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 앗아가주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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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한 소녀의 긴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엔 평범한 여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도 같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영상들과 사실들이 낯선 시대의 모습을 하나씩 재현하게 만든다. 이 모습들은 현재 멕시코를 배경으로 구성된 것들을 뒤집어 놓고, 해방 후 우리의 정국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낯선 역사와 사람들은 강한 몰입을 방해하고 살짝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열다섯의 카탈리나는 서른이 넘은 남자의 구애를 받고 결혼한다. 지금 같으면 말도 탈도 많은 결혼일 텐데 그 시절엔 조금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그 남자 안드레스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장군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린 처녀가 어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결혼 얼마 후 남편이 잡혀가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 금방 남편이 돌아오지만 어린 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나이 먹고, 남편이 주지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성공한 남편을 둔 아내지만 남편이 벌이는 놀랍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나 사고들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정치라고는 아내나 딸의 관점 등에 머물 정도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일반 상식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의 다른 정부들에게서 난 아이들도 돌보면서 그녀는 점점 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집밖에서 힘을 발휘할 정도는 못된다. 안드레스가 그녀의 요구 조건을 일축하고,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카탈리나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멕시코 혁명 시기의 혼돈 상황을 남편 안드레스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권력과 자산을 위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살인하고, 상대를 협박한다. 어느 날 사라진 사람이 토막이 나서 어느 집 앞에 버려지는 사태도 발생하고, 범죄자로 감옥에 갇힌 권력의 하수인은 탈옥하여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왠지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떠오른 것은 비약일까? 

지루하고 재미없고 남편의 목적에 이끌려 다니는 그녀에게 위대한 모성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가 연인에게 하는 말을 보면 자신이 우선이고 가족들은 부차적이다. 남편을 처음 사랑했을 때 같은 불같은 열정은 어느 듯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멋진 남자는 몸과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정적이나 방해자를 죽이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녀의 이런 마음이나 행동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위험이 클수록 사랑은 더 정열적으로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사랑하기에 그 위험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한 여자의 성장과 사랑만 다루었다면 지극히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멕시코 혁명의 혼란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다. 남편에 대한 엄청나고 끔찍한 소문을 친구의 입을 통해 듣고, 그 소문에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약하게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이런 현상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통제되어 있고, 그 통로가 대부분 남편의 소리를 통해 얻게 되는 그녀가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실한 역사의 기록자다. 비록 여성들의 시각이 강하게 담겨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단숨에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몸 상태 탓도 있지만 낯선 이름들과 시대 상황이 몰입을 살짝 방해했다. 그리고 카탈리나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멕시코 혁명기의 삶과 모습들이 너무 낯설었다. 중반 이후 그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는 깊은 몰입을 했다. 이 사랑은 또한 그녀의 남은 삶을 좌우할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세상을 좀더 대담하게 보고 다가가게 만드는 힘을 줬다. 마지막에 권력을 잃은 남자의 초라한 여생을 보면서 권력은 마약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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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2 - 금권천하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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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1권을 읽지 않았다. 1권이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빌려 읽을 기회도 있었고, 살 기회도 있었는데 후배의 한 마디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 한 마디는 <황금>을 읽고 난 후 그 내용을 이야기하니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실 이런 두꺼운 경제서적을 잘 읽지 않을 때고(지금도 마찬가지다) 책 내용에 대해 몰랐을 때였다. 하지만 2권 금권천하가 나오고, 목차를 읽게 되면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호기심도 물론 작용을 하였지만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3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17개 금융가문 인맥 대해부’란 소개글이다. 이전에 음모론이나 반세계화 등을 다룬 책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 등에 대한 실상을 어느 정도 읽은 적이 있지만 다른 가문에 대해서는 아주 단편적인 지식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도 음모론의 시각이 강하여 그 기원이나 성장이나 영향력 등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정도들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했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다른 금융가문들도 다루면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권을 모두 읽은 후 1권의 목차를 보니 로스차일드 가문이 중심에 있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중심에서 다른 가문들과 협력과 대립을 반복한다. 전작을 보지 않은 상태라 어떤 내용들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새롭게 다루어진 가문들을 보면서 그들의 힘과 영향력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와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 사실뿐만 아니라 저자의 추리에 의해 메워진 부분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가 풀어내는 논리는 분명하다. 이 금융가문들이 추구하는 것은 금권 즉 돈이란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많은 부분이 음모론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난 해석도 많은데 읽다보면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는 대목도 상당하다. 이런 대목들을 만나면 그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보게 되는데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채널에서 이미 본 것이라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바탕으로 그 가문의 성장과 세계사를 연결하고 해석하였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 새로운 시각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몇 가문을 제외하고 다른 가문들을 새롭게 만날 때는 세계의 숨겨진 실세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을 다루면서 국제 은행 가문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다. 이 도입부는 역사와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숨에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독일을 국제 은행 가문들의 발원지라고 말하고, 영국을 통한 금권 고지 선정을 보여주면서 프랑스의 혁명 등에 그들이 끼친 영향과 금권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은 다시 새롭게 부상하던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고, 전쟁 등으로 혼돈에 빠진 유럽의 역사를 국제 금융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특히 히틀러를 국제 금융 가문과 연결해서 분석한 부분은 악마 같은 히틀러의 이미지 넘어 존재하는 냉철하고 뛰어난 정치인의 모습을 부각시켜준다. 이것은 또 어떻게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고,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알게 된 히틀러 정권과 관련된 사실들이 이것으로 많이 해결되어 좋았다.

유대계 국제 금융가문을 다루다보니 이스라엘 건국이 빠질 수 없다. 어느 정도 유대계가 힘을 발휘했을 것이란 것을 알았지만 어떤 식으로 행사했는지는 구체적이지 못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았고, 이 영향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비유대계 국제 금융가문을 다루게 되고, 이 둘의 대결과 협력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신용과 자본 흐름의 채널을 장악한 자가 게임 룰을 정한다는 사실이다!”(226쪽) 표현에서 이들이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에 가면 2024년 단일화페의 등장을 예언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예전에 마냥 단일화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이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도 알게 되면서 마냥 찬성할 수 없다. 이것은 이번 그리스 사태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명히 존재하는 각 나라간의 경제력 격차 등이 하나의 단일 통화로 인해 조정될 여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달러를 다룬 부분에서 금괴를 사놓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요인만이 전쟁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돈은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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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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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니 그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능할까? 흔히 드라마 등에서 몇 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부부가 서로를 모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관계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조차도 그 사람을 알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 더 그 실체에 다가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통곡> 이후 오랜만에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을 읽었다. 처녀작인 <통곡>을 단숨에 읽은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처녀작이 아이들의 연쇄 유아 유괴살인사건을 다루면서 각 방면의 풍경과 반응을 잘 표현하였다면 이번에도 역시 한 가족의 살인 사건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한 여자의 독백을 집어넣어서 범인을 앞으로 드러내었다. 그녀의 독백은 왜 그녀가 그런 참혹한 살인을 일으켰는지 독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그녀의 인생역정이 얼마나 불쌍하고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남자가 일가족 살인사건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사이에 한 여자의 독백이 맞물려 돌아간다. 피해가족을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인데 그들의 말을 통해 그 부부의 과거와 현재가 재현되고 분석된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그려낸 소설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먼저 생각난 것도 이런 형식 때문이다. <이유>가 좀더 방대하면서 사회적 비극임을 잘 드러낸 반면에 이 소설은 사회로 확장시키기보다 개인 영역으로 축소시킨다. 그래서 함축적인 부분은 더 강하지만 압도적인 느낌은 조금 덜하다.

좋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남편과 좋은 대학을 나온 아름다운 아내와 그들의 예쁜 남매가 모두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왜 이들이 죽은 것일까?’ 하는 것과 ‘누가 죽인 것일까?’ 가 가장 큰 의문이다. 사실 누가 죽였는가는 독백을 하는 여자임을 암시한다. 단지 그녀가 누군지 의문스러운데 이것도 중반에 드러난다. 그녀의 독백으로 드러나는 삶은 피해자 부부의 삶과 분명히 차별된다. 이것은 그녀의 불쌍하고 처참한 삶을 동정하게 만들지만 독자가 그 행동에 동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뒤에 나오는 몇 가지 반전 같은 상황 중 한둘은 너무 과도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누가? 보다 왜? 라는 의문이 더 강한데 작가는 왜? 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이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과거와 현재를 그들의 이웃과 친구들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시선은 당연히 보는 사람의 감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들은 피해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의 삶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탁월하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선들이 하나씩 모여 단편적이었던 그들의 삶이 하나의 윤곽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고, 그들의 기억에 의해 윤색되거나 퇴색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의 현재 삶과 추억 때문이다. 

여섯 명의 증언 속에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뒤로 가면서 점점 과거로 간다. 현실의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삶이 과거 속에선 치기와 자신감과 실수와 오만 등으로 가득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인데 과거의 한 시점과 현재의 사건을 연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덕분에 드러나는 그들의 과거는 살인자의 독백과 정교하게 맞물리며 왜? 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하지만 역시 그 왜? 라는 답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독백과 과거가 과연 그런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이어질 만한 것인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반전으로 깔아놓은 설정이 더 많은 의문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읽는 재미를 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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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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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꽤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딱 한 권 읽었다. 그것은 <어느 미친 사내의 5년만의 외출>이란 소설이다. 스페인 소설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큰 기대 없이 펼쳤다. 그런데 책을 편 순간부터 정신없이 읽었다. 예상하지 않은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당연히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을 뒀다. 뭐 언제나 처럼 사놓고 고이 모셔두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낯선 작가의 이름은 잘 기억 못해도 책 제목만은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작가 이름보다 먼저 출간된 책이 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기독교 서적이 아닐까 오해를 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그런 오해를 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이 먼 기억의 한 자락을 떠올려주었고, 작가의 다른 번역본들이 기억을 뚫고 강하게 앞으로 나왔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예전 재미가 떠올랐고, 실제 예수가 등장한다는 부분에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궁금했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는 읽는 도중에 전혀 실망을 주지 않았다. 나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호평들이 사실임을 다시 확인했다.

폼포니오는 로마의 과학자다. 그래서인지 놀라운 물의 효능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몸으로 실험한다. 당연히 배앓이를 하고, 돈은 모두 빼앗기고, 카라반의 호의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나사렛이다. 이곳에 올 때 그와 같이 온 호민관 아피우스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돈을 모으는 인물이다. 한 푼 없는 폼포니오가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과 나사렛으로 오는 도중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한 행동은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돈을 밝히는 이런 특성이 물론 폼포니오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말이다.

폼포니오가 나사렛에 도착했을 때 한 유대인 부자 에풀론이 살해당한다. 그 사건이 있기 전 한 남자와 말다툼이 있었고, 그가 죽은 방은 밀실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살인자로 목수인 요셉을 지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셉이 바로 예수의 아버지다. 작가는 대담한 설정을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어린 예수다. 사실 이때만 해도 예수는 어리고 아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단지 그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 요셉이 무죄임을 증명하여 풀려나는 것이다. 돈을 모두 잃고, 지저분한 집에서 집주인에게 구박 받으며 살아야 하는 폼포니오를 돈으로 유혹한다. 이 유혹에 빠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폼포니오가 사건을 파고드는 부분에서 현대의 탐정 같은 역할을 한다. 탐문과 추리를 이용해서 진실을 알고자 하는데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분명히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좀처럼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요셉이 에폴론과 다툰 부분에 대해서 입을 다물면서 더 어렵게 만든다. 혹시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했는데 아니다. 죽은 자의 집에서 단서를 찾고자 하다가 실패를 하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만 사건과는 상관없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이름이 낯설다. 그것은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폼포니오와 어린 예수 콤비를 통해 사건의 실상에 다가간다. 이 과정이 결코 매끄럽지도 않고, 일류 탐정처럼 날카롭지도 않다. 폼포니오의 마음은 확 때려치우거나 조그마한 폭력으로 예수의 돈을 빼앗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이런 심리 묘사는 사실적이다. 또 그가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은 웃음을 자아낸다.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을 때가 있다. 폼포니오가 과학자로 나와서 종교에 대해 비판적일 때 스페인에서 이런 책을 낼 수가 있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결코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가볍고 우습고 유쾌하고 풍자적이지만 결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나 전개가 유치하지 않다. 결국 느낀 것은 재미있다는 것과 이 작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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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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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많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은 분량을 넘어섰다. 처음엔 가볍게 진도가 나갔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로봇 아트와 아담의 대화다. 전반부는 이 둘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는데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후반부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하는 철학적 질문에 집중한다. 이때부터 많은 생각을 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깨어진다. 

작가는 화자인 아낙시맨더의 학술원 시험이란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모두 네 시간 정도의 시험인데 역사학도 아낙스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시험관은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 첫 질문이 플라톤공화국의 아담에 대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이 소설이 말하고 하는 것이 시작된다. 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또 플라톤 공화국이란 이름이나 다른 그리스 학자들의 이름들을 빌린 것이나 철학자, 기술자, 군인, 노동자 이렇게 네 개의 계급으로 구분한 것 등과 연관성이 있다. 

아담은 공화국의 일반적인 규칙에 따르지 않는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세계가 파멸의 길을 걸어갈 때다. 이때 플라톤이 현재의 뉴질랜드 같은 곳에 토목공학적인 바다 방벽을 설치하여 전염병이나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이 과정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고 파괴적이다. 즉 방벽을 넘어서는 그 어떤 사람이나 비행체 등을 거침없이 죽이고 파괴한다는 의미다. 이런 시기에 아담이 방벽 쪽으로 다가온 한 여자를 구한 것이나 자신의 동료를 살해한 행위는 엄청난 문제임에 틀림없다.

단순히 외부 소녀를 구했다고 그 지역이 멸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담이란 존재와 행위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변한다. 법률에 따라 교수형에 처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전후 세대의 성장에 따른 사회 변혁을 두려워한 정치인들이 아담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려고 하면서 역풍을 맞는다. 여기까지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실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로봇 아트와의 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그 대화의 시작은 로봇의 성장을 바란 철학자들의 욕망 때문이다.

인간 아담과 로봇 아트의 대화는 일차원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처음에 아담은 아트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지속적인 아트의 도발과 도전으로 이 둘은 대화와 토론을 시작한다. 이 대화 내용은 인간에 대한 것이다. 뇌, 관념, 생각, 의미, 감각 등의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가 오고 가는데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관념 등이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봇이 프로그램에 의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치부하기에 너무 뛰어나다. 여기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가고 기존의 인식들이 하나씩 혹은 조금씩 깨어진다.

대화와 기록의 재현 등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지루함은 없다. 교묘하게 연출하여 마지막 반전을 준비해 두었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트와 아담의 대화 속에 단서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반전의 일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2058 제너시스>란 제목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미래 묵시록이란 일부의 평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다. 표지가 의미하는 바도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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