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화자로 나온 유니오르가 다시 나온다. 다시란 단어를 쓰기가 조금 쑥스럽다. 그 이유는 이 소설집이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 수 년 전에 말이다. 작가는 유니오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과거를 그려낸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우리의 이민 1세대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민 1세대가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이 이 소설 속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세부적인 곳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윤곽에선 많이 유사하다. 그것은 주류사회로 편입하기 전까지 비주류가 겪어야 하는 아픔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쪽은 도미니카고, 다른 한 곳은 뉴욕이다. 도미니카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빈곤하지만 열정과 깨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뉴욕은 부를 조금 가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다른 문화와 경제 환경은 적응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변하게 된다. 뉴욕에서 유니오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정체성과 함께 생존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난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은 늘 필요하다. 이런 곳에 유혹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가 마약상이 된 것은 이런 삶에 대한 순응이거나 굴복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삶을 즐기고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미래를 설계하기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늘 아이들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을 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 어머니를 유혹하는 수많은 남자들, 이제 조금 자랐다고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형, 어린 시절 돼지에게 물려 얼굴에 큰 흉이 있는 이스라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고, 삶을 보여주고, 감정을 드러내고, 가끔은 폭력을 행사한다. 바로 이런 환경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유니오르의 시선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고 날 것 같은 신선함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그대로 발휘된다.

얼굴에 거대한 흉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에서 만나는 폭력과 희망과 불안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이민 후 삶에서 만나게 되는 가족은 불안정하고, 자란 후 삶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인생을 그려보지만 쉽지 않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허세와 허풍으로 비루한 삶은 이어진다. 아버지의 과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민 1세대의 삶은 바로 우리 1세대를 생각나게 만들고, 그의 선택이 빚어낸 충돌과 왜곡은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 혹은 그들은 성공했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니 말이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문장은 직설적인 표현과 더불어 읽는 내내 호흡을 간단하게 만든다. 약간만 집중력을 흩트리면 유니오르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놓친다. 아메리카 드림이 깨어진 곳에서 마주한 이민자들의 삶은 사실적이고, 환상과 홍보가 빚어낸 삶은 아주 먼 곳이나 텔레비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종차별은 곳곳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쉽게 세워지지 않는다.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않아 약간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화자와 이야기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낯선 문화와 환경 속에 보이는 우리 소설의 편린들은 문학이 지향하는 공통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엄청나게 느리게 글을 쓰는 그를 생각하면 다음에 나올 책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기다려지는 것은 그가 빚어낸 문장과 현실 마주하기와 멋진 캐릭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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