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
캐서린 호우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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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에서 마녀재판이 있었다. 20명이 넘는 사람이 마녀로 지목당하고 처형당했다. 유럽의 종교재판이 벌어지던 시기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신대륙으로 불리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작가는 바로 이 다양한 해석과 그 시대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마녀에 대해 새롭고 신선한 해석을 보여준다.

박사과정 시험에 합격한 코니에게 어느 날 엄마의 부탁 전화가 온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집을 수선해서 팔아 체납된 세금을 납부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 마블헤드로 온다. 18세기 낡은 집은 먼지 가득하고 온갖 잡초와 풀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선 낯설고 신비한 경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집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말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한 여자의 이름은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로 그녀를 인도한다.

코니가 발견한 이름은 딜리버런스 데인이다. 낡은 성경 속에서 발견한 이름인데 앞으로 펼쳐질 조사와 연구는 모두 여기서 시작한다.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필연적인 만남이다. 그리고 17세기 말 세일럼으로 돌아가 데인의 과거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서로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코니의 조사와 맞물려 있다. 처음엔 그냥 보통의 호기심이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 자료로 발전하다. 여기에 지도교수 매닝 칠튼이 은근히 그녀가 조사를 계속할 것을 요구한다. 어느 정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가는 데인의 과거에 다가가는 과정을 빠르게 진행하지 않는다. 더딘 진행 속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자 연인으로 발전하는 샘을 만나게 하고, 그녀 주변에 환상 같은 장면들을 펼쳐 보여준다. 딜리버런스 데인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쉽게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발견하는 단서 하나는 그녀가 파문당했다는 것이다. 이 파문을 그녀는 마녀재판으로 연결하지만 자료가 없다. 힘겹게 찾은 그녀가 남긴 재산 목록 속에서 영수증이란 단어가 그녀의 눈길을 끈다. 영수증이 성경과 비슷한 가격이다. 의문을 품는다. 번뜩하고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간다. 혹시 레시피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조사가 이어지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밝혀지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마녀가 아니다. 작가는 그 시대 사람의 시선에서 마녀를 재현해내었다. 물론 그 해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왜 칠튼 교수가 그렇게 그녀를 닦달했는지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어렵고 복잡하게 처리하기보다 편안하게 펼쳐 보여주면서 빠르게 진행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과 과거의 사실들은 뒤로 가면서 속도감이 붙고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게 만든다. 대단한 흡입력이다. 그리고 연금술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신선하다.

단순히 마녀재판을 둘러싼 비밀을 밝혀내는 소설이었다면 어쩌면 조금 진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궤도를 따라가기보다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재미있게 구성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 동시에 허구를 사실 속에 살짝 집어넣어 현실성과 사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마법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예상한 결말이 과연 맞는지 알고 싶게 한다. 역사와 환상과 스릴러를 잘 버무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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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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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이란 지명은 서울 강남에 있는 테헤란로 때문에 낯익다. 하지만 정작 테헤란이 어느 나라의 도시인가 하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는 이란의 수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각 나라 수도에 무지한 탓도 있지만 중동이란 지역을 미국적 시선에서 주로 본 탓이다. 이 말은 중동을 간접 경험하는 일 대부분이 미국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거기에 중동 작가의 소설을 접할 일이 많지 않고, 출판된 작가들의 작품도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제3자의 시선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비록 그가 그곳 태생이었다 하여도 말이다.

1974년 겨울 테헤란의 루즈베 정신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의 읊조림에 깨어난다. 낯설고 격정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시간은 1973년 여름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루즈베 정신병원이 현재라면 1973년 여름 테헤란은 과거다. 이 두 시간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이 시간은 만난다. 이 만남은 왜 정신병원이란 공간에서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한 소년의 가장 찬란했지만 가슴 아팠던 과거를 펼쳐 보여준다. 

파샤. 그는 옆집 연상의 여인 자리를 사랑한다. 자리는 닥터로 불리는 대학생과 약혼한 상태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여자를 좋아하는 그는 닥터도 좋아한다. 이 감정의 모순 때문에 고민한다. 70년대 테헤란에서 이런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약혼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슬람의 전통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런 그에게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아메드다. 그도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다. 파히메다. 하지만 그는 용기 있다. 파히메가 약혼을 했다고 하자 그 집에 찾아가 사랑한다고 고백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 오빠들에게 흠신 두들겨 맞지만 말이다.

이 둘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하나의 축으로 진행된다면 그 시대의 공포가 또 다른 축이다. 친미 독재 정권인 팔레비 왕조가 비밀경찰 사바크를 앞세워 반정부활동을 철저하게 탄압하던 시기다. 마르크스 서적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18년을 감금되고, 반정부활동은 광장에서 사형 집행될 정도다. 이런 공포는 일상생활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그마한 사건만 생겨도 사람들은 움츠려들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진다. 만약 총살당했다면 시신을 찾기 위해 총알 값을 지급해야 할 정도라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기다.

아무리 공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순수함은 변함없다. 사랑에 목숨을 걸려는 열정이 샘솟고, 친구의 우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쉽게 떠날 수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가슴속에 조국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파샤의 아버지가 그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미국에서 선진 토목기술을 배워와 조국의 도로를 만들고 성공하길 바란다. 힘든 정치 현실이 가득한 곳이지만 가족이 사는 곳이기에 돌아오길 바라는 것이다. 

사랑과 정치 현실을 교차하고 엮어서 진행한다. 무거운 현실에서 재치와 유머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인물은 아메드다. 현실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서 힘겨워하는 인물은 파샤다. 하지만 이 두 소년이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읽는 동안 저절로 감정이입 되게 만든다. 서로의 연인과 함께 하면서 보낸 시간들은 젊은 날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닥터의 존재는 무겁고 무서운 현실을 대변한다. 독재정치를 조금이라도 깨트리고자 한 그의 노력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 발생한 파샤의 실수는 그의 약혼녀인 자리에 대한 사랑과 엮이면서 복잡해진다. 이것도 또한 그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가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미스터리처럼 연출했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청춘들의 사랑과 그 시대의 정치현실을 다루면서 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빠르게 읽히면서 그 시대의 풍경과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 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기 올라가서 자는 테헤란의 지붕은 어쩌면 그 시대 청춘들의 열기를 식혀주는 동시에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내는지 모른다. 그 지붕 위에서 밤하늘 별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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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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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시마다 소지가 79년에 처음으로 쓴 소설이지만 발표는 88년에 스물다섯 번째로 한 것이다.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쓴 작품들이 나중에 다시 출간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이렇게 늦게 된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려 스물네 권이나 발표했다니 그것도 대단하다. 뒤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보면 두 번의 개정이 있었는데 어느 판본을 기준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저작권을 보면 첫 출판인 88년인데 97년에 다시 애장판이 나오면서 다시 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 참 개정을 좋아한다.

책 뒷면에 미타라이와 이시오카의 첫 만남이란 문구가 있다. 탐정에 비해 나에게 이시오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놈의 저질 기억력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시오카와의 첫 만남이 아니라 미타라이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독자의 평이다.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엄청난 데뷔를 한 이력을 생각하면 어떤 트릭이 있기에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독자의 평을 읽다보니 잘 짜인 트릭보다 감성적이란 단어가 더 눈에 들어온다. 이래저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첫 장면은 낯선 벤치 위다. 늦은 오후 눈을 뜬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은 차다. 어딘가 세워두었을 것 같은 차다, 그런데 없다. 여기서 기억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어디에 세워뒀을까? 에서 시작하여 결국 나는 누군가로 이어진다. 가야할 곳을 모른다. 방황한다. 그러다 한 여자가 보인다. 기시감대로 여자가 맞는다. 그가 길을 걷다 쓰러진다. 이 장면은 그와 료코의 첫 만남이다. 찻집에서 다시 깨어나지만 역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그렇게 그는 공포와 기억상실과 무력감 속에 서 있다. 이때 그를 부축한 료코에게 그녀 집으로 가자고 한다. 자신도 놀란다.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간다.

이 만남으로 이 둘은 그녀를 때린 기둥서방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같이 시작한다. 열아홉의 예쁘고 귀여운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한 것이다. 그의 꿈 일부가 실현된 것이다. 료코는 물장사를 벗어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는 이력서가 필요 없는 공장에서 일한다.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 이 일상에 변화가 온 것은 전철에서 본 하나의 간판이다. 미타라이 점성술 간판이다. 몇 번을 그냥 지나가다 전날 부장과 술 마시고 다른 사람과 싸운 뒤라 그런지 왠지 끌린다. 한자의 음독을 제대로 몰라 고민을 하다 안으로 들어간다. 이름을 말한다. 역시 잘못된 발음이다. 이렇게 명탐정 미타라이와 만난다. 물론 이때는 그가 명탐정이라고도 될 것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다.

아마 미타라이 시리즈에서 팬들이 선정한 1위가 된 것도 이 만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이십대의 미타라이 모습은 새롭고 신선하다. 언제나 탁월한 추리와 판단력과 기행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인간적이고 재미있고 때로는 우스운 모습으로 말이다. 이 둘의 만남이 많아짐에 따라 그의 삶도 조금 변한다. 세상에 료코 외에 아무도 친한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친구가 생겼다. 일상의 변화는 료코를 자극한다. 그러다 발견한 한 장의 운전면허증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를 몰아간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엄청난 음모와 계략은 그를 파멸로 몰아간다.

변함없이 잘 읽힌다. 기억을 잃은 그를 따라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반에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부분에선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놀랍다. 밝혀지는 사실과 이어지는 행동은 속도감을 더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작가의 경험이 만들어낸 상황에서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으론 인간 이성이 마비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서 일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히 납득하지는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쿄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이다. 고서점 주인인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의 만남이 생각났다. 가끔 점성술사 미타라이와 고서점 주인이자 괴담 전문가 교고쿠도가 헷갈린다. 장광설이야 교고쿠도가 더 심하지만 미타라이가 트릭을 밝혀내고 진상을 설명할 때도 역시 만만치 않다. 또 이 둘과 연결된 세키구치와 이시오카도 그런 부분에 일조한다. 뭐 이런 설정은 홈즈에서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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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제국 -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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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보기 드물게 역사서적을 읽으면서 힘들어했다. 읽으면서 짜증도 많이 났고, 굳어가는 나의 사고들도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저자가 주장하는 기본 전제 조건이 너무 황당하다. 샤머니즘을 고대 종교, 문화, 정치의 중심에 놓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우리의 역사 무대를 만주나 중국이 아닌 터키로 옮겨놓은 것은 너무했다. 첫 부분에서 당혹감을 느끼고 기존 역사관의 충돌을 가졌다면 그 후로는 충분히 그의 주장에 납득되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나의 뿌리 깊은 역사관 때문만으로 돌리기엔 비약과 추리가 너무 심하다.

저자는 글머리에서 상상력에 대해 말한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의 주체를 지우는 음모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실과 추리를 올바르게 결합해야 역사의 바람직한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에 적어도 4세기 이전에 국가가 존재했던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 없다고 한다. 놀라운 이야기다. 대략 5세기경 물건이 발굴되는데 이 물건들이 지중해권 양식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가정을 세운다. 4-5세기경 어떤 종교 세력이 한반도로 밀려왔다고 해야 이치에 맞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이때만 하여도 고개를 끄덕이며 샤머니즘의 세계에 수긍했다. 하지만 <환단고기>로 넘어가 흑해와 코카서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사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다. 그리고 왜 이 가정이 정당한가에 대해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기초가 되는 도구는 조르주 뒤메질의 3기능설이다. 그는 사제계급을 제1기능, 전사계급을 제2기능, 생산자계급을 제3기능으로 나누었다. 우리 고대사에선 이것이 삼한 즉 진한, 마한, 변한으로 나타난다. 이 틀과 함께 서아시아와 그리스 로마 역사와 중국사를 같이 풀어내고 엮으면서 아주 파격적인 이론을 나열한다.

사실 목차와 소제목들만 읽으면 상당히 충격적이다. 아니 그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중국 최초의 지도에 중국 역사가 없다고 말하면서 고조선의 위치를 현재의 터키 지대로 옮기고, 그 시대 중국마저도 현재 황하 지역이 아닌 현재 중동지역으로 옮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춘추전국시대와 그리스 로마 역사를 같이 연결시킨다. 저자가 사용하는 방법은 언어와 유물과 상상력이다. 그중 역시 으뜸은 상상력이다. 전문적인 부분이 많아 모두 분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논리를 납득하기엔 너무 비약과 과장이 심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유사점들을 일치하기 위해서는 다른 두 인물의 시간마저도 일치시킨다. 물론 그 논리엔 중국 역사의 시간에 대한 부정확한 측정이 깔려 있다.

그가 주장하는 수많은 것들 중 두 인물에 대한 것에 가장 의문이 많다.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사르곤과 우리 역사의 환웅과 중국의 황제를 동일시한 것과 알렉산더 대왕과 진시황을 같은 인물로 본 것이다. 먼저 사르곤 부분에서 저자는 유사한 부분을 찾는다. 모두 서자라는 것이다. 이 책 이전에 어디에서도 환웅과 황제가 서자라는 사실을 본 적이 없다. 여기서도 저자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사르곤이 셈족의 아들로 태어난 것 말고는 출생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는데 이것을 서자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사르곤과 황제가 열두 살에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엮어 가정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진시황의 경우엔 두 사람의 연대가 다르다. 그런데 저자는 중국에서 연대를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둘이 동일인임을 주장한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말하는데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예서를 노예 글이라고 하면서 진시황의 문자 통일이 오늘날의 중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서를 서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문자로 본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근래에 발견된 진시황제의 능을 그 시대가 아닌 후한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만약 진대에 만들어졌다면 앞의 가설들이 모두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논리는 있다. 마차 양면의 문양과 병마용의 화재 흔적이다. 그렇지만 그도 이 거대한 무덤이 누가 만든 것인지 말하지는 못한다.

헤로도트스, 사마천, 김부식. 이 세 역사가를 저자는 역사를 숨긴 역사가로 말한다. 어느 정도 이들이 역사를 속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공모를 하여 이런 엄청난 작업을 했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로 축소되기는 했지만 고대사의 중심 무대가 만주였음을 인지하는 요즘에 그 무대를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로 옮기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다. 그리고 불과 3백년 만에 우리민족이 광활한 만주나 중국 서북부에서 한반도로 옮겨온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시대에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 말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대규모 이동은 엄청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저자가 주장하는 샤먼 제국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나의 역사관이 너무 굳어있다. 학창시절 <환단고기>를 읽고 흥분하던 때라면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도 이런 상상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거대함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지 모르지만 그 상상력과 비약이 하나의 가설에 틀 맞추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는 놀라지만 저자가 펼쳐 보여준 가정엔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은 것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주장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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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출판사 2010-09-0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강연이 있어 소개드리고자 방문했습니다.

진정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 진실인지, 저자의 방대한 사료 및 문헌의 연구와 분석을 통해, 여러분이 가지고있는 의구심을 해소하고 역사관을 재정립해 볼 수있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강연장에오셔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는 것 또한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에 대한 관점을 진일보 시키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청강연]와우북페스티벌 저자와의 만남 - [샤먼제국] - 박용숙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sodongbook/12
http://blog.daum.net/sodongbook/9


샤먼제국은 지중해에서 시작된 샤먼 제국의 중심세력이 점점 동쪽으로 이동해온 경로와, 그리스 민주주의 이후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 등이 각국의 이익에 따라 역사를 어떻게 왜곡 서술했는가를 추적한다. 이 책한권으로 동서양 고대사의 얼개를 잡을 수 있음은 몰론, <사기>와<삼국사기> 등 고전도섭렵할 수 있다. 우리 역사와 중국사,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 인문적 상상의 힘을 보여준다.


"한반도 반만년의 역사는 허구다!"
* 샤머니즘, 동서양 고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 책 : 샤먼제국

* 강연 : 박용숙(샤먼제국 저자)

* 강연일시 : 9월11일(토) 오후 5시 30분

* 강연장소 : 마포평생학습관(마포도서관) 4실

* 초대인원 : 25명



*** 알라딘 [문화초대석] 참가 신청

*** http://blog.aladin.co.kr/culture/category/25330380?communitytype=My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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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반만년 역사는 허구다!-샤먼제국, 동서양 고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이번 9월 10일부터 열리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샤먼제국>의 저자 박용숙선생님의 초청강연(9월11일 오후 5시30분 마포평생학습관)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꼭 한번 저자를 만나고 싶었던 분,

책 내용을 묻고 싶었던 분,

책 내용을 항의하고 싶었던 분,

사마천과 김부식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궁금한 분,

샤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분,

환단고기에 대해 할 말 많은 분

그리하여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

모두 환영합니다.



<샤먼제국>은 단군은 시리아의 왕?

진시황제와 알렉산드로스가 같은 인물?

신라의 왕관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었다?

아시아의 역사가 세계사이고 서양사는 변두리 역사?

샤머니즘은 미신이 아니라 제국의 통치 이념?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진시황이 아니라 흉노가 쌓았다?



<샤먼제국>은 광범위한 동서양의 역사적 유물을 바탕으로 사마천과 김부식의 방대한 역사서를 재분석과 검증합니다.

그리고 오류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세계사 속에서 호흡하는 우리 역사를 되살립니다.

그렇지만, 민족 중심의 사관을 지양합니다.



박용숙 선생님과의 만남은 9월 11일 오후 5시 30분, 마포평생학급관 강연실 4실에서 있으며,

참가 신청은 아래와 같이 와우북페스티벌 카페로 가셔서 신청하셔도 되고,

sodongbook@naver.com 으로 심청하셔도 됩니다.

연락처와 이름은 꼭 적어주시고요!



성공회대 교수이자 신학자인 김민웅 선생님이 경이롭다고 한 책, <샤먼제국>의 저자,

박용숙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젊은 역사관을 호흡해 보세요.~~ ^^



참고로 인터넷서점과 알라딘의 대표적인 서평 두 개를 링크해놓습니다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277890#MyReview



http://www.yes24.com/24/goods/3713072?scode=032&srank=1#ReviewTop1



와우북페스티벌과 강연에 오시면 <샤먼제국>을 축제 특별할인가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강연현장 및 축제 부스(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 부스 A-2 소동출판사에서 거리도서전 위치 : http://blog.naver.com/sodongbook/90094707344


 
케네디와 나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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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본다면 정치색이 가득하다. 하지만 전혀 정치와 상관없다. 물론 케네디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케네디가 죽을 때 차고 있었던 시계와 관계있다. 그것이 비록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케네디와 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느 날 전혀 글을 쓸 수 없게 된 한 소설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권총을 샀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화자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삶은 풍자적이고 뒤틀려 있고 우스꽝스럽다. 

열 권의 책을 내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마흔다섯 살의 사무엘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수 없었다. 책을 쓸 수 없으니 아내는 다시 언어치료사로 취직을 했고, 그 병원의 이비인후과 의사와 불륜을 저지른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관심이 없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애정이 사라졌다. 권태와 무력감이 그를 지배한다. 그러다 산 권총은 그의 기분을 순간적으로 좋게 만든다. 2년 동안 쓸 수 없었던 글을 쓰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삶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아내의 불륜상대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다.

불륜상대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그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는다. 기대와 빈정거림이 교차하고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런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한 줄기가 진행된다면 그의 아내는 또 다른 한 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부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끌어 가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사무엘이 있다. 그의 갑작스런 절필과 무관심은 아내로 하여금 일탈로 이어지게 만들고, 그 일탈은 그녀 자신의 바람이라기보다 상황이 만든 현실이다. 정부에게 실망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다시 멀리하는 상황은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처음 사무엘의 행동을 보면서 이렇게 뒤틀릴 수가 있나 생각했다. 어른으로 아버지로 참으면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빨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신의 학력을 위해 아빠의 이를 치료한 의사를 두둔하는 딸이나 직장 때문에 비호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가족이란 테두리가 없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아빠나 남편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이다. 특히 권위로 무장하고 환자를 무시하는 의사를 볼 때 공감대는 더욱 높아진다. 

이 불안하고 무관심한 부부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들의 세계가 침입 당했을 때다. 딸 사라의 남자 친구 한스가 그들에게 조언을 할 때 이 둘은 공통의 적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 공감대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무엘이 갑자기 집착을 가지게 되는 케네디의 시계는 환멸과 허무와 무관심을 세계를 깨트리는 역할을 한다. 조롱과 빈정거림과 순간적인 폭력을 보여줬던 그가 젊은 시절의 활기와 용기를 다시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무엘이 총을 산 것이나 아내가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한 것은 살아온 흔적을 지우려는 서투른 의지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부부가 느낀 삶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따뜻하고 친밀하고 상호의존적인 가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지위나 권위나 물건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사무엘이 지하로 내려가서 안정을 찾는다. 이것은 외부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느낀 무력감이나 불안이 좁고 어둡고 안락한 환경의 지하와 집착하던 물건을 가지게 됨으로써 바뀌게 된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서재 속에서 갇혀 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 대조가 앞의 대립과 익숙함을 넘어 부부 사이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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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2010-04-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