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어머니와 그 딸, 무관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설 곳을 잃어가다 말더듬이까지 생긴 어느 소년과 기이한 빵집 위저드베이커리와의 만남.

잠 안 오는 새벽, 무심코 집어들었다가 숨이 턱 막히는 느낌 때문에 책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스탠드를 끄고 그냥 자야겠다고 마음 먹는데, 마침 책을 덮은 대목이 몽마라는 단어가 나올 때쯤이어서, 결국 다시 책을 펼쳐들고 누웠다. 가위에 대한 무서운 기억들이 오롯한 내게 몽마가 과연 어떻게 전해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더니 다행히 이번에는 숨이 덜 막히는 듯해서 내처 읽었다. 도대체 소년이 한 구석으로 몰리는 과정의 묘사가 이렇게나 실감날 수 있을까,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감보다는 영화에서 현실보다 더 크게 부풀려지듯이 시시각각 조여드는 검은 그림자가 마치 내 방안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결국 소년이 집을 뛰쳐나와 끼니를 떼우기 위해 찾아가곤 했던 심야의 묘한 빵집으로 도망치는 대목을 넘기고서야 가슴을 조이던 느낌이 사라졌다. 뭔가 무시무시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정작 빵집을 감싸고 돌지만, 그 모든 걸 누르는 건 소년이 처한 현실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양한 어둠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간혹 그 어둠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것에 어디 너, 나가 따로 있을까! 하지만 그건 무서운 마법이다. 상대를 저주하거나 시간의 흐름을 되돌리거나, 인연의 끈을 끊는 것. 누구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만남까지 이르는 과거나 만남 이후의 미래까지도 모조리 비틀어놓아야 하는 일이어서, 영화 <백투더퓨처>처럼 신나는 일이 아님은 분명한 일. 아무리 끔찍한 현실이라도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현실이라도 지우개로 지우듯 할 수는 없는 것이 시간의 잔인함이다.  

무섭고, 신기하기도 하고, 극적인 이야기. 가장 무서운 건 가까이 존재하는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그럴 수 있다는, 식상하려면 식상하지만 엄연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호러 판타지가 적절히 섞여든다. 고등학생인 청소년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걸 못 느낄 정도로 긴장되는 이야기다. 어쩌면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으로, 자신은 그나마 행복한 것이라는 자위를 할 수도 있을 테고, 또 어쩌면 책의 메시지를 간과하고, 뭔가 한방에 되돌리거나 끝낼 수 있는 마법 따위를 기대할 수도 있을 터이다. 어른 입장에서는 청소년 독자들이 왜 작가가 두 가지 결말을 쓰느라 진땀을 뺐을지에 대해 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결말 자체도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느낌도 있다. 

아무튼 내 딸을 포함한 청소년들이 손에 땀을 쥐며 재미있게 읽고, 깊은 생각을 하되, 긍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를 바라는 건, 어른 특유의 어이없는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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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4-0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전 좀 점수를 박하게 줬어요.
모뙨 성격 때문에...흐흐

파란흙 2009-04-10 14:01   좋아요 0 | URL
전 좀 후하게 줘 봤습니다. 독특하던 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