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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먹는 남자 ㅣ 올 에이지 클래식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무심코 이모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은 서커스였다. 몸을 거꾸로 꺾으며, 장대 꼭대기에 서며,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그들은 내내 웃고 있었고,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어린 내게 전해진 그들의 비애가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그저, 그 일을 하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아픈 곡절이 있었으리라는 막연한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혹은 세상의 회오리 속에서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을까.
말하자면 그들은 온몸을 불길에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 책에 나오는 맥널티 아저씨처럼. 전쟁에 끌려나갔던 어린 맥널티는 그때도 다른 소년(혹은 청년)병들 사이에서 부적응자의 티를 냈던 모양인지, 책의 화자인 중학생 로버트의 아버지는 그가 괴롭힘을 당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남을 찌르거나 죽이거나 총질을 해대는 일을, 다른 이들이 태연히 해낼 때 죽어도 못하겠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맥널티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는 전쟁 후에 자기 몸에 꼬챙이를 관통시키거나 불을 먹거나 쇠사슬을 묶어서 빠져나오는 자학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길거리 차력사가 되었다.
길에서 맥널티의 쇼를 구경하던 로버트는 탄광촌의 소년이다. 외지고, 세상에서 잊혀진 곳, 조금이라도 미래가 있는 아이라면 자라면서 벗어나야 할 곳. 그러기 위해 로버트는 억압적인 선생님들이 포진한 중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로버트의 친구들은 아예 포기한 진학의 꿈. 그러나 로버트는 점차로 인생의 참 의미가 대처로 나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거나 하여, 결국 전쟁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저들 틈에 끼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다. 그 아이의 바람은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 아버지가 건강한 것, 맥널티 아저씨가 광기로 인해 함몰되어 버리지 않는 것 정도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저런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내려덮이기 때문이다.
진정 미쳐 있는 것이 누구인가, 맥널티인가 혹은 핵무기를 적재한 로케트를 세상을 향해 겨누고 있는 이들인가. 전쟁은 왜, 누구에 의해 일어나며 누가 전쟁을 치르는가. 배움이나 앎은 무엇에 쓰일 때 진정 가치로운 것인가. 권력이 늘 빠지는 함정을 우리 민초들은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다양한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소설. 그럼에도 분명히 이 책에 등장하는 킬리 만의 아이들은 아름다웠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일 터이다. 맥널티가 온 세상의 불을 모두 삼켜 버린 것이었으면, 그나마 그의 죽음이 조금은 위로가 될까? 온 몸으로 불을 먹어치우는 그들에게 바치는 장송곡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