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전쟁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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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진명의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역시 기대한대로였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소설이 <살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나도 형편없는 문장과 내용이라 10년 이상 그의 신작에는 손도 뻗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그의 소설은 나왔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단순히 완성도만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재미와 취향이란 문제가 있기에 그냥 자나갔다.

이번 책은 국뽕의 작가가 풍수를 어떻게 이야기 속에 녹여 내었을지 궁금해 한 번 읽었다.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의 풍수 이야기였다.


회신령집만축고선, 나이파 이한필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두 가지다.

목차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들이다.

먼저 작가는 현재 대통령을 아주 소탈하고 서민적인 인물로 포장한다.

그의 바뀌지 않은 휴대폰으로 ‘나이파 이한필베. 저주의 예언이 이루어지도다’란 문자가 온다.

‘나이파 이한필베’란 단어의 의미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도 몰라 대통령실 직원에게 이 일이 떨어진다.

담당자는 30대 여성 고시 합격자 은하수다.

그녀는 여러 분야 전문가에 묻다가 학창 시절 다른 공부에 더 열심이었던 형연에게 연락한다.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전국의 풍수사나 무당 등에게 문의한다.


주문처럼 들린 이 단어의 비밀은 우연한 사건으로 해결된다.

작은 해프닝처럼 지나가는 듯한데 오하산인이 일본에서 다이이치 편액 사본을 가져온다.

여기에 적힌 글이 회신령집만축고선이란 단어다.

이 한자를 어디서 끊어 읽을 것인가에 따라 해석과 의미가 달라진다.

오하산인을 만나기 전 구룡혈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제 하는 곳은 아닌 듯하다.

검색하면 이 책에서 인용한 부분만 나오고 다른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신기한 현상이 있었다면 아마 인터넷에 신기한 일로 다루어져 많은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주술의 주문 같은 두 단어에 담긴 의미는 인구절벽과 역사 문제다.

풍수 전쟁이라고 해놓고 이야기는 역사 해석의 한 부분으로 넘어간다.

물론 풍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양념처럼 다루어진다.

인구절벽 문제에 대해서도 양비론적 입장으로 전정권 씨들을 욕한다.

이전 정권들이 출생률을 놓이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역사 문제도 하나의 문제가 민족의 정기를 해쳤다는 식이다.

이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회조차 극단적인 장면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게 된 납치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표현도 대단하다.

교육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데 왜 교육 카르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소설은 곳곳에 작가의 상상력과 바람이 가득하다.

문장은 이전보다 훨씬 매끄러워졌지만 캐릭터 등은 전혀 입체적이지 못하다.’

감성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오고, 엘리트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시선이다.

고시에 합격했다고 통달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 고루한 시각에 놀란다.

마지막 마무리 장면은 통쾌함보다 절제로 나아간다. 조금 놀랐다.

정치가 얼마나 많은 이권과 이해관계가 엮이고 꼬여 있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지극히 낙관적이고 우호적인 시선은 역시 그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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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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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장르가 추리, 스릴러이고, 이전 작품에 대한 평이 좋아 선택했다.

생각보다 가독성 좋아 잘 읽히지만 흡입력은 취향을 타는 것 같다.

15년 전 과거 사건에서 비롯한 하나의 살인 사건, 두 명의 화자.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현재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거.

현재의 살인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줄 단서는 뒤로 숨겨둔 채 풀어내는 과거.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행동과 우정과 유치하지만 우발적인 모험.

잘 버무려내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과 캐릭터의 힘이 조금 부족하다.

서울에서 파견된 형사들이지만 연우와 상혁의 활약은 조금 밋밋하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두 인물은 연우와 차도진이다.

연우는 수사 도중 칼을 맞고 큰 부상을 당했고, 파트너 상혁은 다른 부서도 떠났었다.

새해 첫날 총경에게 선양으로 가서 수사하라는 전화가 온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상혁. 아직 둘의 관계는 차갑고 거리감이 있다.

피살자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에덴 종합병원 원장 차요한.

그냥 두어도 연명 치료 중단으로 죽을 사람인데 바로 전날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선양 경찰서 경찰들과 함께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최초 발견자를 만난다.

첫 발견과 신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비어 있다.

병원 외부를 둘러보다 피 묻은 병원 30주년 기념 볼펜을 발견한다.

차도진은 연초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그에게 사무장이 아들을 통해 먹을 음식을 보낸다.

그 아이가 도진에게 자신이 받은 물건을 전달한다.

15년 전 사건을 이야기하고, 선양에 가서 한 사람을 반드시 무죄로 만들라는 요구사항이다.

현재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그는 선양으로 떠난다.

15년 전 선양을 떠나게 만든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때부터 15년 전 그와 친구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흘러나온다.

다섯 명의 순수한 남녀 고등학생들. 그들의 아지트.

고등학생들의 재미난 에피소드와 도시 괴담에 대한 작은 모험.

흉기에 지문이 발견되고, 그 용의자에 대한 심문을 하려는 순간 나타난 도진.

그런데 피살자가 자신의 아버지 차요한 병원장이란 사실에 놀란다.

잠시 심문이 중단되고, 연우는 선양 경찰서 팀장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경찰서장이 내정되어 있는데 그가 예정보다 빨리 온다.

이전에 그는 선양 경찰서에서 일한 적이 있는 경찰이다.

무언가 수상하다. 과거 이야기 속에서 그가 어떤 경찰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들, 멈출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작가는 피살자들만 보여주지 살인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왜일까?

모든 단서는 과거에 있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15년 전 사건을 아는 사람이다.

도진과 친했던 네 명의 친구 중 살아 있는 인물은 단 두 명이다.

한 명은 에덴 종합병원 병실에 입원해 있어 누군가를 연속적으로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이 범인일까? 이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새로운 가능성 둘.

하나는 도진이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이 죽이고 다니면서 몰랐다는 방식.

다른 하나는 작가가 교묘하게 숨겨둔 용의자에 대한 가능성.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나의 아쉬움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비롯했고, 연우와 상혁 콤비의 활약은 조금 약했다.

그리고 결코 빠트릴 수 없는 15년 전 사건의 이유는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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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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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소설집이 펀딩 성공으로 나왔었다.

이 소식을 듣고 관심을 두었고, 읽을까 말까 잠시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이번에는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호러와 기담을 다룬다고 하기에 더 관심이 갔다.

독자에게 악몽을 선사한다는 광고는 흔하지만 솔깃한 문구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한 것만큼 무섭지도 그렇게 기이하지도 않았다.

너무 자극적인 글들을 많이 보다 보니 내성이 생기기도 했지만 작가가 표현을 절제한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흡입력을 보여주었고, 어떤 대목은 서늘하고 섬뜩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단편들이다.

가장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표제작 <신체 조각 미술관>과 <내리사랑>이다.

<신체 조각 미술관>은 제목대로 사람의 신체로 조각을 만들어 전시하는 미술관 이야기다.

사체로 만든 작품에 대한 소개와 제작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실제 이런 공간에서 이런 작품을 본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쉽게 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마무리에 특별히 반전이 있지 않아 조금 힘이 빠지기는 했다.

<내리사랑>은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수상한 여배우의 이상한 멘트.

그녀가 살아온 삶의 여정, 엄마의 아주 특별한 강력하고 질식할 것 같은 집착.

엄마의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과 광기는 그녀의 삶을 옥죈다.

감히 떨쳐내지 못하면서 생긴 삶의 어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블루홀>은 프리다이빙 중 죽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아내가 다이빙 중 잃은 반지를 찾다가 사라진다.

회상과 현재, 그리움과 기이한 현상. 낯익은 장면이다.

<바닷가>의 이야기도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를 여행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마음껏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 역시 예상 가능한 마지막.

<푸른 인어>는 낯선 이야기에 섬뜩함을 더했다.

가지 말아야 할 바다에서 만난 푸른 인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탐욕.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고 섬뜩하다.


<어떤 부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사랑하는 남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평범한 부부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듯한 과정에 아내의 불안과 집착이 더해진다.

우리가 그냥 편하게 보는 그 장면 뒤에 어떤 고통과 힘겨움이 있는지 아내의 말로 표현된다.

산후우울증이란 진단, 그가 바라는 가정의 모습, 잔혹한 선택.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 이후에 나온다. 드라마로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한밤중의 어트랙션>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문이다.

공포 놀이 시설 지옥탐험보트와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더러운 행동들과 징벌.

마지막 장면에서 같은 이름과 상황이 나오면서 혼란스럽다.

<꿈에 관한 이야기들>은 작가의 악몽과 가위눌림에 대한 경험담처럼 읽힌다.

읽다 보면 우리가 한번쯤 경험했던 일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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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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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568권이다.


보통의 시집보다 두툼하다.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 가장 분량이 많다.


시 편수만 놓고 보면 62편으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이보다 더 두툼한 시집도 있지만 선집이 아닌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단지 두툼하기만 하다면 별로 힘들지 않겠지만 쉽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다.


아니 난해하다. 문장이 기호처럼 다가온다.




시집의 제목도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겨를은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미들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인 듯하다.


어떤 삶의 중간 지점에서 이런 시어들이 나왔을까?


시어들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 읽었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내가 성급하게 놓친 부분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읽어왔던 시집과 다른 형식의 시어들.


어떤 시는 점자로 표시된 듯한데 한글로 된 시도 어렵다.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 부분)


“왔다가 가더라도 갔다가 오더라도 못 오더라도/


 상실 언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언니가 갖고 있어”(<상실 언니에게> 부분)


이처럼 말꼬리를 무는 듯한 시어들은 천천히 음미해야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동(東)을 “해日가 나무木에 걸렸다고/ 상형象形을 얘기하고 있었어요” 말할 때 한자를 다시 본다.


영화나 다른 책에서 본 문장을 시 속에 인용해 시를 완성하기도 한다.


비틀즈의 노래 <A day in the life>를 제목으로 한 시에서


“없어진 것이라 보였던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라고 한다.


음악과 시의 공감이자 우리의 인식 문제를 풀어낸 시어다.




시집을 읽을 때보다 이 글을 쓰면서 단편적으로 읽는 것이 순간적으로 더 와 닿는다.


최근 현대시의 난해함에 무력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돋움으로 괴면서 끌어 올리고 있다.” (<뼈가 있으니 살이 있으니>의 부분)처럼 천천히 시의 이해를 끌어올려야 할 모양이다.


이런 시집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지금 보지 못한 이미지나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또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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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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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선입견이 심어졌다.

악의 유전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로 말이다.

제목을 제대로 읽었다면, 아니 책 소개를 제대로 봤다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19세기에 유행했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론이다.

획득 형질의 유전이란 학설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은 그 시대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이론 중 하나다.

이런 이론들을 사람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어떨까?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각각 500명의 유아 등을 가공할 실험 속으로 몰아간다.

이런 실험은 그 시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세월은 아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잔혹한 강도의 일생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폭동, 테러, 암살 등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실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은 소설 속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경찰에 잡히면서 멈추고 멀고 추운 투루한스크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 유배를 떠나기 전날 고향의 어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과학의 이름으로 진행된 잔혹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실험지는 유배지인 투루한스크이고, 그 과학자는 당시 천재로 불렸던 리센코였다.

실험의 목적은 가장 추운 지역에서 한랭 내성을 가진 아이들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황제에게 요청한 기간은 무려 20년이고, 막대한 자원이 들어간다.


리센코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이론이 획득 형질의 유전과 우생학이다.

유아와 어린 소아들을 차가운 얼음 구덩이 넣고 한랭 내성을 가지게 강요한다.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오래 버틴 남녀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수준이 아니다.

이 실험 도중 한 아기가 물 속에 빠졌다가 긴 시간이 지난 후 살아난다.

리센코는 이 아기를 기적의 케케라고 부른다.

이 케케가 바로 유배를 떠나는 아들에게 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할머니다.

리센코에게 이 케케는 자기 실험의 상징이자 성공의 확신이다.

케케가 실험지 밖으로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이것을 다른 과작자는 탈출로 생각한다.

탈출은 이 실험지에서 최고의 형벌 대상이다.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리센코는 오히려 부하에게 더 화를 낸다.


리센코는 처음에는 이 실험 도중 아이들이 죽었을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도 같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갔지만 빨리 나왔다.

아이들이 이 잔혹한 실험 속에 죽어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청소년이 된다.

가장 뛰어난 남녀 한 쌍을 부부로 맺어주고, 이 부부의 아이가 한랭 내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한다.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를 차가운 얼음물 속에 넣는다.

당연히 이 실험은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다음 아이도 마찬가지다.

얼음물 참기 챔피언 부부의 아이들이라고 차가운 온도와 감기 등을 견딜 수는 없다.

케케가 실험지 밖으로 나간 것도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꽃을 찾기 위해서다.

이 일탈에서 처음 베소를 만나는데 그의 강렬한 향기에 매혹된다.


20년의 기한. 막대한 자원이 투자된 실험. 계속해서 실패하는 실험의 결과물.

조급해지는 마음, 조금씩 사라지는 이성, 그 사이에 있었던 통계 조작.

자신이 절대적으로 성공을 확신했던 유전학 실험은 점점 실패로 기운다.

이 과정에 그는 난폭하고 잔인하고 인내력은 바닥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이라면 차마 저지를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동물보다 못하게 다룬다.

황제에게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고, 성공의 결과물에 대한 집착은 더 커진다.

이때 그는 미친 과학자의 광기를 폭발시키고, 악의 화신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예정된 파멸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나온다.

케케 아들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내용이 무겁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지만 점점 마음은 무거워진다.

실제 사건이라면 엄청난 생체 실험이고, 나치와 일제의 2차 대전 당시 실험과 맞먹는다.

과학에 대한 맹신, 현실에 대한 직시 부족, 왜곡된 마음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 뒤틀리고 무너지는 리센코의 모습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암시로 남겨 둔 몇몇 장면들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케케의 아들이 스탈린이란 것과 그의 유전자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주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유전학과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논란의 여지를 남겨 둔 설정은 분명하다.

그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 리센코보다 더 인류에 해학을 끼친 것은 스탈린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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