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 인사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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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무협과 홍콩 영화에 미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호란 단어는 너무나도 친숙하고 반갑다. 그가 말하는 강호동양학이 강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풍찬노숙하면서 얻은 것이라 그런지 어느 순간에는 한편의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은 때도 있다. 서문에 썼듯이 그의 강호동양학은 8할은 강호에서, 2할은 강단에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삶의 만남과 경험은 그의 글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현재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인기 칼럼 ‘조용헌 살롱’을 1권 인사편, 2권 천문편으로 나누어 새롭게 펴낸 책이다. 신문에 연재된 것이다 보니 각 이야기의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 결코 두 쪽을 넘지 않고, 이야기는 간결하게 진행되고 마무리된다. 긴 호흡으로 깊은 생각을 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스스로 채담가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알맞은 선택이다. 긴 세월을 연재한 탓인지 시대의 상황과 맞는 이야기도 많아 기억을 되살려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과외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인사편은 인물, 사회, 문화, 문명으로 나누고, 천문편은 자연, 천문, 종교, 인문으로 구분한다. 각장을 작은 범주로 나누고, 그 밑에 다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신문 연재 당시 글들을 그 내용에 따라 묶어서 구분한 것이다. 이 구성을 보면 그가 가진 관심과 지식의 영역이 얼마나 폭넓은 지 알 수 있다. 단순히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내공 또한 상당히 깊다. 배움을 위해 그가 경험한 일들이 곳곳에 나오는데 부럽고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이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이미 만난 것도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책에서 좀더 세부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이 책에선 간략하게 말해지고 있다. 긴 세월을 연재한 탓인지 하나의 이야기가 다시 말해지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것은 그가 글을 쓰던 당시 사회 분위기나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그의 경험이 아무리 다양하고 깊을지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살짝 아쉽다. 어쩌면 그의 폭넓은 지식에 대한 조그마한 질투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한 동양학을 유교, 불교, 노장사상 등을 하나의 흐름이나 학문적으로 다룬 것으로 기대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문칼럼의 한계 속에서 편집된 책이다. 그런데도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그의 동양학이 강호란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학 사전처럼 쉽고 간편하게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는데 짧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지만 깊은 학문의 세계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알아야 하는 것은 그의 강호학에 바탕이 되는 것이 정통 동양학의 외양을 띄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주장하는 강호동양학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지만 실체를 그대로 얻는 것에는 실패했다. 재미있고, 잠시 생각에 잠기고, 다른 시각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게 되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전체를 엮어서 풀어내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만약 풍수지리, 주역 등에 관심이 많다면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과 단상으로 많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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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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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자 이름을 보았을 때 s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강심장>이 생각났다. 어쩌다 케이블에서 조금 볼 뿐인 프로그램인데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나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이 가진 묘한 심리작용 때문이다. 거기에 자기계발서나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을 덧붙이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아마 그 이유를 말하라면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이란 문구에 혹한 탓일 것이다.

먼저 서문을 읽으면서 ‘오리진’을 “스스로 처음인 자, 게임의 룰을 정하는 자, 새 판을 짜는 자, 원조가 되는 자, 그리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12쪽)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인 일본만화 <꼴지, 동경대 가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동경대를 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로 게임의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보아 넘길 수 있는 대목이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삶의 주인이 되느냐, 아니면 평범하거나 지지부진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두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 오리진이 되는 방법을 설명한다. High Love, High Pain & Joy, High Time & Place, High Mix, High Concept, High Tough, High Soul, High Story, High Slow, High Action 등이다. High란 공통 단어를 제외하면 각 장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 단어만 남는다. 하지만 여기에 High란 단어를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한 강조를 위한 것도 조금 있지만 그 핵심 단어를 기존의 것과 확연히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 예로 Love와 High Love의 차이를 ‘애절함’의 차이로 본 것이다. 

사랑. 참 많이 나온다. 일에 대한 사랑은 너무 진부하다. 그런데 애절함을 넣으면서 분위기는 바뀐다. 견디기 어렵도록 애가 타는 마음이 남들은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게 하고, 나만의 오리진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마수걸이일 뿐이다. 그 다음 단계로 창조를 만드는 두 가지 원천으로 ‘아픔을 들여다보는 힘’과 ‘기쁨을 보태는 힘’을 꼽는다. 여기서 아픔은 외로움, 그리움, 슬픔, 불편함, 번거로움, 진짜 아픔을 모두 포괄한다. 그리고 기쁨은 즐겁고, 재미있고, 편리하고, 아름답고, 웃기는 등을 말한다. 확장된 단어 속에 담긴 뜻을 보는 순간 이 힘의 의미를 쉽게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라고 말하고, 기존의 것을 뒤집고 섞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컨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하이터치를 ‘내가 먼저 주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먼저 주어야 할 것으로 웃음, 재미 그리고 약간의 야함과 역발상,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풀어주는 것들, 공감하고 행동할 의미와 명분, 꿈과 판타지 등을 꼽는다. 영감을 다룬 이야기 속에서 줄탁동시의 고사를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새롭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하이소울의 키워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그까이꺼!’다. 한때 개콘의 유행어였던 것인데 ‘모든 불가능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193쪽)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기존의 것을 확 뒤집어엎는, 기존 가치를 전복하는 대단한 상상력을 꺼내는 정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의 높이가 상상력의 높이를 결정한다고 한 부분에서 나의 높이는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이야기의 힘을 말하는 대목에선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뱀장수를 꼽았는데 어릴 때 그들의 이야기에 폭 빠진 경험이 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느림을 선택했는데 이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가족, 내면 혹은 정신, 자연, 격의 없음, 작은 것, 인간미, 검약과 절제 등이다. 속도에 매몰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관들을 되살렸다.

마지막 장에서 아홉 영감을 다시 구분하고 연결시키면서 마무리한다.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역시 몰입과 집중력이다. 이런 바탕이 없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다. 그리고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도 창조에 대한 열망만 있다면 누구나 오리진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261쪽) 말에선 나는 장례식만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단숨에 읽었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곁에 두고 가끔씩 차분히 읽는다면 오리진의 길을 찾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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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무스 1 - 원숭이탑의 어릿광대
릴리 탈 지음, 문항심 옮김 / 양철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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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표지가 시선을 끌었다. 책 소개를 보니 왕자가 적국의 광대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대 미무스, 그가 왕자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이 있나? 소개 글에 나온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표지와 광대 미무스에 빠져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단숨에 빠졌다. 2권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와 결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광대들의 활약에 푹 빠졌다.

오랜 세월 다투었던 두 왕국이 화해를 맺기로 한다. 빈란트의 왕 테오도가 교활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몽필 왕국의 필립 왕을 초대하고, 다시 배신자를 이용해 플로린 왕자마저 결혼으로 가장해 사로잡는다. 왕과 대신들은 지하 감옥 속으로 들어가고, 왕자는 미무스라는 광대의 제자로 보내진다. 이 시대의 광대는 그 누구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존재다. 그는 재주를 보여주고, 왕이 던져주는 조그마한 호의에 기대어 살아간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플로린 왕자는 이제 가장 낮은 것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열두 살의 어린 왕자가 말이다.

왕자 플로린에서 꼬마광대 플로린으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변한다. 왕실의 예절이나 격식은 사라지고, 광대가 익혀야 할 기예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광대로 전락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부왕이 잡힌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미무스와 말꼬리 잡기를 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 실력만으로 테오도 왕이 그를 광대로 만든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광대가 가장 낮은 취급을 받고, 남을 웃기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립 왕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에게 이 일은 정말 딱 맞는 탁월한 선택이다. 

한 나라의 왕자가 광대에게 맡겨졌다고 해도 금방 변하기는 무리다. 당나귀 귀와 방울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움직여야 하는 역할에 만족할 리가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왕과 대신들을 구하려는 의지는 가득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열두 살의 어린 광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좁쌀죽은 양도 부족하여 늘 배가 고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그에게 도망갈 기회가 생긴다. 당연히 함정이다. 테오도 왕은 그가 도망가면 지하 감옥에 있는 부왕과 대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협박한다. 이후 그의 활동 영역은 성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광대로 전락한 왕자 플로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배고픔과 현실 앞에 광대의 기예를 연마하고, 가슴 한 곳에 왕자의 긍지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그로 하여금 광대로 살아가게 만든다. 하나 둘 씩 기예를 연마하고, 배고픔에 자기도 모르게 원수인 테오도 왕이 던져준 음식에 몸이 움직인다. 스승인 광대 미무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지만 왕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무스의 도움이 없다면 그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날아갈 수 있다. 현실을 마주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왕자 플로린은 성장한다.

광대 미무스. 그는 대단하다. 웃음 뒤에 어떤 슬픔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지만 뛰어난 재주와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플로린이 왕자에서 광대로 변하게 돕는 것도 그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특히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간 곳에서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연기와 풍자와 해학은 그 시대의 부패상과 삶의 단면을 아주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 자신이 풍자의 한계선을 결코 넘지 않으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웃음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일생일대의 연기는 결코 평범한 광대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소년의 성장 속에 시대의 모순과 부패를 풍자해서 같이 보여준다. 처음에 테오도 왕의 계략에 빠진 필립 왕의 행동에 약간 의문이 생겼지만 뒤로 가면서 단순히 하나의 설정으로 다가온다. 왕자 플로린에서 광대로 변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친구를 만나고, 광대로 살아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빠르게 전개되면서도 재미있다.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속도감 있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책을 검색하니 절판이다.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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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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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교통사고에 비교한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무면허, 무사고를 자랑한다는 그 아픈 감정을 내뱉으며 한 남자와의 소개팅을 이야기한다. 그 남자 이름은 남수필. 첫 만남의 장소인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맨다. 어떻게 만나지만 그 만남이 길지 않고 금방 헤어진다. 여자는 의문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하고. 그런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다니 찾아오겠단다. 얼마 후 온다. 이 만남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어떤 낭만적인 장면도 연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여자에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뿌듯함을 안겨주고 말이다.

연봉 삼백만원의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가 이 남자와 소개팅을 한 이유는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늘 살고, 자신이 실험하는 쥐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미키마우스를 모으는 특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특이한 인물 때문에 겪게 되는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덕분에 우린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모험담을 듣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상황과 전개는 단숨에 읽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G-10 바이러스가 도시 곳곳에 죽음의 공포를 만든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전 세계, 특히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그 살상력은 그것을 몇 십 배 초월한다. 이런 공포 속에서도 변함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연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다. 사랑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 왠지 낯익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는 남수필과의 만남부터 암시를 계속 깔아놓는다. 죽음과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다. 이런 설정은 앞부분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빠른 전개로 그 답을 곧 알게 된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자마자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강한 개성과 그들이 마주한 상황으로 즐거움을 준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강력한 풍자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흘러넘친다. 사실 책 읽으면서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이런 풍자와 뒤틀린 그녀의 감정과 대사들이었다. 

사랑 바이러스는 위험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데 그 상대방에게 키스 등을 하면서 전염시킨다. 죽는 경우도 많다. 물론 감염되면 행복감에 빠진다. 이것은 사랑이 단순히 화학적 반응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정말 그럴까? 순간의 충동에 의한 사랑과 이성과 감정의 교류에 의한 사랑은 구분한다면 어떨까? 사실 작가는 이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만나는 환상을 통해 삶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깊이 있게 들어갔다면 좀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속도감과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엔 참 재미난 인물들이 많다. 먼저 주인공 옥택선은 좌충우돌하고 신랄하고 풍자적인 말투와 시선으로 즐거움을 주고, 그녀를 구할 인물로 나타난 이균은 냉소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유지하여 그녀와 묘하게 대조된다. 상도와 미리 두 학생의 아주 심각한(?) 연애 이야기는 풋풋한 가운데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두를 압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수필이다. 등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그의 존재는 우리들 주변에서 늘 보이는 미키마우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첫 소개팅이 마지막이 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동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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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6-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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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화자로 나온 유니오르가 다시 나온다. 다시란 단어를 쓰기가 조금 쑥스럽다. 그 이유는 이 소설집이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 수 년 전에 말이다. 작가는 유니오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과거를 그려낸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우리의 이민 1세대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민 1세대가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이 이 소설 속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세부적인 곳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윤곽에선 많이 유사하다. 그것은 주류사회로 편입하기 전까지 비주류가 겪어야 하는 아픔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쪽은 도미니카고, 다른 한 곳은 뉴욕이다. 도미니카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빈곤하지만 열정과 깨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뉴욕은 부를 조금 가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다른 문화와 경제 환경은 적응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변하게 된다. 뉴욕에서 유니오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정체성과 함께 생존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난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은 늘 필요하다. 이런 곳에 유혹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가 마약상이 된 것은 이런 삶에 대한 순응이거나 굴복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삶을 즐기고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미래를 설계하기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늘 아이들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을 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 어머니를 유혹하는 수많은 남자들, 이제 조금 자랐다고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형, 어린 시절 돼지에게 물려 얼굴에 큰 흉이 있는 이스라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고, 삶을 보여주고, 감정을 드러내고, 가끔은 폭력을 행사한다. 바로 이런 환경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유니오르의 시선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고 날 것 같은 신선함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그대로 발휘된다.

얼굴에 거대한 흉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에서 만나는 폭력과 희망과 불안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이민 후 삶에서 만나게 되는 가족은 불안정하고, 자란 후 삶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인생을 그려보지만 쉽지 않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허세와 허풍으로 비루한 삶은 이어진다. 아버지의 과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민 1세대의 삶은 바로 우리 1세대를 생각나게 만들고, 그의 선택이 빚어낸 충돌과 왜곡은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 혹은 그들은 성공했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니 말이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문장은 직설적인 표현과 더불어 읽는 내내 호흡을 간단하게 만든다. 약간만 집중력을 흩트리면 유니오르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놓친다. 아메리카 드림이 깨어진 곳에서 마주한 이민자들의 삶은 사실적이고, 환상과 홍보가 빚어낸 삶은 아주 먼 곳이나 텔레비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종차별은 곳곳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쉽게 세워지지 않는다.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않아 약간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화자와 이야기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낯선 문화와 환경 속에 보이는 우리 소설의 편린들은 문학이 지향하는 공통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엄청나게 느리게 글을 쓰는 그를 생각하면 다음에 나올 책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기다려지는 것은 그가 빚어낸 문장과 현실 마주하기와 멋진 캐릭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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