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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면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책이 있다. 더구나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해 매우 많이 아는 사람이, 저 혼자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으로 쓴 책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그렇게 읽힌다. 신뢰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예술가와 돈, 그 열정과 탐욕>이라는 책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양 미술의 온갖 거장들의 이름을 접했는데, 그들이 이 책에서도 종횡무진 눈과 머리를 채워주었다.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등의 작가는 물론 알베르티, 바사리 등의 이론가들도 다시 만나 개인적으로 반갑고 즐거웠다.
그리스, 로마 시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이런 식으로 평범한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시대나 사조별 특징을 잡아내어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미술사가 읽히도록 구성된 점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한 시대 속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서도 함께 조망할 수 있게 안배되어 있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의 생각으로만 전개한 것이 아니라 각 장별로 참고될 책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시각을 섞어 놓아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 글이 쉽지 않음에도 잘 읽히고, 독특한 문투를 구사하여 진중권이라는 사람의 색채를 지닌 것도 좋았다.
물론 다 읽고 났더니, 서양미술사가 한눈에 꿰이느냐, 그건 그렇지 않다. 여전히 모르겠고, 더 어렵고,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미학 공부를 좀 한 사람이나 이해될 법한 온갖 용어들이 난무하고, 불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설명마저 따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지 않다. 독자의 수준을 높이 봐주고, 존중해 주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라는 여지를 남겨주는 배려로도 느껴진다. 쉽지 않은데, 그래서 더 재미있다.
밑줄을 쳐 가며 읽었느나, 책을 덮고 나니 남은 것은 없다. 그저 내가 알고 있던 원근법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 단두대에 희생될 뻔한 위험에서 살아남았던 잘 생긴 화가 다비드에 대해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됐다는 것, 그리고 현대 미술의 그 모호한 느낌이 어떤 과정을 밟아 온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이해가 생긴 정도다. 내 취향이 어디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신고전주의다. 역시 보수적인.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서양 화가는 인상파 쪽이다. 문외한의 한계.
부제가 미학의 눈으로 읽는 고전 예술의 세계인데, 그야말로 시각자료가 생각 외로 풍부해 좋았다. 글 보고, 그림 보고, 생각하고. 쏠쏠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만 그림을 즐길 만큼 크게 배치하지는 않아 아쉬웠고, 전공자나 볼 법한 어려운 시각자료가 좀 많았고, 그림을 보기 위해 글을 읽다가 뒷 페이지를 넘겨봐야 하는 불편이 조금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 있으리라.
2권에서 친근한 인상파나 큐비즘 등이 전개될 모양이니 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