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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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선입견이 심어졌다.

악의 유전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로 말이다.

제목을 제대로 읽었다면, 아니 책 소개를 제대로 봤다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19세기에 유행했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론이다.

획득 형질의 유전이란 학설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은 그 시대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이론 중 하나다.

이런 이론들을 사람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어떨까?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각각 500명의 유아 등을 가공할 실험 속으로 몰아간다.

이런 실험은 그 시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긴 세월은 아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잔혹한 강도의 일생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는 혁명의 이름으로 폭동, 테러, 암살 등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실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은 소설 속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경찰에 잡히면서 멈추고 멀고 추운 투루한스크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 유배를 떠나기 전날 고향의 어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과학의 이름으로 진행된 잔혹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실험지는 유배지인 투루한스크이고, 그 과학자는 당시 천재로 불렸던 리센코였다.

실험의 목적은 가장 추운 지역에서 한랭 내성을 가진 아이들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황제에게 요청한 기간은 무려 20년이고, 막대한 자원이 들어간다.


리센코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이론이 획득 형질의 유전과 우생학이다.

유아와 어린 소아들을 차가운 얼음 구덩이 넣고 한랭 내성을 가지게 강요한다.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오래 버틴 남녀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수준이 아니다.

이 실험 도중 한 아기가 물 속에 빠졌다가 긴 시간이 지난 후 살아난다.

리센코는 이 아기를 기적의 케케라고 부른다.

이 케케가 바로 유배를 떠나는 아들에게 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할머니다.

리센코에게 이 케케는 자기 실험의 상징이자 성공의 확신이다.

케케가 실험지 밖으로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이것을 다른 과작자는 탈출로 생각한다.

탈출은 이 실험지에서 최고의 형벌 대상이다.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리센코는 오히려 부하에게 더 화를 낸다.


리센코는 처음에는 이 실험 도중 아이들이 죽었을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도 같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갔지만 빨리 나왔다.

아이들이 이 잔혹한 실험 속에 죽어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청소년이 된다.

가장 뛰어난 남녀 한 쌍을 부부로 맺어주고, 이 부부의 아이가 한랭 내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한다.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를 차가운 얼음물 속에 넣는다.

당연히 이 실험은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다음 아이도 마찬가지다.

얼음물 참기 챔피언 부부의 아이들이라고 차가운 온도와 감기 등을 견딜 수는 없다.

케케가 실험지 밖으로 나간 것도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꽃을 찾기 위해서다.

이 일탈에서 처음 베소를 만나는데 그의 강렬한 향기에 매혹된다.


20년의 기한. 막대한 자원이 투자된 실험. 계속해서 실패하는 실험의 결과물.

조급해지는 마음, 조금씩 사라지는 이성, 그 사이에 있었던 통계 조작.

자신이 절대적으로 성공을 확신했던 유전학 실험은 점점 실패로 기운다.

이 과정에 그는 난폭하고 잔인하고 인내력은 바닥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이라면 차마 저지를 수 없는 행동들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동물보다 못하게 다룬다.

황제에게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고, 성공의 결과물에 대한 집착은 더 커진다.

이때 그는 미친 과학자의 광기를 폭발시키고, 악의 화신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예정된 파멸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나온다.

케케 아들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내용이 무겁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지만 점점 마음은 무거워진다.

실제 사건이라면 엄청난 생체 실험이고, 나치와 일제의 2차 대전 당시 실험과 맞먹는다.

과학에 대한 맹신, 현실에 대한 직시 부족, 왜곡된 마음 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 뒤틀리고 무너지는 리센코의 모습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암시로 남겨 둔 몇몇 장면들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케케의 아들이 스탈린이란 것과 그의 유전자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주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유전학과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논란의 여지를 남겨 둔 설정은 분명하다.

그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 리센코보다 더 인류에 해학을 끼친 것은 스탈린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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