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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대체 저 황폐한 남자가 누굴까, 하고 표지를 뒤적거리니 에곤 쉴레라는 화가가 나온다. 잘 모르지만, 자학적 느낌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주로 그린 남자.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 그림이 딱 맞춤하다는 생각. 작가가 권한 컨셉트일까? 저렇게 삶에 지쳤으되, 눈빛이 형형한 남자의 그림은? 그런데 여전히, 제목이 십분 이해되지 않는다. 밤은, 노래한다...밤은, 노래한다. 노래란, 즐겁거나 슬플 때 저도 모르게 먼지 낀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삶은 노래한다...세상은 노래한다. 즐겁거나 혹은 슬퍼서.
이 책, 참 슬프다. 언젠가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는 영화에서 지옥이 바로 자신의 밑바닥에 있음을 발견하는 갖가지 상황들이 너무 무섭고 슬퍼 영화를 본 날 밤 밤새, 혹은 그 후로로 한참 뒤척거린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섭고 슬프다. <혹성탈출>에서 바닷가에 쓰러진 자유의 여신 상을 발견한 주인공의 그런 느낌. 달아날 데가 없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할 때,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유리구슬에서 들여다보는 안네의 느낌. 비극이 자신의 내부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걸 알아버린 오셀로의 느낌.
1930년대의 민생단 사건은 이 책을 통해 생생한 역사로 전달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들의 실체가 무엇이었던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거니와 밝혀질 수도 없으며, 그것은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음이다. 오히려, 그 시퍼렇게 날섰던 슬픈 일은 그저 반복되는 삶의 사슬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아마,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의 실체가 보이지 않으면 마침내 자신의 살을 잘라먹는 지옥을 연출하며. 작가가 연변에서 혹은 간도 혹은 동만에서 보고 느낀 것은 어떤 일련의 사건이기보다는 거기도 존재하는 슬픈 삶의 곡절들이었을 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33년 여름. 유격구에 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물음의 정답은 없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그들이 죽어가면서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이유.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죽어갔다. 마치 우리처럼.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누구인가.
사랑하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살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죽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혁명을 하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민족주의자로 살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이 이책에는 가득 차있다. 좌경과 진보, 마르크시즘과 톨스토이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보수 등이 뒤얽혀진 지금 이곳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얼 바라는지 모르고, 그 무지는 두려움을 낳으며, 옆 사람을 노려본다.
김해연은 다름 아닌 나다. 빛과 어둠의 세계가 완벽하게 오버랩되는 걸 어느 날 깨달아버린, 순진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만큼 대단한 신념도 없지만 어느 날은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사람. 살아가며 저도 모르게 헤세의 신봉자가 되어 버리는 그저 어떤 사람. 어찌나 동화되던지,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눈 떼지 말고 다 읽으라는 주문이 걸린 듯한 빨간 표지. 표지의 남자는 김해연도 같고, 헤세 같기도 하고, 또 못박힌 예수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매력적이다. 이 책. 분명 장편소설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시로 된 듯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시는 또 戀歌이며, 悲歌로도 읽힌다. '여름 매미들이 부르는 가을 노래'. 해연이 사랑하는 정희의 죽음을 전해듣고 받은 느낌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어찌나 슬픈지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여름 매미들이 가을 노래를 부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