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혹, 세상에는 도덕성이 결여된 권력자가 태어난다. 그는 그 권력으로 숱한 사람을 죽인다(혹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한다). 왜 그런 인물이 길지도 않은 인간의 역사에 점점이 존재할까? 도대체 왜 그런 현상이 생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그 현상은, 신(혹은 조물주)에 대한 비아냥까지 불러일으킨다. 그거 혹시 인구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신의 디자인일까?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그런 뒤틀린 권력자의 세상에는 희한하게도 너무 순수해서 어찌해 볼 재간이 없는 낙오자가 늘 존재하여, 권력의 오물을 옴팡 뒤집어쓴다. 그런 순수한 인간들은 마치 오크족이 우글거리는 모르도르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인간이나 마찬가지 신세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같은 이들, 흔히 미쳤거나 그에 버금가는 단어로 표현되는 인물들. 다른 사람처럼 쉽게 때묻지 못하는 고집쟁이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순수한 존재들은? 진실로 미친 세상에 휩쓸려 함께 광기를 내놓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은? 죽을 때까지 적응하지 못해 겉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오스카 와오에게 삶은! 

오스카 와오, 그 아이의 삶은 대를 이어 내려온 불운(푸쿠, 즉 유럽인들이 신세계에 끌어다 놓은 저주, 파멸. 결국 그것은 전 세계를 뒤덮었다.)의 소산이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불운의 한가운데에 독재자 트루히요(푸쿠 그 자체)가 존재한다. 미국을 뒷배로 도미니카공화국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진정한 광인. 그에게 딸을 선뜻 내놓지 않았던 오스카의 할아버지 아벨라르는 쥐도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끌려가고, 그가 온 가족을 제물로 하여 지키려 했던 딸들은 저마다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린다. 가족은 그야말로 산산이 부서진다. 그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지킨 것일까?  

아벨라르는, 힘이 없어서 독재에 항거하지 못한, 혹은 이미 나라를 잃은지 오래 돼서 내선일체라는 말에 현혹된 지식인들을 향해 정면으로 던지는 화살이다. 비록 산산이 부서질지라도 내버리면 안 되는 '단 하나'에 대한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참혹한 결과를 그도 예견했으나 그는 차마 딸을 내놓지 못했다. 그건 그가 그 미친 세상에서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무엇이었을 것이다. 아비가 딸을 들어 독재자의 침대에 바치는 일은 그저 '트루히요의 엽기적인 성욕의 희생양'이라는 말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종말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아벨라르는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 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며 지킬 수밖에 없는 슬픈 진실을. 

가족 와해의 와중에 버려졌던 오스카의 어머니, 아벨라르의 어린 세째딸 벨리는 평생토록 속에 암덩어리를 키우며 살아가고, 그로 인해 죽는다. 그리고 오스카. 도저히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하고, 게임이나 판타지에 빠져 현실 따위는 멀리 던져버린 오타쿠. 그 가족의 불운의 결과물로 찬란하게 빛나는 외톨이. 그가 반지의 제왕의 어느 지점이거나 게임 속 한 곳에서 미친 듯이 내달린 건, 오로지 방에 처박혀서만 지내는 외롭고 불운한 젊은 아이로서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꿈을 꿀 수 있는 단 하나의 자유가 거기에 있었으므로. 

오스카는 결국 사랑(혹은 유일한 자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진정한 싸구려로 여겨지기 십상인 연상의 몸 파는 여자 이본은 마침내 오스카의 사랑에 굴복하여 울고 웃으며 묻는다. "나 싸구려 같아 보이지 않아?" "당신과 싸구려는 어울리지 않아요, 이본." 진실로 사랑에 싸구려란 없다. 아니, 싸구려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을 한 오스카는 죽는다. 그건 정말 오스카다운 최후였다. 사랑으로 죽는 것. 사실 트루히요나 히틀러나 또는 누구, 누구, 누구... 또 그들에게 사로잡혀 온갖 짓을 저지르는 영혼들, 그 수많은 푸쿠를 제압할 수 있는 건, 그 반대의 주문, 사파밖에 없다.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일 수 있지만 사랑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희망이다. 우리 모두가 깨닫기 힘들어하고, 차마 모른 채 죽어가는 그것, 사랑을 오스카는 해낸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 사탕수수밭에서 오스카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건 위대한 사랑을 세상에서 없애는 짓이라고. 사랑은 드문 것으로, 백만 가지 다른 것들과 자주 혼동되곤 한다고. 이것이 진실임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라고. 

오스카로부터 되짚어 올라가는 이 기막힌 사연의 가족사를 읽으며, 그들이 살았던 기막힌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남들은 다 재미있다 하는데(물론 재미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나는 그저 답답하고 힘들었다. 혹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최고의 마술적 리얼리즘이(그 몽구스의 출현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라 하는데, 마술적을 떼어내고 그저 리얼리얼리즘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만 치솟았다. 이토록 지독히 사실적이라니! 이토록 지독히 사실적이라니! 

그러나, 오스카. 네가 불러다 놓은 사파는 지금도 힘겹게 세상을 서성거리고 있다. 사랑은 네가 섰던 사탕수수밭에서부터 은근한 바람으로 불어 그나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고맙다. 진심으로 네게 손을 내밀어 고마운 인사를 보낸다. 그곳, '달의 청색 구역'이거나 '더 강력하고 따뜻한 세상'에서 지금 너는 행복하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9-02-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재밌나요?
전 이제 중간쯤 읽었는데
자유롭게 쓴거 같긴한데 딱히 제 취향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의문도나고 그러면서 읽고 있습니다. 흐~

파란흙 2009-02-20 22:03   좋아요 0 | URL
취향이 아니실 수 있어요. 저도 재미보다는 다른 느낌이 더 컸어요. 색다르고, 신선하달까. 그리고 가볍게 던지는 듯하면서도 깊이가 좀 있는 듯한. 퓰리처상 수상작인 값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