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교한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무면허, 무사고를 자랑한다는 그 아픈 감정을 내뱉으며 한 남자와의 소개팅을 이야기한다. 그 남자 이름은 남수필. 첫 만남의 장소인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맨다. 어떻게 만나지만 그 만남이 길지 않고 금방 헤어진다. 여자는 의문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하고. 그런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다니 찾아오겠단다. 얼마 후 온다. 이 만남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어떤 낭만적인 장면도 연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여자에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뿌듯함을 안겨주고 말이다.

연봉 삼백만원의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가 이 남자와 소개팅을 한 이유는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늘 살고, 자신이 실험하는 쥐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미키마우스를 모으는 특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특이한 인물 때문에 겪게 되는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덕분에 우린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모험담을 듣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상황과 전개는 단숨에 읽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G-10 바이러스가 도시 곳곳에 죽음의 공포를 만든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전 세계, 특히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그 살상력은 그것을 몇 십 배 초월한다. 이런 공포 속에서도 변함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연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다. 사랑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 왠지 낯익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는 남수필과의 만남부터 암시를 계속 깔아놓는다. 죽음과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다. 이런 설정은 앞부분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빠른 전개로 그 답을 곧 알게 된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자마자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강한 개성과 그들이 마주한 상황으로 즐거움을 준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강력한 풍자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흘러넘친다. 사실 책 읽으면서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이런 풍자와 뒤틀린 그녀의 감정과 대사들이었다. 

사랑 바이러스는 위험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데 그 상대방에게 키스 등을 하면서 전염시킨다. 죽는 경우도 많다. 물론 감염되면 행복감에 빠진다. 이것은 사랑이 단순히 화학적 반응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정말 그럴까? 순간의 충동에 의한 사랑과 이성과 감정의 교류에 의한 사랑은 구분한다면 어떨까? 사실 작가는 이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만나는 환상을 통해 삶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깊이 있게 들어갔다면 좀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속도감과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엔 참 재미난 인물들이 많다. 먼저 주인공 옥택선은 좌충우돌하고 신랄하고 풍자적인 말투와 시선으로 즐거움을 주고, 그녀를 구할 인물로 나타난 이균은 냉소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유지하여 그녀와 묘하게 대조된다. 상도와 미리 두 학생의 아주 심각한(?) 연애 이야기는 풋풋한 가운데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두를 압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수필이다. 등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그의 존재는 우리들 주변에서 늘 보이는 미키마우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첫 소개팅이 마지막이 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동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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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6-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