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enture of Alexander von Humboldt》
안드레아 울프(Andrea Wulf) 지음 | 릴리안 맬셔(Lillian Melcher) 그림
[Pantheon Books] | (2019)
[독서일기]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인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오랜만에 자연과학 분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소개한 그래픽노블로서, 원서는 2019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 안드레아 울프가 훔볼트의 일대기를 정리한 《The Invention of Nature》라는 책에 기반하여 제작한 책이다. 국내에는 2016년에 《자연의 발명: 잊혀진 영웅 알렉산더 폰 훔볼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그럼 훔볼트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독일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딴 훔볼트 대학이 있고, 남미에 서식하는 홈볼트 펭귄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또 1790년대에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교제하면서 벼락에 맞아 사망한 농부 부부를 함께 해부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 정도만 해도 평범한 인물은 아닐 듯하다. 우리 중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테지만, 훔볼트의 이름은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다윈은 인류에게 《비글호 항해기》 와 《종의 기원》이라는 유산을 남겼지만, 그는 홈볼트가 발견한 지식과 통찰을 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다윈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훔볼트라는 인물은 당대의 서구 과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훔볼트는 대서양을 건너 서인도제도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고 자연을 탐험했다. 그야말로 지구의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여행한 지역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수집했다. 현대의 등반 장비도 없이 당시에는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부피가 컸던 각종 측정 기구를 지니고 6000미터가 넘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고산들을 오르기도 했다. 또 수많은 산과 물을 건너 탐험한 결과, 오늘날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한 사람이 이루어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지식의 기초를 다진 인물인 셈이다.
앞서 괴테와 사망한 농부를 해부한 것과 더불어, 동물 전기에도 관심을 가졌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가 죽은 동물에 전기를 가하는 실험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썼던 것처럼 당시 이 주제는 유럽에서 큰 관심과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훔볼트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만난 전기뱀장어를 잡아 해부하기도 하면서 유기체에서 전기가 발생하는 기작에 대해 연구를 하기도 했다. 18세기 전후가 동물 전기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던 시기였다고 짐작해볼 수 있는 정보다.
훔볼트는 항해를 하면서 각종 동식물의 표본을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많은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 그래픽 노블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기록물은 바로 훔볼트 본인이 남긴 노트였다. 책을 보면 훔볼트는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높은 산이 있다면 직접 올라가서 기압과 온도, 물의 끓는 점 등을 측정하여 기압과 끓는점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고 검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당대에 알려진 지리상의 적도와 달리 ‘자기 적도(magnetic equator)’의 위치는 적도에서 약 500마일 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각종 측정 장비를 지니고 꼼꼼히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지식은 훨씬 후대에나 발견되어 정리되었을 것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 Cosmos》는 이미 훔볼트가 먼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칼 세이건 역시 지구에 대한 탐구 열정을 담은 훔볼트의 책과 업적에서 영감을 받았을 법하다.
이 밖에도 훔볼트의 업적은 무수히 많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분류학자 린네는 동식물에 대한 분류체계를 새롭게 정리했는데, 훔볼트는 린네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린네는 자연에 존재하는 동식물은 ‘신이 내려준 목적과 절차를 지니고 적정한 수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홈볼트는 자연에 ‘신의 존재’를 배제하고 자연이 그 자체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전체’로 보았다. 여기에서 그는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연에서 동식물이 어떤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무엇보다 각 개체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긴밀하게 얽혀있음으로써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에게 자연이 보여주는 균형과 조화의 기작에 신이 개입할 자리는 없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으로 자연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는 당시 미국이 건국에 힘을 모으던 시기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인물들에게 직접 무분별한 개발로 삼림 및 자연의 황폐화를 경고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업적과 일대기가 오늘날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지구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 환경파괴,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문제와 인류의 위기는 이미 200년 전의 지식인이 예견했던 일인 셈이다.
그래픽노블은 글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또 풍부한 그림과 훔볼트가 수집한 각종 자료와 노트가 등장하기에 천천히 즐기면서 훔볼트라는 인물과 행적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다만 그래픽노블에는 훔볼트가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이후의 행적은 생략이 되어 있다. 그는 유럽 대륙의 동쪽으로 가서 지금의 시베리아지역까지 탐험했던 인물이다. 이 부분은 안드레아 울프가 쓴 훔볼트의 본격적인 일대기 《자연의 발명》을 읽으면서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1] "This is a web of life entangled in a bloody battle." - 이에 반해 분류학자 린네의 시각은 각 동식물이 신이 내려준 목적과 절차를 지니고 적정한 수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였다.
[2] "All plants and animals are bound together by a web of complex relations." - 훔볼트에게 자연은 ‘긴밀하게 연결된 전체‘였다.
[3] "The Advancement of science demands some sacrifices." - 자연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서구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원주민들의 조상 무덤에 들어가 이들의 유골 몇 점을(원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나온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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