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외계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6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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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집은 사실 지난 번 단편집보다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덜하다. 그가 늘 보여주는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 뒤에 숨겨진 블랙유머가 잔혹함에 가려지거나 겉도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취향이 달라 그런 점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강한 몰입으로 끌고 가는 단편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어쩌면 첫 느낌의 강력함이 지워지면서 더 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이 일곱 편의 단편이 충분하게 만족시켜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역시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가다.

<기울어진 세계>는 그 세계만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같이 기울어져 있다. 그 도시가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알리려고 하지 않는 시장이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부족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시장과 그 추종자들 모습이 지금의 한국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선 그 느낌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최악의 외계인>은 역시 정치인에 대한 강한 풍자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외계인은 더 황당하다. 이 황당함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녹아들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이해 부족인지는 모르지만 충분한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꿈틀꿈틀 장관>은 해프닝의 연속인데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히 찾기가 힘들다. <고로하치 항공>은 일단 재미있다. 짧은 단편 속에 캐릭터가 살아있고, 황당한 조종사와 마을 사람들 대화 속에 유머가 살아있다. 쌍발비행기 기름을 넣기 위해 도로 위에 착륙시키고, 상대방이 피하길 바라는 그녀를 보면서 무대포 정신의 위험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린다.

언어에 대한 불신 탓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겉마음과 속마음 차이를 표현한 것인지 모르지만 <관절화법>은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지구 대사가 된 개인간의 처절한 관절화법은 엉덩이로 이름쓰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늘을 나는 표구사>는 현재의 항공사고와 과거 일본에서 하늘을 날기 원했던 고키치를 연관시켜 약간은 평범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앞의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잔혹했던 <이판사판 인질극>은 처음의 기발함이 엽기적인 장면으로 흐르면서 아쉬움을 준다. 아내와 아이가 재혼하려는 아내를 보기 위한 인질에게 잡혔고, 이를 구하려는 남편을 경찰이 무시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그 인질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잡아 대치하는 이야기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 그 가족을 구하겠구나 하는 추측은 엽기적인 장면들로 마무리되는데 그 기발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엽기 속에 사람들의 극단으로 치닫는 심리와 그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을 잘 보여주었지만 그 한계선을 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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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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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링컨 라임 시리즈 중 <콜드 문>을 읽지 않았다. 이 작품 속에 잠시 캐트린 댄스가 등장한 모양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번 소설에 링컨 라임이 잠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만남을 보면서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중 한 편이 생각났다. 이런 주인공들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들뜨고 즐겁게 만든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영웅들을 모아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만나면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구성과 설정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다. 공간은 캘리포니아다. 맨슨의 아들로 불리는 다니엘 펠의 새로운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퍼 감옥에 수감된 그를 심문하기 위해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불리는 캐트린 댄스가 온다. 감옥 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면서 이 둘은 대결한다. 펠은 살인범들이 흔히 하는 가족 문제로 협박을 하고, 감옥에 갇힌 그를 생각하며 댄스는 조금은 안심한다. 심문을 끝낸 후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데 이상한 것이 보인다. 그가 수감된 시기와 살인도구가 발견된 시간이 맞지 않다. 감옥에 전화를 해서 이상함을 알리려는 순간 감옥은 불탄다. 사람을 죽이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펠은 간수들을 죽이고, 그를 사로잡으려고 했던 형사마저 화염 속으로 밀어 넣고 탈출한다. 이제 펠과 경찰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기본 구성은 댄스와 펠의 대결이다. 펠은 외부에서 제니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조금 늦게 혹은 적시에 댄스가 나타나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댄스가 펠을 쉽게 사로잡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의 추격전은 긴장감을 불러오는 동시에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하고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펠의 능력과 위협은 일반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댄스의 다음 대처가 어떻게 펼쳐질까 기대하게 만든다. 지배하려는 자와 거짓말 탐지기의 대결은 심리적으로 강한 긴장을 유지하고, 빠른 속도감은 강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잠자는 인형이란 바로 펠의 가족 살인사건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에 대한 별명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 이 소녀가 펠의 탈옥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펠의 관심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꿈꾸는 패밀리는 검사 등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다. 이런 착오가 그의 행적을 뒤좇는데 어려움을 제공한다. 그를 도와주는 제니의 정체가 쉽게 파악되지 않음으로서 더욱 어렵다. 특히 펠과 제니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직 완전하게 굳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댄스와 펠은 모두 동작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파악한다. 한 명은 분석하기 위해서, 다른 한 명은 지배하기 위해서다. 이 둘의 이런 분석은 단순히 동작만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정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정보만 주어진다고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정보를 제대로 읽고 분석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둘의 능력은 돋보이고, 대결은 긴장감을 불러온다. 잡히지 않기 위해서, 혹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로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달리 증거물을 분석하면서 살인자를 좇기보다 그 사람의 정보를 통해 심리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낸다. 이것은 가끔 프로파일러가 정보와 감정이입 등을 통해 살인자로 순간 변신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댄스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계속 분석하게 만든다. 이런 심리묘사는 디버의 특징인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반전과 더불어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 속에 숨겨진 거짓은 언제나 멋진 반전의 소재가 되고, 빠르게 읽히는 재미와 속도감은 역시 디버란 찬사를 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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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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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열 개의 강의를 통해서 정의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를 이리저리 뒤집고, 세 가지 항목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이다. 이 셋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말한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정의가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의 각각 다른 시선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기존 인식을 뒤흔든다. 이 흔들림이 즐겁고 유익하다.

첫 장부터 그는 묻는다. 옳은 일하기에 대해서 말이다. 2004년 미국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덮치고, 많은 사람이 죽고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가격폭리 논쟁이 발생했는데 평소 2달러 얼음주머니가 10달러에 팔리고, 건설업자는 지붕을 덮친 두 그루의 나무를 치우는데 2만 3천 달러를 요구했다. 이런 엄청난 가격폭리는 결국 논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이군인을 둘러싼 논쟁도 소개하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으로 등록되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많아지고 있는 정신이상을 제외하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마지막 사례로 선택에 따라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보통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것이다. 가격폭리는 너무 심하고, 정신이상도 상이군인으로 등록되어야 하며, 한 사람의 목숨과 몇 사람의 목숨의 무게는 똑같다고 말이다. 이런 대답이 쉽게 나오는 것은 공식처럼 배운 바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씩 반박 논리를 제시한다면 쉽게 그것을 다시 반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논리가 일관성을 가지고 다른 사례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사실 자신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 나에게 정확한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정치적 이해도 같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옳은 일하기를 지나면 그 유명한 벤담의 공리주의를 살펴본다. 그것을 반박하면서 자유지상주의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징집과 고용이란 문제를 펼친다. 사실 한국의 상황에서 이 문제는 정말 민감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은 인식의 폭을 우리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대리출산을 둘러싼 법해석과 논쟁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성이 사라지고 단순히 아이를 낳기 위한 살아있는 기계처럼 된 인도 여성들의 현실은 경악스럽다.

한때 너무나도 어렵게 읽은 칸트를 다시 만나면서 쉬운 몇 가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역시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존 놀스의 평등 옹호를 만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입장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 속에서 현재의 나의 위치와 입장을 풀어낸 해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몇 가지 이론적인 허점으로 답을 내지 못한 것을 해결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존 놀스의 정의론을 비판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는 대목은 저자의 다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소수집단우대정책과 선조들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는 매킨타이어의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312쪽)란 말에서 왜 이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저자의 주장과 가장 가까운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행복을 극대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미덕을 추구하는 등의 여러 개념과 엮여 있다. 그리고 정의를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라고 한 대목에선 다시 올바른 가치 측정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제시한다. 독자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읽었던 정의를 복기하게 만든다.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번갈아 가면서 정의를 파헤치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가볍게 읽기는 조금 힘들지만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얻는 소득은 크다. 현실에서 실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현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의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물음에 대한 사고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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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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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두 번째 작품이다. 사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두 편 있다. 첫 번째 소설과 가장 큰 흥행을 한 세 번째 소설 <구해줘>다. 물론 이 두 권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을 빨리 읽지 않는 것은 역시 사놓은 책이란 것과 다음에 책읽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위한 저축용이다. 하지만 언제 읽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쌓여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아니 읽게 된다.

초기작이란 점이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나온 작품들이 조금 매너리즘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속도감과 재미를 주지만 반복적인 구성과 전개는 예측 가능한 결말로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예전부터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연속해서 읽다가 마주하는 문제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초기작을 읽지 않은 경우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신선함이 부족하다. 그의 작품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1972년 가을 한 소녀가 호수에 빠지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한 소년이 뛰어든다. 소녀를 구하지만 소년은 죽음의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시간이 바뀐다. 그 당시 소년 네이선은 성인이 되었다. 그는 그 소녀 말로리와 결혼을 했고, 예쁜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일에 너무 빠졌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했다. 뉴욕의 성공한 M&A 기업 변호사가 된 네이선에게 이런 과거는 아픔이지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아니 큰 아픔이지만 일로 이것을 잊고 살아가고자 한다. 이러다 한 의사가 그를 찾아온다. 그가 바로 가렛 굿리치다.

네이선은 그를 처음 본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낯설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 의사의 갑작스런 방문은 성공을 향해 달리던 그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네이선의 삶은 변하고, 신비로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처음 의사가 나타났을 때 뭐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려 다니는 네이선의 행동은 이런 의문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리고 그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보여준 능력은 그의 존재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한다.

굿리치의 능력은 특별하다. 죽을 사람을 미리 아는 것이다. 저승사자의 예지력 같은 것이다. 작가는 이 능력을 메신저라고 부른다. 처음 네이선이 이 능력을 보았을 때 부정하고, 의심하고, 분노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굿리치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단지 죽을 사람을 미리 알 뿐이다. 운명 지어진 사람의 삶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이다. 여기부터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네이선은 아내 말로리 집안 가정부의 아들이었다. 어린 아내의 생명을 구해주었지만 부유한 그녀의 부모는 딸이 그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기보다 그 집안을 더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혼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관계는 굉장히 소원하다. 이런 과거는 네이선이 변호사가 되어 성공을 향해서만 달려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런 열정과 욕망이 오히려 사랑하는 아내와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거기에 그들의 아들이 유아돌연사로 죽은 후에는 더욱 거리감이 생긴다. 그 후에 다른 환경과 사고 속에서 자란 두 부부는 충돌하고 헤어진다. 

앞에 깔아놓은 이야기만 보아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배경을 단숨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나씩 드러내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굿리치의 등장, 그의 능력, 사람들의 죽음,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아내, 과거의 사실들, 사건과 사고, 사랑의 회복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속도감 있으면서 매끄럽게 흘러간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장기를 마음대로 발휘하는데 그 속엔 사랑의 감정과 두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두 읽은 후 다시 한 번 역시 기욤 뮈소라고 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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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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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에서 1910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연도다. 그해가 바로 얼마 전까지는 한일합방으로, 지금은 경술국치로 불렸던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유전자에 그 해와 그 당시의 매국노들은 깊이 각인되어 지금도 일본이라면 치를 떨게 만들 정도다. 물론 일부 보수 세력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선동을 하고 바람을 쏟아내지만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뒤면 어떨까? 일제 치하 35년 동안 사람들 뇌리 속에 뿌리박힌 친일사관과 문화가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기 1910년, 경술국치,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이 누군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 21명은 낯익은 인물과 낯선 인물이 교차한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인물도 깊이가 얕아 이름과 그 놈이 나쁜 놈이다는 것 정도에 그쳤는데 이 책은 그들의 죄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과 변화를 같이 그려내면서 그 인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하는데 이 부분이 사실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이 시각은 한국의 것이라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새롭게 평가한 부분은 역사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은 정한을 꿈꾸었던 인물들이고, 다음은 열도의 침략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사랑했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 개개인의 평가는 시대와 그 나라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보다 거짓과 폭력으로 조선을 대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근대화와 조국 번영에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선과 거짓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그들을 평가한다.

21명의 일본인 중에서 두 명이 일본 천황이다. 이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고, 그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보여준다. 목적에 의해 신으로 군림했다가 패전으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목숨과 자리를 보전한 그들을 보면 맹신과 우상에 휘둘린 일본 국민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 속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피눈물과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731부대와 관련한 최근 연구 결과는 히로히토의 거짓과 위선을 낱낱이 벗겨버린다. 이 사실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첫 다섯 명은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중심인물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그중 ‘식민은 문명의 전파’라고 외친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최근 친일세력의 주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지나 명성황후 제거의 선봉에 선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나게 되면 그 당시의 살인자들이 단순한 야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제 병탄 후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성을 무시하고 굴절시키면서 그들이 노렸던 바를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만나게 될 때 친일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머리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한국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분석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조선 문화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연구들이 오히려 문화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에선 그가 이룩한 업적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란 틀 속에서 조선의 구원을 찾으라고 외친 우치무라 간조의 주장은 그가 사랑했던 일본과 예수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방식의 통치에 대한 옹호임을 말해준다. 그 후 만나게 되는 박연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아사카와 다쿠미 등의 열정과 인본주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동시에 전후 반일감정과 반공산주의에 의해 그들의 업적이 폄하되고 무덤이 훼손된 것에선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책은 조선 병탄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똑같이 우리에게 우린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이 땅에 온 수많은 이민자와 산업연수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그 시대를 통해 현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사유의 장을 현실의 우리에게 확장하는 것도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망령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지우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겠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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