄 겁니다. (...) 지금 당신에겐 오로지 공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공기, 공기가!”(제2권, 295) 그러니까 두 사람은 로쟈에게 ‘1아르신의 공간’을 탈출하여 삶을 택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드디어 자수를 결정한 로쟈가 소냐를 다시 방문하자 그녀는 십자가를 로쟈의 목에 걸어준다. 로쟈는 곧바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센나야 광장 한복판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땅에 입을 맞춘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삶을 선택하기로 한 그는 경찰서에서 자백을 하고 시베리아의 감옥에 수감된다. 또다시 관과도 같은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감옥에 갇혀 자유로워진 지금”(제2권, 424)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된다. 로쟈는 찌는 듯이 무덥고 답답한 페테르부르크의 ‘관’과도 같은 공간에서 센나야 광장을 거쳐, 추운 겨울이 지배하는 시베리아의 감옥으로 이동한다.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1아르신의 공간을 탈출한 댓가로 로쟈는 삶을 얻는다. 이제 소설은 범죄를 저지른 한 청년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이야기,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다음 글은 내년에 이어집니다^^)
[1] "7월 초 몹시 무더운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살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망설이듯 천천히 K다리로 향했다." (제1권, 9) - 첫 문장
[2] "‘아니면 삶을 완전히 포기하든가!‘ 갑자기 극도로 흥분하여 그가 소리쳤다. ‘운명을 있는 그대로 단번에 순순히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살고 사랑할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내 안의 모든 것을 억누르든가!‘" (제1권, 74)
[3] "수도원으로 가게 될 노파의 돈으로 도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일이나 사업이 백 개, 천개는 돼! 수백 수천의 존재가 자기 길을 찾게 되지. 수십 개의 가정이 극빈과 붕괴와 파멸과 타락과 성병진료소에서 구원될 수 있어. 이 모든 게 그 할멈 돈으로 가능하다고. 노파를 죽이고 돈을 취한 다음, 그 돈의 도움으로 온 인류와 공공을 위한 일에 봉사하면서 헌신하는 거야. (...) 하나의 작은 범죄가 수천 가지 선행으로 씻길 수는 없을까?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맞바꾸는 것, 이게 진짜 산술 아니겠어!" (제1권, 104) - 선술집에서 대학생이 하는 말
[4]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 이렇게 말했던가 생각했던가 했지. (...) 1아르신의 공간에 서서 평생을, 천년을, 영원을 살도록 내버려진대도, 그렇게 사는 게 지금 죽는 것보다 낫다고!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말이지! " (제1권, 246) - 술집에 들어간 로쟈의 독백.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 나오는 문장을 활용한 것.
[5] "신기루야 사라져라, 거짓된 공포도 사라져라, 환영이여 사라져라!... 삶이 있다! 나는 지금 살아 있지 않은가? 내 삶은 아직 늙은 노파와 함께 죽어버리지 않았다! 하늘의 왕국이 노파에게 임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노파여, 이제 편히 쉬시라! 이제 이성과 빛의 왕국이, 그리고... 의지와 힘의 왕국이 도래하리니..." (제1권, 292)
[6] "그러니까 가령 고대로부터 시작해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입법자들과 법 제정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범죄자였다, 왜냐면 새로운 법을 내놓음으로써 사회에서 신성하게 존중되고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오래된 법을 파괴했기 때문이며, (...) 그러니까 뭔가 새로운 걸 말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성상 반드시 범죄자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제1권, 403) - 예심판사 포르피리에게 자신의 논문을 해명하는 로쟈
[7] "그 핵심은, 사람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이겁니다. 열등한(평범한) 부류, 그러니까 말하자면 오직 자신과 유사한 종을 생산하는 데만 쓰이는, 재료가 되는 사람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재능이나 능력을 소유한 사람으로 말이죠." (제1권, 404)
[8] "노파는 한낱 질병 같은 거야. (...) 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원칙을 죽였어! 원칙을 죽이고도 넘어서는 걸 넘어서지 못하고, 이쪽 편에 남았지..." (제1권, 426)
[9] "난 겁쟁이에...비열한 놈이야! (...) 실은 이랬던 거야! 그러니까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제2권, 223)
[10] "당신도 개집 같은 내 방에 와서 봤잖아...소냐, 낮은 천장과 비좁은 방이 마음과 생각을 억압한다는 걸 알 거야!" (제2권, 227)
[11] "권력이란 감히 몸을 숙여 그걸 주워올리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걸 말이야. 여기서 중요한 건 과감히 감행한다는 것 하나, 단 하나뿐이지! (...) 난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난 단지 감행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소냐, 그게 이유의 전부야!" (제2권, 228)
[12]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죽인 게 아냐,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돈과 권력을 얻어 인류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어서 죽인 것도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난 그냥 죽였어. 자신을 위해서, 나 하나만을 위해서 죽인 거야." (제2권 230)
[13] "왜냐면 나는 다른 모두와 똑같이 이에 불과하니까! (...) 그때 내가 노파에게 간 건, 단지 시험해보려 들른 것뿐이야 (...) 정말 내가 노파를 죽인 걸까? 난 나 자신을 죽인 거야, 노파가 아니라! (...) 그 노파는 악마가 죽였어, 내가 아니야..." (제2권, 231)
[14] "그래도 당신은 가망 없이 비열한 인간은 아니에요. (...) 우선 벌써 진작에 공기를 바꿔야 했어요. 어떻습니까, 고통 역시 좋은 것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이세요. (...) 난 단지 당신에게 삶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걸 믿을 뿐입니다." (제2권, 295) - 로쟈와 포르피리의 심리전. 로쟈의 경멸과 혐오에 응수하는 포르피리.
[15] "도망은 추악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당신에겐 무엇보다 삶과 일정한 지위, 그에 상응하는 공기가 필요합니다. 자, 그곳에 당신에게 맞는 공기가 있을까요? 도망쳐도 스스로 돌아올 겁니다." (제2권, 297)
[16] "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 노파와 그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 (제2권, 406) - 6부 마지막 문장
[17] "로쟈가 병이 난 것은 상처 입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제2권 423)
[18] "이미 감옥에 갇혀 자유로워진 지금, 그는 자신의 예전 행동을 전부 새로 헤아리고 곱씹어보았고, 예전 그 운명적인 시간에 느꼈던 것처럼 그 행동들이 어리석거나 추악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제2권, 424)
[19] "내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조항을 위반했고 피를 흘렸다. (...)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걸음을 견뎌냈고, 그래서 그들은 옳다, 하지만 난 견뎌내지 못했고, 그래서 그 걸음을 자신에게 허용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인정한 유일한 자신의 죄였다. 첫걸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것, 그뿐이었다. (제2권, 425)
[20] "그들은 기다리며 참기로 했다. 그들에겐 아직 칠 년이 남았다. 그때까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무한한 행복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지만 그는 부활했고, 그 사실을 알았고, 새로워진 자신의 온 존재로 그걸 느꼈으며, 그녀는, 그녀야말로 오로지 그의 삶 하나만으로 살지 않았던가!" (제2권,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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