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의 책은 도무지 정이 안 간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걸 보면 프랑스 문학은 우리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에서도 느낀 바지만, 도대체가 플롯이랄 게 없다
그저 대화법으로 일관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그녀의 소설은 오히려 희곡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워낙 뜨는 작가라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특히 이 책은 노통의 책 치고는 긴 장편이라 뭔가 그녀만의 매력을 보여 줄 거라 기대했는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그녀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도 독특하다
프랑스 소설을 많이 안 접해서 그런가?
생소하기 그지없다
지난 번 소설에서도 "플렉튀르드"라는 기묘한 이름의 여자애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이상한 이름의 노인이 나온다
그래도 여기자의 이름인 "니나"는 마음에 든다
어쨌든 아멜리는 등장 인물의 이름이 주는 어감 만큼이나 독특하고 이상한 소설을 풀어 낸다
내 생각에 그녀의 사고 방식 역시 아주 독특할 것 같다
김영하나 배수하의 소설에서도 느끼는 바지만, 이문열류의 반듯한 문체와 구성에 익숙한 나 같은 독자는 아무래도 현대 문학을 즐기기 어려운 것 같다

타슈는 한 마디로 싸이코다
여자의 생리가 불결한 것이라면 남자의 사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자가 초경을 하듯, 남자 역시 나이가 되면 첫 사정을 경험한다
꿈 속에서 몽정을 통해 팬티를 적시는 그 지저분한 정액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자의 생리를 불결하게 본다면 당연히 남자의 사정도 역겹게 느껴야 정상이다
둘 다 혐오해야 그나마 성적 욕구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해가 간다
반면 한 쪽만, 특히 여자 쪽의 초경을 혐오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인가를 드러내는 단면일 뿐이다
바보 같은 타슈!!
사랑해 마지 않던 레오폴딘이 수영장에서 초경을 경험했다고 목졸라 죽일 때, 자기 팬티를 적시던 그 정액을 한 번이라도 생각한 걸까?
이 소설을 여자인 아멜리 노통이 쓴 걸 보면 그녀 역시 그저 관념에 치우쳐 구상을 한 것 같다
남자 작가라면 본인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구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계속 대화체로만 나간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의 특징은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전개인데 이 소설 역시 그저 통통 튀듯 문장을 써 나갈 뿐이다
타슈가 네 명의 기자들을 KO시키는 장면이나, 반대로 니나에게 KO패 당하는 과정이 전혀 통쾌하지 않다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대체 왜 그녀가 주목받는 소설가가 됐을까?
현대 문학은 이처럼 파괴성과 우연성에 기대야 뜨는 것일까?

폴 오스터의 소설과 거의 흡사한 표지 때문에 "열린책들" 에서 출간된 건 줄 알았다
"살인자의 건강법" 이라는 제목 자체는 참으로 통통 튄다
아멜리 소설의 미덕이 있다면 이처럼 톡톡 튀는 제목과 더불어 짧은 분량에 있다
그나마 읽기는 편하다

소설에는 수많은 프랑스의 작가들과 작품이 등장한다
타슈라는 캐릭터 역시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체 이렇게 특이한 작가가 있기는 있는 걸까?
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이럴 때 참 난감하다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책들은 왠만한 것은 다 알기 때문에 공감하기 쉽지만, 아무래도 서양 책과 작가에 대한 지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서재 결혼시키기" 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책과 작가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해 얼마나 지루하게 읽었던가!!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미국 작가들은 좀 더 알려진 편이다)
이 소설에서 알고 있는 작가는 기껏해야 사르트르 뿐이었다
만약 역자의 각주가 없었다면 아멜리가 창조해 낸 작가들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타슈의 캐릭터가 뚱보라는 것은 흥미롭다
"로베르트 인명사전" 에서는 거식증에 걸린 발레리나를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폭식증에 걸린 뚱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음식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나는 이런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내 생각에 아멜리 역시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캐릭터를 공들여 묘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달의 궁전"에 등장하는 에핑의 아들도 끔찍한 뚱보였는데, 이 소설에서 타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금욕 생활을 하면서 먹는 게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폭식증 환자다

타슈처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라면 몸매 따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즉 아무리 뚱뚱해도 그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식욕을 굳이 억제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83세까지 생존한 걸 보면 건강에도 별 이상은 없었던 모양이다
금욕 생활까지 하는데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세상 사는 낙이 있지 않겠는가?
그는 그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반드시 직접 식료품을 사러 간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다니는 미식가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음식만 먹는 독한 편식가라는 점에서 나와 비슷하다
나 역시 맛있고 비싼 요리를 찾는 게 아니라, 내 입맛에 딱 맞는 일부 음식만 총애한다
특정 음식에 대한 집착이야 말로 진정으로 음식과의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타슈를 이해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버터 기름을 상당히 느끼한 것으로 표현했는데 원래 버터는 고소한 이미지 아닐까?
프랑스에서는 매우 느끼한 이미지로 통하나 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국적인 음식이 주는 좋은 이미지만 남은 것 같다
어쨌든 아주 좋아하지만 칼로리 때문에 먹지 못하는 버터를, 너무 느끼해 토할 지경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버터에 대한 애정이 꽤 식어 버렸다

고전은 제대로 읽히지 않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는 타슈의 말은 "이미지와 환상" 에서 부어스틴이 지적한 바 있다
호메로스의 시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하냐는 타슈의 비난은 일리가 있다
그는 22편의 소설을 썼지만,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 조차 제대로 자신의 책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를 인터뷰 하러 온 네 명의 기자를 쫓아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면 니나는 22편의 소설을 완벽하게, 그것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전장터에 뛰어든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공격에 타슈가 당황할 수 밖에
솔직히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인터뷰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읽었다 할지라도 느낀 바 없이 그저 줄거리 읽기에 그친다면 인터뷰 할 자격이 없다
강준만의 한탄처럼 인터뷰어가 공부를 하고 질문하면 인터뷰이도 흥이 나는 법인데 제대로 된 사전 지식도 갖추지 않은 채 수박 겉핥기 식의 질문을 하면 짜증이 날 만 하다

니나는 그의 소설들을 정독하면서 유일한 미완성 소설인 "살인자의 건강법" 이 자서전임을 직감한다
타슈는 대범하게도 소년 시절의 살인을 소설 형식을 빌어 고백한 것이다
타슈와 그의 사촌 누이 레오폴딘은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 사이로,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숲 속에서 생활한다
특히 그들은 수영장 안에서 수중 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어느 날 레오폴딘이 수영장에서 초경을 하고 만다
(이 모티브는 만화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육체적 성의 욕구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한 타슈는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 결국 그들이 살던 성도 불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그 후 타슈는 금욕주의자로 소설만 쓰면서 음식에 빠져 살아 간다

한 마디로 타슈는 정신병자다
어쩌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 노벨상까지 탔는지는 모르겠으나 명백히 그는 정신이상자다
성적 욕구를 더러운 것으로 혐오하는 것도 그렇고, 가장 사랑해 마지 않던 누이를 목졸라 죽인 것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방화까지 저지른다
그를 가족처럼 키워 준 외삼촌댁 내외가 사는 성에다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뻔뻔하게 소설로 남긴다
이런 미친 놈!!

결국 타슈가 니나의 추리에 굴복한 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정말 어안이 벙벙 했다
일단 작가의 전개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또 소설 안에서 보면 타슈는 완전히 미친 놈이다
니나는 그가 정신분열자라 판단하고 오히려 그를 죽이고 만다
목졸라 죽였으니 혈흔이 남을 것이고, 그녀는 수사 대상이 됐을텐데 소설은 논리적 설명을 거부한 채 타슈의 소설이 더욱 유명해진 것으로 끝을 맺는다
어쨌든 그 뻔뻔한 노인의 속셈을 간파하고 오히려 그에게 교살의 끔찍함을 선사한 점만은 높이 산다

아멜리 소설에서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일단 성의없는 사건 전개나 개연성 없는 플롯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다른 소설들도 열심히 읽어 볼 생각이다
어쨌든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뭔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제발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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