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니클로만 팔리는가 - 불황 속에서 더욱 빛나는 유니클로의 성공 전략
가와시마 고타로 지음, 이서연 옮김 / 오늘의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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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브랜드에 대한 나의 무지는 엄청나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비싼 것인지, 심지어는 남자 것인지, 여자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때는 이름을 잘못 읽어 직장동료들에게 웃음을 산 적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씩 브랜드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유니클로는 최근까지 낯설었다. 자주 가는 종로에서 이 매장을 보았을 때도, 매일 다니는 출근길에서 보았을 때도 의류 브랜드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서 이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한때 한국도 이랜드 계열의 옷들이 중저가 시장을 휩쓴 적이 있다. 지오다노 등도 그런 계열의 하나였다. 그 당시 이런 브랜드 옷이 비싼 것인지, 국산인지, 얼마 정도인지 몰랐다. 당연히 옷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브랜드 이름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조금 정도가 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브랜드의 이름이나 가치가 아니다. 그 브랜드의 성공이나 실패 등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할 뿐이다. 이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서 하나의 브랜드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알려주는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유니클로 옷을 한 번도 산 적 없고, 매장 안으로 들어 입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불황 속에서 더욱 큰 성장을 이룬 이 브랜드의 실적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플리스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나에게 한 해 2600만 장을 팔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실적이고, 어떤 것이기에 이런 실적을 이루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브랜드를 저자는 아홉 개 장으로 나누어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다루고, 그들의 세계를 하나씩 해부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각 장은 짧은 리포트 형식으로 나누어 가독성을 높이고, 유니클로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만든다.

책을 읽기 전 관심을 가진 것은 이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인지 등이었다. 옷뿐만 아니라 의류 산업 전체에 무지한 나에게 외계어 같이 다가오는 순간도 많았지만 싶게 읽히면서 유니클로가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알게 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하게 다가온 것은 그들의 엄청난 성장 속도와 관리 방식이다. 한 명의 직장인으로 그들이 추구하고, 진행해온 영업은 모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관리와 공격적인 영업이었기에 이 엄청난 성장 등이 가능했다. 

유니클로를 알게 되면서 눈길을 끈 몇몇 문장과 단어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거듭된 실패를 통해 완성을 이루는 것!”(21쪽) 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이 업체가 늘 성공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많이 배웠고, 기존의 틀을 깨트렸는지 알 수 있다. 회장이 예전에 낸 책 제목이 <1승 9패>란 것도 이런 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는 “유니클로의 생산 시스템에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너무나 평범하다. 다만 ‘제대로’한다. 그것이 비밀이라면 비밀일지도 모른다.”(113쪽)란 문장 속에 있다. 상식이 특별한 것처럼 되고,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이 ‘제대로’란 단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다. 수많은 경영이론과 성공 등이 알려졌지만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간단한 것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정말 ‘제대로’한다면 성공은 더욱 가까울 것이다. 

마지막은 “당장 오늘과 내일의 환경은 다르다. 느긋한 자세로 몇 년 뒤의 일을 고려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160쪽)이다. 급변하는 시장 속에서 현재의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은 시스템뿐만 아니라 접근방식에서도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제품의 단가를 낮추거나 질 등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반품 없는 전량 구매란 방식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매장중심으로 점장의 의견이나 권한을 높인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당연한 것과 기초적인 것을 ‘제대로’하는 이상은 어느 정도의 성공은 분명하다. 

가독성이 좋고, 빠르게 읽히고 재미있다. 하지만 의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고, 일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면 불친절한 편집 방식은 아쉽다. 사진 한 장 없고, 주석도 절대 부족해 당장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물론 이런 사항들이 유니클로의 성공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심하게 매일 그냥 지나가던 그 매장과 광고판들이 이제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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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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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나에겐 독살설의 주인공이다. 힘없는 조선의 왕자다. 볼모로 잡혀갔다가 청이 중원을 정복한 후 돌아와 갑자기 죽은 비운의 세자. 청과 오랫동안 있었고, 그 시대 최고 권력자와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조선의 사대주의자들과 왕의 미움을 받은 세자. 그 시절 가장 역동적인 현실에서 가장 비참한 현장과 역사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낮추어야만 살 수 있었던 세자. 그 세자의 최후 2년 중 일 년의 시간을 다룬 소설이 바로 김인숙의 <소현>이다.

사대가 당연하고, 그 사대를 철저하게 믿고 있던 시절 오만했던 조선은 청의 군마에 짓밟힌다. 왕은 남한산성을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군신의 예를 다한 후 세자 등을 볼모로 내주어야 했다. 그 치욕의 역사를 다룬 소설도 있지만 이 소설은 그 치욕을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세자를 다루고 있다. 세자만 다룬다면 그 시대의 모습이 너무나도 삭막하고 정치적이고 고루했을 것이다. 작가는 세자를 중심으로 그를 따르던 무리와 구왕 도르곤 등을 배치하면서 역동적이면서도 참혹했던 그 시대를 재현해낸다. 말 한 마디에 목이 날아가고, 권력과 생존을 위해 자신의 자손을 내놓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 시대 속에 꿈틀거린다.

조선의 세자, 왕의 아들, 원자의 아버지, 봉림의 형. 이런 역할들은 그의 마음을 더욱 황량하게 만든다. 구왕의 무력과 권력 앞에 너무나도 연약하고, 전쟁터에선 군신의 힘에 의해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자신이 직접 전장에 나가야 할 때도 봉림이 대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그의 삶에 과연 즐거움이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가 머물던 관소는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또 다른 전쟁터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를 겨냥한 무형의 화살들이 빗발친다. 오랜 볼모생활을 생각하면 연민과 동정과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권력자 그 누구도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세자가 청과 가까워져 자신들을 몰아낼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이 얼마나 추악하고 불안한 삶인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낮은 신분의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만상이다. 청에 노비로 끌려와 약삭빠른 눈치와 행동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의 뛰어난 언어실력은 이 생활에 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이익이 있다면 조선 사람들을 사고파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힘으로 호가호위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친다. 권력자의 조그마한 그늘에 있던 자는 그 권력자의 눈밖에 나는 순간 파리 목숨처럼 변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하지만 그는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벌벌 떨고, 호통치고, 겁을 주고, 살인을 하지만 이런 행동들은 권력자들의 손짓과 눈짓만도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만상에게 꽤 많은 분량을 할당한다.

무기를 든 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쉽게 목숨을 빼앗던 시절이고, 여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남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하던 때다.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가득하고 전쟁에서 권력의 투쟁에서 흘러내린 피는 언제 마를지 모른다. 욕망에 이끌려 만난 두 남녀의 삶은 무간지옥 같은 곳으로 떨어지고, 돈에 팔려 세자를 감시하던 이는 전쟁터에서 세자 대신 화살을 맞고 죽는다. 불멸과 절대의 제국이었던 명을 숭상하던 그들에게 천조 명의 멸망은 현실이 아닌 환상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반정으로 잡은 자신들의 권력이다. 이 거칠고 믿을 곳 없는 현실에서 세자가 잠시 기댈 사람은 동생 봉림이다. 이것 또한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어떤 의미일까 의문이다.

작가는 가볍지 않은 문장과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로 소현의 2년을 재현한다. 그 속에서 만나는 무리들의 삶은 결코 지금 우리 기준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그러했다. 소현을 둘러싼 삶의 무거움과 황량함과 허무함이 가슴 한켠으로 파고들어온다. 볼모의 삶이 주는 불안감과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환국의 기다림은 그 시간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신분의 제약이 없다면 그 역동의 현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을 테지만 고루한 사대주의 유학자들은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세자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욱 세자의 삶은 권력자의 날카로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날카로움이 밖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자신의 유일함을 떨치고, 형제에게 어질고 강건하라고 외치던 그 세자는 환국 후 급사하면서 역사의 비극으로 남았다. 그 비극의 주인공 소현은 철저한 패자의 역사 속에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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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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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얼핏 보면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서 탐정 역을 맡아 살인사건 등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소설로 보인다. 그런데 소개 글을 보니 역사소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탐정은 남의 뜻을 넌지시 살핀다는 探情이지 수사하고 조사하는 探偵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살짝 기대에 빗나가는 듯했지만 어릴 때 본 영화나 만화에서 만난 사명대사의 이적을 생각하면서 한 편의 환상소설을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다. 작가는 사명대사를 현실과 역사 속에서 충실히 재현하고,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

살인사건도 없고, 멋진 도술로 일본을 놀라게 만들지도 않지만 사명대사는 사명대사다. 작가는 사명대사의 일본탐정기를 3부로 구성했다. 1부는 일본으로 오기 전 사명대사를 수행할 사람들이나 그와 교우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2부는 가장 먼저 도착한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함께 과거와 현실과 미래를 논의한다. 이 부분에서 사명대사가 보여주는 굳은 의지와 목적은 3부에까지 이어진다. 3부는 교토에 도착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만남과 두 역사적 인물의 대화를 통해 시대의 한계와 의지를 잘 보여준다. 

전체적인 흐름만 보면 출발 준비와 출발, 도착, 이동, 회담, 귀국이란 일정을 따른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사명대사와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사연과 일본에 잡혀온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이것은 그 시대의 모습과 현실을 보여주면서 역사적 비극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사람들의 다양한 감성은 역사의 민초들이 정사에 묻혀 있던 것을 앞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왜장의 아내가 된 옹주나 환관이었던 이나 승려가 된 소년의 이야기 등은 잡혀온 사람들의 일면을 잘 드러내준다.

제목처럼 일본을 살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본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에겐 익숙한 개념인 천황제가 군왕제 시대를 산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이 정치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사명대사의 활약은 전설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한 의지와 촌철살인 같은 말로 상대를 압박한다. 이런 활약이 두 나라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사명대사 유정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라곤 임진왜란 때 뛰어난 승장이었다는 것과 뒤에 각색된 신비롭게 경이로운 도술로 일본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일반화된 모습을 뛰어넘거나 뒤에 부풀러진 환상을 걷어낸다. 사실에 입각하여 뛰어난 승장이었다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그 활약을 확장시키고, 불제자였지만 동시에 유학자였던 그를 조명하면서 평면적이었던 그를 입체적으로 살려내었다. 그리고 사명대사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일본에서의 이적을 삭제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깊이를 더했다. 이 때문에 그의 방문이 지닌 의미와 역사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일본의 다이묘나 쇼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그것은 조선을 침략한 주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죽음으로서 그 죄를 물을 사람이 없음으로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만 말하고자 하는 이들을 통해 현재 한일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친일 정치인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런 동일한 역사 인식과 행동을 통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를 알 수 있고, 이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명대사의 탐정 속에 드러나는 일본의 역사는 한동안 잊고 있거나 잘 몰랐던 전국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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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
마티 크럼프 지음, 유자화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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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학창시절 생물을 비롯한 과학에 약했던 과거 때문이다. 그 후 나름대로 과학관련 책을 읽었지만 변함없이 낮은 기억력과 이해력으로 형편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생물 관련 서적이 아닌 약간 므흣한 내용을 담은 로맨스 소설 등으로 착각했다. 책 내용을 보기 위해 목차를 보았을 때도 변함없이 자극적이었다. 원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에 흥미위주로 바뀐 것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도발적인 시도다. 덕분에 시선을 확실히 끌기는 했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동물과 식물 간의 상호작용, 곰팡이, 세균과의 상호작용 등이다. 이 상호작용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아마도 학창시절이나 살아가면서 본 몇몇의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비롯한 기억 덕분일 것이다.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운 몇몇 단어들은 반가웠고, 조금 더 확장된 경우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의도다. 이것을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지어보고, 이 멋진 자연사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8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술적 논평이 아닌 동식물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먼저 같은 종 동물 간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으로 짝짓기를 이야기한다. 이 짝짓기가 멋지거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수컷의 필사적인 노력은 인간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그들이 펼치는 노력과 협력 등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프로그램에서 가끔 본 것이지만 각 개체 마다 각양각색이라 놀랍고 이색적이었다.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은 그렇게도 낯익은 공생과 기생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널리 알려진 악어와 악어새는 없지만 페더슨청소새우 같은 다양한 새우류의 활약은 낯설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흰머리독수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흥미롭고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동물과 식물 간의 상호작용은 난초 이야기로 시작한다. 난초를 제대로 키워본 적도 없고, 그 차이도 모르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난초들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펼치는 유혹은 치명적이다. 이후 개미를 비롯한 다양한 사례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된다. 이런 정보들은 가벼운 책읽기를 기대한 나에게 백과사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어느 순간에 조금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지막 장이다. 곰팡이, 세균과의 상호작용을 다룬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장들과 달리 이야기의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많은 정보보다 알고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아니 차분하게 조금씩 읽는다면 예상외의 소득이 많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단숨에 읽으려고 하면 약간은 전문적이고 낯선 이름 때문에 힘겨울 수도 있다. 이야기로 풀어내어 읽기 무난한 편이지만 역시 너무 많은 동식물이 다루어지면서 한꺼번에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소화를 위해 방귀를 뿡뿡 끼듯이 누군가 이 책을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한 방귀를 내 머릿속에 끼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지금은 제대로 이 책의 맛을 음미하지 못했지만 다음엔 편한 곳을 펼치고 조금씩 다양한 동식물의 신기하고 일상적인 세계에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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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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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최근에 퓰리처상 수상작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예전에 이 상을 받은 책을 아주 지겹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루함이 가신 것을 보면 나의 내공이 조금 쌓인 모양이다. 이 소설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열세 편의 단편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 속내를 잘 드러내거나 숨기면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보다 보면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리고 한국 문학에서 자주 만나곤 했던 삶들이 다른 지역과 사람들에게서 다시 드러난다. 물론 그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도 긴 삶을 힘겹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의 중심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그녀는 키와 덩치가 크고, 사과를 할 줄 모르고, 고집이 세다. 모든 단편 속에 등장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올리브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맺고 있다. 몇몇 단편에선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때 드러나는 행동과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아이 같다. 하지만 그 솔직한 감정과 행동은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한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공간적으로 동일한 곳을 공유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덕분에 앞에 나온 사람들의 미래가 궁금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 사람들은 나아가고 성장한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60대도 70대도 모두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순간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어떤 순간은 격렬하다. 다른 사람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현실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가기도 한다. 

첫 단편인 <약국>에선 올리브의 남편 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굉장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감정의 절제가 돋보인다. 여직원 데니즈와의 감정교류가 어느 정도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대 그 마을에서 이런 일탈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용기가 없었는지 모른다. 너무 예의바르고 선량하고 보수적이라 불륜을 저지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올리브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인지도 모른다.

<밀물>에서 올리브가 나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살을 준비하는 그의 제자와 함께 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고 삶의 의지로 가득하다. <피아노 연주자>에 남편과 잠시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온 것은 <작은 기쁨>이다.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질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앞에서 어느 정도 그녀의 성격 중 일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지만 그녀의 작은 기쁨이 되는 행동은 낯설다. 이 낯설음은 뒤로 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그것은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그녀의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올리브와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는 일반 부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 모두에게 위기는 있었지만 일탈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한 사건을 통해 갈등이 고조된다. <다른 길>에서 마주한 소년 범죄자들과의 만남은 긴 결혼생활 속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헨리가 쓰러지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고 움츠려들게 된다. 이 불행은 아들의 첫 이혼과 맞물려 있고, 아들의 재혼과 초대로 이어질 듯한 모자 관계가 다시 그녀의 고집과 아들의 무관심으로 충돌하면서 고착되어버린다. 

올리브의 삶이 노년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회상하고 일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과부인 상태가 외로움과 허전함을 전해준다. 이 때문에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남자 잭과 만나게 되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도 젊은이들처럼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은 하루하루를 낭비하기엔 너무 짧다. 이 순간 그녀는 죽음을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에서 삶에 대한 의욕으로 변한다. 이것은 그녀의 성장이자 삶과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리브가 강한 개성으로 중심을 잡아준다면 다른 주인공들은 삶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준다. 가끔 긴 호흡의 잘 다듬어진 문장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올리브, 그녀는 놀랍도록 개성적이고 생동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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