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하겠습니다
군 구미코 지음, 쓰치다 노부코 그림, 김경화 옮김 / 푸른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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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입끝이 자꾸 올라간다. 이 책을 3~4학년 논술반에 가서 읽어 줄 생각을 하니 또 입끝이 자꾸 올라간다. 표지에서 아프도록 머리를 양쪽으로 당겨 땋아 묶고, 발목이 보이는 멜빵 바지 차림으로 발뒤꿈치를 한껏 들어 칠판에 글을 쓰고 있는 아이, 바로 하키다. 뒷표지로 넘기면 하키가 엎드려 다리 사이로 이쪽을 쳐다보는데, 그 다리가 마치 도넛 잘라 세운 것처럼 동그랗다. 아이고, 귀여워라. 우리 논술 꼬맹이들이 읽어주면 무척 좋아하겠구나 싶다. 

1학년 1반 하키는 '아침 발표' 시간이 고민이다.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아침 발표 시간에 유미오카가 이집트의 사막에서 가져 온 돌을 발표해 버려, 부담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 돌만큼 획기적인 것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이집트 돌이 얼마나 멋있었으면 요네다가 돌을 빼앗아 핥았을까! 

결국 하키는 아끼던 사탕을 주고 요네다의 비밀을 구경하게 된다. 요네다가 귀뚜라미를 잡아 먹이로 넣어주는 '도마뱀사우르스'와 만나게 된 것이다. 거대한 공룡. 거짓말이 아니다. 도마뱀을 돋보기로 보면 영락없는 공룡이니까. 이제 하키는 또다른 도마뱀사우르스를 찾아 풀밭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배추흰나비마이무스, 풀무치노돈, 사마귀톱스, 무당벌레마이무스 등이 있다. 그러나 도마뱀사우르느는 머리가 좋으니까 딴 볼일 보러 온 척 해야 한다. 쉽사리 잡히지 않는 도마뱀사우르스.
 
순간, 마법이 펼쳐진다. 도마뱀사우르스 모양의 구름이 흘러가는 순간, 정말로 도마뱀사우르스가 한 마리 나타난 것이다. 하키의 '아침 발표'는 이제 문제 없다. 

자, 이 책은 양이 적다고 하여 후루룩 읽어 버리면 재미가 없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봐야 한다. 하키는 물론 1학년 아이들의 표정과 손짓, 발짓은 물론 통통하신 선생님의 차림새도 볼수록 재미있고, 미소가 절로 난다. 놀라거나 새침할 때의 표정도 걸작이다. 글도 천천히, 소리내어 읽으면 더 좋다. 구연하듯이 읽기에 딱 알맞다. 그렇게 꼼꼼히 읽으면 아이들의 순수함과 상상력, 세상을 대하는 맑은 눈빛이 진하게 전해진다.  

모처럼 돋보기를 들고 아이 손잡고 바로 풀밭으로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수도 있겠다. 돋보기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힘. 작고 소중한 것들을 크게 보게 만드는 힘.  

하지만 희한하다. 왜 채색 그림이 일곱 쪽일까. 이따금 펼쳐지는 컬러 그림이 감질나서 더 예쁘게 느껴지는데 그걸 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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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족의 영웅 아스테릭스 아스테릭스 1
르네 고시니 글, 알베르 우데르조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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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남편은 꼽꼽쟁이다. 그는 중학교 때 쓰던 수첩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중간고사 기간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놓은 그의 옛 수첩을 훔쳐보며 청소하다 말고 뿌연 먼지 속에 앉아 킬킬 웃었던 기억이 난다. <태양을 향해 달려라>라는 만화들도 그의 보물로, 그야말로 고색창연하다. 그는 그것들을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런 그가 역시 보물처럼 아끼던 오래된, 그러면서 얇은 만화책이 두어 권 있었다. 색이 바래 '새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아니었고, 슬쩍 훑어본 바로는 내용도 좀 황당했다. 무슨 어린이 잡지의 부록으로 날아왔던 걸 남편이 애지중지했던 그 만화가 바로 <아스테릭스>였다. 지금의 33권 중 몇 권에 해당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생각나는 건 재활용 종이에 넣어 함께 버린 뒤 대판 집안싸움이 벌어졌다는 것뿐. 

  "아스테릭스가 완간됐대." 슬쩍 던진 내 말에 리모콘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국 이번 <아스테릭스> 구매 및 리뷰는 순전히 남편의 옛날 보물을 버렸던 죄책감에서 시작됐다. 

  1, 2, 3권이 왔다. 우선 '이런 내용이었구나.'싶은 느낌이 강했다. 골족이 켈트족의 한 갈래로서 '갈리아인'이라고도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들이 프랑스인들의 조상이라는 것도. 이제껏 나는 켈트와 갈리아, 그리고 좀 더 낯선 골족이라는 말을 모두 따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잘못 알고 있었던 셈이다. 프랑스인들은 골족의 기상을 앞장세우는 이 만화를 민족적 자긍심으로까지 여긴다고 했다. 1959년부터 선보인 만화니까 그야말로 출판사 측에서 '세계만화사'를 거론할 만하다. 프랑스의 역사적인 민족 만화. 그러면서 세계적인 만화. 

  주 내용은 로마에 정복당한 골족의 몇몇 마을이 우정, 용기, 유머를 잃지 않으며 끝까지 저항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온갖 모험을 겪으며,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건 곧 문화에 대한 경험이 된다. 2권에서 우리의 아스테릭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는 과정은 이집트의 건축과 사회와의 조우이며, 3권에서 글래디에이터가 되는 이야기는 동시에 로마문화에의 경험담이 된다. 그러니 이들을 따라다니는 독자들은 자연히 세계와 역사에 대한 자연스러운 안내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읽을수록 유머는 감칠맛이 난다. 음유시인 아쉬랑스투릭스의 노래가 시작되면 등장인물들의 몸과 머리와 눈과 다리는 저마다 먼저 멀리 달아나겠다고 경쟁을 한다. 그렇게 보인다. 어찌나 실감나고 웃기는지 한번 노래를 들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가 로마에 붙들려 가자 구하러간 아스테릭스와 오베릭스는 감옥을 잘못 찾아간다. 노래가 너무 지독하여 더 아래 감옥으로 옮겨진 뒤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스테릭스>의 유머는 표피적이거나 말초적이기보다, 소박하면서 은근하고 깊다. 큰 웃음이 터지지는 않지만 "쿡."하는 식으로 연이어 웃게 된다. 그게 매력이다. 

  한 번 크게 웃기는 했다. 1권의 첫 페이지에서 등장인물을 확인하고서였다. 나는 거의 십 년 동안 오베릭스가 아스테릭스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몸집이 크고 좀 둔하며 늘 돌을 지고 다니는 파란 줄무늬 바지의 오베릭스가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였던지, 나는 아스테릭스라는 이름에 오베릭스를 연결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집이 조그맣고 재치있는 아스테릭스가 알면 섭섭해 했으려나. 

  골족 용사들은 급한 일도 없고, 당황하지도 않으며, 겁도 없다. 그건 어쩌면 파노라믹스 사제가 조제하는 마법의 물약, 조금만 먹어도 힘이 천하장사가 되는 비밀을 믿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민족적 자긍심이 뿌리 깊어서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자긍심에 차 있어서 세상 무서울 것도, 주눅들 것도 없고 매일이 즐겁다. 절대로 달아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에 대해 그저, "길을 따로 알아놓지 않아도 갈 수 있겠군. 모든 길이 그리로 간다니."하는 정도로만 여긴다. 이들의 삶의 방식이 부러워졌다.
 

  개개의 캐릭터에도 호감이 갔다. 아스테릭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일찌기 내 눈을 사로잡았던 오베릭스는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다. 그처럼 거칠 것 없는 느긋함이라니. 멧돼지 한 마리 요리해 들고 가면 누구라도 환영해 줄 것이 분명한 사람. 
 

  이처럼 독특하고 생명력이 긴 캐릭터의 창조자인 르네 고시니가 1977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사람은 떠나도, 작품은 남아 숨쉰다. 남편의 어린 날을 흥분으로 가득 채워주었고, 내 팍팍한 일상에 '쿡'하는 웃음으로 동반자가 되어 주는 <아스테릭스>, 가능하면 다 사 모아서 남편에게 어린 시절을 선물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웃음과 여유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면 내 아이들에게는 바랜 색깔의 만화책으로 남아 엄마, 아빠를 추억할 수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으려나.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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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꼬마 니콜라의 '르네 고시니'라면 님의 리뷰만 보고 당장 찜할래요~~ㅎㅎ

파란흙 2008-04-25 10:40   좋아요 0 | URL
네^^ 꼬마 니콜라의 르네 고시니 맞습니다. 날이 춥네요. 변덕스러운 날씨.

파란 2008-11-0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깜짝 놀랬어요 르네 고시니가 죽은지 이리 오래되었다니..니콜라 시리즈가 너무 좋아 다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저도 비슷하게 사적인 이야기. 제 남편의 수첩도 그야말로 먼지 푹푹하니 쌓여있는데 그 안에 만화책 '아스테릭스'있어요. 조금 여러권있는데 과거 어느때에 저도 그 만화를 본 기억이 나거 버리진 않고 다른 만화책들을 버렸죠. 몰래. 여러권. 그에 대한 댓가를 '신의물방울'로 타협했습니다. 근데 이상한건 비닐포장지도 안 뜯고 대왕마마처럼 모셔만 두고 있는 것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남편들은^^. (아 '파란'이 비슷해서 구경왔다가..)

파란흙 2008-11-05 09:50   좋아요 0 | URL
이런 이런.^^ 여러 가지가 비슷하군요. 파란님. 요즘 남편은 식객을 전권 사달라, 초한지를 구비해 달라, 뭐 이런 떼를 씁니다. 만화 아니면 보지 않는 남자거든요. 신의 물방울도 끌리는데요. 워낙 유명해 놔서.^^

파란 2008-11-0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객을 신문에서 일일히 잘라서 모아놓았어요.이 사람이 식객을 사겠구나 했는데 말을 안하고 그걸 스크랩을 할 생각을 하시고 계셔요. 빨리 하면 좋을텐데 그걸 모으기만 하고 안하는게 더 지저분^^ 한데 말이죠.

파란흙 2008-11-05 09:53   좋아요 0 | URL
하하. 남편분의 모습이 슬쩍 짐작되는... 스크랩 완료하시면 한번 구경시켜 주세요.ㅎㅎ 전 요즘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모아 온 열쇠고리 박스를 버려버릴까, 하는. 진열해 놓을 곳 없는 소잡한 집에 수집이 너무 많아요.ㅠㅠ

파란 2008-11-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쇠고리박스..같은 피가 흐르는 구석이 있나 봐요. 조상 어디에선가 같은 디엔에이가 끼어든거 같은데요. 신랑이 모은다기 보다 도대체 무엇을 버리는 법이 없어요. 저도 한때는 그랬기에 부부긴 한데. 찻집성냥갑을 쌀푸대로 모은적이 있긴 해요.

파란흙 2008-11-06 10:11   좋아요 0 | URL
같은 피^^ 맞을 거예요. 도무지 버리는 법이 없는 것도 같네요. 저도 버리는 스타일이 아닌데, 남편은 가히 극이거든요. 그나저나 쌀푸대라니...만만치 않으십니다.ㅎㅎ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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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삼성만 가지고 그러지?' '삼성 망하면 네가 책임질래?' '너는 삼성만한 글로벌 기업을 만들 수 있어?' '제발 너 할 일이나 잘 해. 삼성 들썩거리지 말고.' '자기 돈 가지고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는데.'

  이런 이야기들일 거다. 삼성의 문제를 파헤치는 이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의중은. 그러나 이들은 꼭 같은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보낸다.

  '글로벌 삼성이니까.' '그만큼 영향력이 크니까.' '삼성이 살았으면 좋겠어서.' '삼성에서 시작하여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들로 나라를 채우고 싶어서.' '삼성은 모든 삼성인의 것이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기업이지 누구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사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그 불법적 사용, 경영권 불법승계, 언론 곡필의 뒷배 등등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일으킨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정서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긁어 부스럼'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총체적 불신도 마음 한 켠에는 있다. 과거사 조사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가졌던 그런 마음이다.

  십분 이해가 된다. 나 자신 이제는 젊지 않다고밖에 할 수 없을 나이가 되어 오면서 부조리함, 억울함, 어쩔 수 없음,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지독히 눌리고 길들여져 왔던가. '세상 일이 그런 것을.' '그저 나 자신의 삶이나 조금씩 성찰하며 살아야지 무슨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느냐.'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 버렸음을 느낀다. 그것이 사회를 보는 눈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꽤 여러 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조금씩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삶에 찌들려, 오랫동안 강요되어온 온순함에 길들여져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이처럼 피를 토하듯 파헤치고 고쳐보자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지지를 보내주는 것,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그들은 매사 나서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아니다. 힘들지만 꼭 해야 한다고 믿어 자신을 불사르는, 그야말로 사회 개혁의 투사일 수 있다. 솔직히 삼성의 속이 그렇게 돌아가리라는 것, 우리 모두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 이병철 회장으로 상징되는 'owner'라는 시대착오적인 단어를 떠올리며 삼성 회장 일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착각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게 우리 사회의 먼 미래에까지 검은 가루를 뿌리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서?

  그저, 책 한 권 읽는 사람일 뿐인 우리들. 적어도 말없는 지지를 보내줄 수는 있을 터이다. 조금 더 나아가 격려의 말 한 마디 전해줄 수 있고, 더 나아가 큰 박수를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뛰쳐나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면에 나설 뜨거운 가슴은 아닐지라도 연한 온기를 지닌 가슴을 지니고서. 그런 느낌을 가져 본다. 삼성이 바로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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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100! 세계사 퀴즈 - 세계사가 어려워?
성미애 외 글, 이지희 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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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맥락을 꿰기가 누군들 쉬울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몇 년도에 누가 뭘 했느냐는 걸 외는 것보다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으며 흘러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하고 있으면, 낱낱의 지식은 늘 여러 매체를 통해 끌어당길 수 있다고 믿어서이다. 그러니, 어떤 세계사를 입문으로 읽힐까. 내가 바라는 건 쉽고 재미있고 가느다랗게나마 맥락이 잡히는 것이다. 서점등을 나갔다가 그런 느낌의 책이라고 느껴져 몇 종류의 세계사를 사다 갖다 놓았다. 만화도 있고, 사진과 그림 위주로 보는 얇은 책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이 완독한 것은 없는 듯이 보인다. 문제는 나도 그것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흥미진진해야만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전 100! 세계사 퀴즈>를 처음 접하고 앞의 몇 장을 읽으면서 '재미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다양한 메뉴와 그를 받쳐주는 다채로운 디자인 요소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용이 가벼웠다. 대륙이 오늘날처럼 만들어진 과정을 그린 네 장의 그림을 순서대로 고르는 001번 퀴즈는 누구에게라도 그야말로 누워 떡먹기일 것 같았다. 조금의 추리력만 있다면 풀 수 있는 퀴즈. 이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만약 001번 문제가 지구는 몇 년 전에 홍적세였으니, 지각 변동이 어떻느니 하는 걸 알아맞히는 거였다면, 우리 둘째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002번 퀴즈 역시 대번에 알아맞힐 수 있는 퀴즈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순서를 알아맞히는 것인데, 이름을 몰라도 각각의 화석 인류들의 생김새와 차림새, 하고 있는 행동을 가만히 보면 답이 딱 나온다. '앗싸~ 이번 것도 맞혔다.' 우리집 둘째의 눈빛은 분명 이런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퀴즈와 퀴즈의 정답, 정답해설이 대륙 형성, 원시시대, 현대까지 시대순으로 죽 전개된다. 각각의 설명은 그다지 세밀하지 않다. 꼭 짚어야 할 정도로만 설명하고 바로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는데, 그게 내 취향에 맞았고, 우리 아이 취향에 맞았다. 쉽게, 부담없이, 아주 가느다란 줄기만 짚을 수 있게! 게다가 퀴즈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 그림이나 만화를 십분 활용하고 있으며, 퍼즐이나 미로찾기 등의 갖가지 형식이 고루 동원되어 세계사라고 하는 부담을 던, 그야말로 퀴즈책을 보는 느낌이 강하다.

  100개의 항목을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세계로 크게 나누어 시대구분이 가능하게 했고, 각 블록의 시작 부분은 그 시대의 핵심 흐름을 짚어 주는 짧은 글 및 당대의 연표가 차지하고 있어 100가지 지식 류의 책이 놓치기 쉬운 '맥' 잡기에 충실하다. 또 중간중간에 '이때 우리 나라는 뭘 하고 있었지?'라는 의문이 생길 법한 대목마다 '끼어들기 한국사'라는 난이 마련되어 마치 미리 궁금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세계사와 국사와의 연관성을 제시해 준다.  

  아이는 책을 다 읽었다며 내게 가져온다. 퀴즈를 하나 내 본다. 058번 퀴즈.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 것이 뭐지?" "면벌부." "뭐라고? 면죄부 아니니?" "아냐, 엄마. 잘 보세요." "엇, 진짜네. 언제 이름이 이렇게 바뀌었지? 그게 그거야." "에이, 엄마 틀리니까 딴 소리하는 거죠?" 뭐, 이런 에피소드가 연출됐다. 읽기는 했구나 싶어 087번 영국의 인도침략에 대해 물으니 역시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싶다. 한 번 더 읽고 싶다고 하니까. 

  세계사 입문서로 초등 저학년부터 읽히기에도 부담없고 5학년인 우리 아이 수준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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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 끝나는 곳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 그림,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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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쉘 실버스타인의 시집 <다락방의 불빛>을 접한 뒤, 다시 그의 시를 만났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그때도,  지금도, 제목이 주는 여운이 길다. 골목길 끝에 서서 다락방에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쳐다보고 선 느낌이 된다. 그러나 막상 시집을 펼쳐 읽으면, 우리가 기대하던 서정적인 느낌의 문장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인 듯도 하고, 짧은 우화인 듯도 하고, 때로는 폐부를 찌르는 잠언같은 글들이 작가 자신의 그림과 어울려 얼핏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로테스크란 낱말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시들, 그림들. 작가는 이 책에서 상상의 끝까지 다가간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더 멀리 가는 그런 상상이다. 그래서 더욱, 먼 상상 뒤에는 생생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첫 번째 시는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초대합니다>에서 작가는 꿈꾸는 사람, 몽상가, 소망가, 거짓말쟁이, 희망하고 기도하고 마법의 콩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라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다. 나는 초대에 응해 책 제목이 되는 <골목길이 끝나는 곳>이란 시를 찾아본다. 찾아보기는 맨 뒤에 있지만 그냥 넘겨 62쪽으로 찾아간다. 작가에게 골목길이 끝나는 곳은, 부드럽고 뽀얀 풀이 자라고, 진홍빛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박하 향내 나는 바람이 서늘한 달밤에 새가 날개를 고이 접고 쉬는 곳이었다. 또 하얀 분필로 그린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었다. 잠깐 눈을 감고 골목길이 끝나는 곳을 떠올려 본다. 음, 느껴진다. 나도 어릴 적 자주 갔던 그곳이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 옆에는 <눈사람>이란 시가 있다. 눈사람은 7월이 보고 싶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봄이 시작되면 녹기 시작하는 눈사람이 7월을 보기 위해 태양을 견디고 서 있는 모습으로 시는 끝을 맺는다. 갑자기 슬프다. 눈사람이 7월을 만났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된다. 나도 언젠가 본 듯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떤 계절을 그리워하므로. 

나는 이 시집을 두 번 읽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재미없다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죽 읽어내린 다음, 다시 한 번 찬찬히 보았다. 그러자 참 많은 것들이 다가왔다. 그저, 상상해보는 일로 시작하여 삶의 깊은 부분, 그립고 그리운 부분을 건드리기도 하고, 그리 살지 말라고 뒤통수를 때리기도 하는, 혹은 그냥 재미있기만 하기도 한 시들이 차차 다가오기 시작하더라는 거다. <가난뱅이 앵거스>가 울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플 때나, 바람 불어도 입을 옷이 없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가난을 캐서린이 황무지를 떠나자 딱 한 번 느낀다는 이야기도 새롭게 다가왔다. 

쉘 실버스타인에게 그냥 사물은 없는가 보았다.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날아다니는 먼지 한 알조차 다른 의미로, 다른 음률로, 다른 색깔로 다가가는가 보았다. 참 독특한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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