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 지음, 양현모 사진 / 누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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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모곡이다. 어머니와 아들로 맺은 42년간의 인연과 추억을 담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최근 작가의 많은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감정이다. 그런데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성모와 예수에 대한 찬양이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혹시 신앙고백서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어머니다.

작가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머니와 싸우면서 산다. 특히 어릴 때는 더욱 그렇다. 왜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지,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는지, 왜 나만 미워하는지,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악착같이 싸우는지 등으로 어머니와 다툰다. 외출할 때 늙으신 어머니가 곱게 화장하는 모습도 예뻐 보이지 않고, 예쁘게 입지 않고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 것도 싫다. 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지도 얄밉고, 다른 부모처럼 맛있는 반찬을 싸주지 않아서 점심 도시락이 부끄럽다. 이런 수많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이지만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쌓였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다.

현실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만 우리는 대부분 또 싸우고 미워하고 싸우고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 삶이기에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싸움과 미움이 어느 순간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리워지는 순간도 생긴다. 그 순간이 바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다. 이 상실감은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사람을 마구 흔들어놓는다. 이런 감정들과 추억들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우릴 가득 채우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하는 수많은 말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움, 부끄러움, 추억, 사랑, 기억, 신앙, 기도 등이 그것들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일본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장례를 치루고 다시 일본에 일 때문에 돌아간 후까지의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천주교 신자의 입장에서 하나씩 연결하면서 풀어낸 것이다. 여기엔 어머니와 성모가 묘하게 겹쳐서 다가오는 대목이 여럿 있다. 물론 성모나 성녀의 반열에 그의 어머니가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어머니가 그들 못지않은 존재다.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가 풀어낸 어머니의 위대함과 사랑은 가슴 깊이 파고든다.

사실 아직 미혼인 내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기는 무리가 있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피상적인 감정들이 더 많다. 이미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는 부분도 많지만 현실에선 그 사랑보다 나의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 나이가 한살한살 먹어감에 따라 좀더 많은 부분을 공감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작가가 아버지 산소에서 어머니에게 한 행동이나 말들은 실제 우리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를 낳고 키워주고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다툰 그 수많은 일들로 어느 순간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자 삶이다.

이 책에서 만난 작가의 어머니가 사실 새롭지는 않다. 이미 다른 책에서 본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글을 쓴 것이 요즘엔 이해된다. 어릴 때 우리와 가장 많은 시간은 보낸 분이 바로 어머니고,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은 분이 어머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 신앙고백서 같은 분위기의 글들은 비신자에겐 과장된 표현처럼 다가온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차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일부만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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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바이러스 2010-06-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황금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8
로베르트 반 홀릭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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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디 공 시리즈를 읽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의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서양인이 본 중국 고대 판공 이야기라 약간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아마 다른 문화권이라서 사물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란 범주에서 본다면 나름 재미가 있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현대 추리물처럼 치밀한 구성보다 인물과 시대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지 않은 번역도 한몫 거든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열심히 읽은 것은 나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 공 시리즈 중 읽지 않은 것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황금살인자>도 끼워있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쉽게 빠져들었다. 이번 소설은 디 공이 처음으로 수령으로 부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친구들과 작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왜 그가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벗어나 힘든 수령으로 나가는지만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장면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을 단숨에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디 공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부임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두 도적과의 관계다. 그를 털려는 도적과 무술대결을 펼치고, 도적을 잡으려는 관병들에게 자신의 부하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의 용기와 관대함과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후 두 도적은 그의 수하가 되고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디 공은 좋은 수하를 얻고, 부임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많이 다른 현실이다. 전임 수령은 귀신이 되어 나타나고, 수령의 죽음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고을의 수령이 하나의 일만 볼 수 없다. 다양한 민원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토지 경계 같은 민사사건도 있고, 신부실종사건이나 농가의 살인사건 같은 형사사건도 있다. 민사는 당사자 두 사람이 합의하면 쉽게 해결되지만 형사는 다르다. 처음 선박업자 쿠가 자신의 신부 실종 사건을 의뢰했을 때만 하여도 그냥 단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농가의 살인사건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보여주면서 단순함을 넘어 새로운 모습을 띤다. 개별 사건이 하나의 큰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큰 그림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성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무난하고 매끄럽게 연결했다.

이번 소설에서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작가가 중국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게 되는데 그래도 가슴 한 쪽에서 감상적으로 움직인다. 좀더 깊이 있게 다루거나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나왔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왜곡된 기록으로 다루어지기보다 그냥 이 상태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처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표지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전임 수령의 살해와 관계가 있다. 예전에 읽은 시리즈의 앞 권에 대해 기억은 거의 없지만 잘 만든 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귀신을 등장시키고, 장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를 공들여 배치한 것이 뒤로 가면서 그 힘을 발휘한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전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디 공의 모습은 현실적이면서 아주 탁월하다. 또 유서우쳰의 <수령지침서>에 나온 말씀은 현대 명탐정들이 여러 차례 말한 것이지만 명심하고 또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독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용어의 선택이나 번역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다. 원작과 비교하지 못해 어떨지 모르지만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는 개인적으로 이제껏 읽은 디 공 시리즈 중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 추리작가들의 시대물이나 추리소설에 비해 조금 낯선 전개와 분위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빠지면 색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물론 이것은 그 매력을 깨달을 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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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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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작 <회색영혼>을 사실 아주 재미없고 힘들게 읽었다. 작품 문제가 아니라 읽는 나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대충 읽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책읽기였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읽기 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른 자세로 책을 들었고, 지난번보다 더 세심하게 음미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왜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게 되었다. 깊은 관찰과 사색을 통해 만들어낸 문장과 그 결과물이 읽는 내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9쪽)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으로 작가는 두 가지 효과를 누린다. 하나는 화자가 누군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 일에 어느 정도 그가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런 멋진 문장으로 문을 열고, 브로덱이 기록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시간 순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기록의 대상도 바뀐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아마도 이런 구성과 깊이 있고 사색적인 문장이 이전에 재미를 못 누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 일’이다. 뭐 길래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의문이 계속 생긴다. ‘그 일’이 안더러 즉 타인과 관련된 일임을 금방 말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가 무관하다고 외쳤는지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 속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참혹한 것은 아마 인간이 아닌 똥개 브로덱으로 살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개처럼 행동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 순간 말이다. 왜 그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일’을 연관시키는 것일까? 의문이 살짝 생긴다.

똥개 브로덱으로 수용소에서 살면서 생존한 그를 보고 놀란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를 죽은 자로 기록한 그들이기에 놀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뒤에 드러나는 사실을 읽으면 꼭 그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도 또한 안더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두 안더러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다. 똥개처럼 행동하면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브로덱과 이름조차 말하지 않은 안더러의 삶은 그들을 보고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브로덱이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삶과 행동을 덮어주는 목적으로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브로덱의 양심은 사실과 거짓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려고 한다. 똥개 브로덱이 인간으로 위치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안더러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그림으로 보여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하고 더러운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때문에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브로덱의 보고서와 관계있다. 브로덱이 보고서를 두 개 작성한 것이다. 하나는 보고용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찾는 기록이다. 

전쟁은 사람을 엄청나게 변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거침없이 변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브로덱이 사는 마을이라면 수용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이다. 그런 고결한 인격이 삶의 현장에선 쉽게 뒤집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모자일 경우는 침묵으로 그 사실을 덮어두려한다. 이것을 파헤치려고 하니 그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브로덱의 보고서와 안더러의 그림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 참혹한 현실의 일부를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파괴와 약탈로 연결시킨 것은 인간의 어두운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약탈과 파괴와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을 견디지 못해 떠난 브로덱이 수용소에서 삶을 위해 똥개가 된 것도 어쩌면 가해자로 변신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것은 또 안더러의 ‘그 일’을 자신이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도 이어진다. 이렇게 그는 최소한의 자신을 지킨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변절자와 가해자들에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행동이다. 시장 오어슈비어가 그 보고서를 읽고 두 눈이 먼 여자 아이의 예를 든 것도 바로 하나의 경고인 것이다. 파헤치지 말고 그냥 덮어두라고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쓰다 보니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 에멜리아, 딸 푸셰트, 그를 거둔 페도린 등과의 관계도 그렇다. ‘정화의 밤’과 인간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 외 이야기들도 많지만 모두 쓸 수 없다. 다만 첫 문장의 ‘그 일’만 간단히 적는다. 다시 읽으면 더 많은 것이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그 가치를 몰랐던 <회색영혼>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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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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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난해하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단어와 문장의 미로 속을 헤매게 만든다. 하나의 장면을 세밀하게 보여주지만 그 장면은 곧 다른 장면과 이어지기보다 뒤섞이고 혼란을 불러온다. 한 호흡에 긴 문장을 단숨에 빠져 읽게 만들지만 금방 단어와 문장이 만든 미로 속에 빠진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고, 어찌 보면 뭔가 심오한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내공은 심오한 것을 알아챌 정도로 깊지 않다.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으면서 좀 힘들어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 오만은 금방 사그라졌다. 예전에 읽은 하일지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예상했다. 이 예상은 처음엔 어느 정도 맞는 듯했다. 하지만 삼분의 일도 지나기 전에 산산조각 났다. 단어와 문장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려는 나와 이를 거부하는 작가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은 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문장과 하나의 장면을 세밀하게 그려낸 문장들 때문이다. 이 세밀한 묘사와 단어의 해체가 책읽기를 힘들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집중하여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있다. 장면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이야기가 된다. 이때만 해도 그랬다. 둘째 장에서도 역시 장면은 이어진다. 그런데 앞장과 다르다. 이미지가 떠올랐다가 이어지지 않고 다른 이미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난감하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지 못하다 보니 이미지에 금방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메울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단어의 반복이 이어지고, 그 반복 속에서 조그마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무심코 읽다보면 이 변형을 놓친다. 단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해체되고, 그 해체된 단어들은 문장으로 다시 모인다. 그냥 활자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깊이 있는 문장에선 작가가 의도했다는 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잠시 동안일 뿐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리에 대한 단어가 깨어지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들리는 것과 쓴 것의 차이가 작가의 글을 통해 다른 모습을 지닌다. 단어와 쉼표가 이어진다. 끊어서 읽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하나의 문장으로 읽어야 할까? 그냥 읽는다.

힘들게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문이다. 다시 책을 뒤적이며 기억 한 자락을 불러보려고 한다. 몇 개의 장면이 이미지로 만들어지지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윤곽은 있으나 정확한 형체가 없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지 못한 탓인지 그 형체는 더욱 흐릿하다. 자음의 반복, 단어의 반복은 가독성을 높이지만 그 속에 함정을 만들고 독자를 빠트린다. 다시 마지막 문장을 읽고, 침묵의 반대편에서 소용돌이칠 것을 생각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같이 맴돌아 문제지만 말이다. 최근 가장 힘들게 읽은 소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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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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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종기는 나에게 낯설다. 학창시절 자주 만난 몇몇 시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인들이 낯설기에 이상한 것은 아니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그의 시집을 몇 번 마주했을지 모르지만 한 번도 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그의 시가 나쁘거나 지명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시에 대한 나의 앎이 부족하고, 한참 시집에 관심을 두었을 당시 미국에 거주했기에 대중적인 지면을 통해 만날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작 에세이란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를 짓는 것과 에세이가 연결된 단어인데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을 펴고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과 관계있다. 바로 자신의 시 50편을 먼저 보여주고, 그 시와 관련된 사연이나 의도를 에세이처럼 쓴 것이다. 이 구성을 처음 마주할 때 시보다 에세이에 먼저 눈길이 갔다. 쉽게 이해하지도 가슴으로 파고들지도 못한 시들이 그의 해설로 분명해진 것이다. 거기에 시와 관련된 수많은 사연들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여섯 꼭지로 나누고, 시간의 흐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시를 읽다보면 그의 삶의 굴곡을 만나게 된다. 잘 다듬어진 시어 속에 숨겨진 삶은 결코 밝지만도 않고, 어둠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어느 곳에선 희망과 즐거움이 넘쳐난다. 현실을 담아낸 것도 보이고, 사연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시를 읽고, 그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시를 읽으면서 시에 젖어든다. 이렇게 젖은 마음은 날선 이성으로 가를 수 없다. 그런데 자꾸만 이성으로 시를 풀려고 하니 시의 재미와 즐거움이 묻혀버린다. 아쉽고 불쌍하고 아둔하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은 가슴 깊은 곳이 아려오거나 벅찬 감성이 밀려왔다. 특히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들에 대한 사연은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의 삶과 깊은 관찰과 애정이 만들어낸 시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캄보디아 여행에서 만난 무뚝뚝한 남자의 행동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앞에서 시인이 노래한 사랑이 남과 어울리지 못했던 남자의 행동 속에 그대로 옮겨지고 있었다. 비록 그 모양이나 방법이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시를 읽을 때면 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소화할 것인지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이 이번엔 거의 없다. 시인이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감상과 시인의 설명이 다른 경우가 빈번하다. 나의 내공이 얕고,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처음보다 뒤로 가면서 좀더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그의 다양한 실험과 시어들이 주변 친구들도 쉽고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변한 탓이다. 시에 대해 잘 몰라 어떤 것이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미 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쉽게 읽히고 드러나는 의미들이 그 자유를 품어내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50편의 시도 좋지만 시집 한 권을 읽고 싶어진다. 주례사 평 같은 많은 시인들의 극찬은 이런 마음을 더욱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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