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미래 - 오래된 집을 순례하다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보면 현대 건축물을 둘러보는 내용 같다.

하지만 부제를 보면 ‘오래된 집을 순례하다’가 붙어 있다.

실제 목차를 보면 한국의 옛집, 사찰 등을 둘러본 이야기다.

목차 속 집들 중 많은 수가 가보지 못한 곳이다.

최근에 여행을 갔지만 그냥 둘러보고 온 곳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건축가 부부가 본 것의 십 분의 일도 못 봤다.

보지 못했다고 그곳의 건물이나 풍경이 전혀 가슴 속에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공부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크게 한국의 옛집과 사찰로 나누었다.

옛집에는 고택과 서원과 궁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택들은 대부분 나에게 낯설다. 아는 곳도 가보지 못했다.

여유가 되면 산천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김명관 고택의 더 넓은 집을 발로 돌아다니고 싶다.

서원은 몇 곳을 갔지만 오래되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안동에 다시 가서 다시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남간정사를 읽으면서 집의 구조가 특이하다고 느꼈다.

물길 위에 집을 지었다는 사실과 이 거대한 저택은 지은 사대부의 부는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다.

소쇄원은 갈 기회가 있었지만 일정 때문에 놓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오래 전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 종묘도 다시 보고 기억을 환기하고 싶다.


사찰의 재미난 점은 현재 존재하는 사찰만이 아니라 옛절의 유적도 다룬 부분이다.

가장 먼저 나온 화엄사의 경우 몇 년 전 올라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쉬었던 보제루가 생각난다.

통도사는 늘 가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절이다.

석가모니도 미륵불도 없다고 하니 더 가보고 싶다.

해인사는 아주 오래 전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기억이 있다.

이 기억도 너무 오래되어 다른 절들과 뒤섞인다.

다만 그때 잠깐 들여다본 팔만대장경의 모습은 여전히 강렬하다.

부석사 노을에 대한 글을 읽고 한 번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쉽지 않다.

무량수전 배홀림기둥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절이 내소사다.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걸어가는 시원한 길이 인상적이었다.

선운사나 실상사, 무위사 등은 솔직히 아직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 절들에서 저자들이 본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절의 옛터를 다룬 마지막 장으로 가면 저자의 빈터에 대한 상상력을 본다.

너무나도 유명한 황룡사지, 귀에 익은 미륵사지, 기원정사 등.

이 장에 도달하면 절의 빈터를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 풀어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저자의 감상과 상상력은 극대화되어 나온다.

나의 메마른 감성이 여기에 이르면 어떤 상상력으로 이어질지 살짝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렇게나 뽀송해 문학과지성 시인선 570
이지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570권이다.

쪽수만 놓고 보면 거의 300쪽에 육박한다.

서점의 시집 코너를 보니 두툼한 시집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이 시집보다 두꺼운 시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순히 두껍기만 했다면 시간으로 해결했을 텐데 어렵다.

시인이 풀어내는 시어들이 나의 머릿속에 조각난 채 사라져버린다.

현대시를 좀더 잘 읽기 위해 노력한 것이 너무 무력하게 무너졌다.

요즘은 거의 읽지 않은 해설도 정독했지만 역시 어렵다.


극시의 형식을 가져온 시들이 많다.

그런데 이 시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생물도 있고, 무생물도 있는데 제각각 목소리를 낸다.

살로살로대뱀, 사사감독 같은 존재들은 반복해서 나온다.

이 단어와 그 존재가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단순한 반복이나 의미없는 존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를 이끄는 존재들로 말하는데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시는 읽다 보면 SF나 판타지가 떠오른다.

기계화된 인간, 새로운 존재와 생명체, 먼 미래의 풍경 등.

기존의 시의 이미지가 조각나고 분절된 채 다가온 시도 많다.

한 편의 시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량도 제각각이고, 시어도 기존의 방식을 깨트리고 있다.

시를 읽으면서 뭐지? 를 반복하고, 핵심되는 단어를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더 읽을수록 미로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시의 내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언젠가 이렇게 어려운 시도 나에게 문을 열어 줄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탐인 - 조선스파이
정명섭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남자의 복수극이다.

조선 초기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체탐인은 스파이를 의미한다.

솔직히 말해 조선 시대 스파이 소설을 기대했다.

하지만 스파이 활동은 첫 대목만 나오고, 다른 부분은 신분 세탁과 복수를 다룬다.

조유경의 집안이 몰락한 것은 그가 입을 잘못 놀린 몇 가지 실수 때문이다.

체탐인으로 된 것은 그를 죽여 후한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섞여 있다.

서생으로 살던 그가 체탐인이 되어 압록강 건너 여진족을 찾아간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운 좋게, 다른 체탐인의 도움을 살아남고, 거대한 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상상초월하는 재화를 얻게 된 그는 신분을 위조한다.

자신과 그 가족을 고발한 친구(?)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

엄청난 부는 그가 하려고 하는 복수에 아주 좋은 재료다.

아낌없이 재화를 풀어서 원수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몇몇은 조정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고, 왕세자와 사돈이 되었다.

여기에 조선 초기 태종의 친인척 등을 제거한 역사적 사실이 끼어든다.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외척으로 권력을 쥐는 것을 미리 막은 것이다.

왕의 의중이 그렇다고 바로 진행되는 일이 아니다.

밑에서 상황을 만들어 올려줘야 왕이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작업을 조유경이 복수와 함께 진행한다.


십수 년이 지난 후 그의 곱상한 외모는 얼굴의 상처와 함께 변한다.

이 바뀐 얼굴을 보고 그의 친구들과 종복은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한때 정혼자였던 석란은 바로 그의 정체를 알아챈다.

이 장면을 보고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유경과 함께 한 시간을 따지면 이전 친구와 종복이 훨씬 많을 텐데 말이다.

그와 함께 움직이는 여진족 울매는 든든한 보디가드다.

그가 조유경을 잡았고, 형제처럼 자랐고, 나중에는 큰 도움을 받았다.

연관성이 이어지는 대목이 있지만 너무 빠르게 너무 급하게 진행된다.


조선판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 소개글도 있다.

이 부분은 동의한다. 너무나도 닮은 점이 많다.

닮은 점이 많고, 기대한 스파이 활약은 없어 많이 아쉽다.

태종의 무자비한 행동과 복수극을 엮으려고 한 듯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상한 결말로 나아가면서 힘을 잃는다.

역사적 사실을 이용한 부분은 좋았지만 기대한 체탐인은 없었다.

필력이 좋아 잘 읽히지만 늘 그렇듯이 장편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김숨의 장편 소설 한 권을 읽었다.

1947년 9월 16일 하루의 부산 풍경을 다룬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 소설에서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특정해서 읽기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조선소를 무대로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여준다.

조선소 전체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거대한 하나의 철상자가 그 공간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군들을 작가는 들여다보고 그냥 말한다.

그들의 깊은 심리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말과 행동으로 그들의 삶을 드러낸다.

특정한 사람을 내세우지 않지만 몇몇 이름과 직업이 나온다.

화자가 있지만 그의 이야기보다 철상자의 노동자들이 실제 주인공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조선소를 무대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바로 <철>이란 소설인데 집에 모셔 두고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한 책이다.

하지만 <철>의 시대와 이 소설의 시대는 다르다.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노동자의 삶은 그렇게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삶은 하루살이와 같다.

반장에게 밉보이면 다음 날 일거리를 받을 수 없다.

여자 노동자는 반장의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노동자라고 별다를 것 없다.

4호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법상 권리를 주장했다가 일을 잃었다.

그의 고용인은 폐업한 후 다른 이름으로 다시 하청업체가 되었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 구조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해야하지만 힘들거나 더러운 일을 하청으로 넘긴다.

이 하청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그 밑바닥 일은 가장 힘없는 노동자가 감당한다.

반장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다. 그들도 위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안전사고를 주의해야 하지만 환경은, 압박은 그것을 힘들게 한다.

용접공 최씨에게 내일 검사라고 하면서 반나절 일거리를 늦은 오후에 말한다.

잔업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일어나고, 최씨의 일상은 그 속에 짓눌린다.

이런 일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원청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생각나는대로, 그들의 일정대로 말한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거대한 철판이 떨어져 노동자가 죽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

구급차가 와서 싣고 가야 하지만 반장의 차로 병원에 이송된다.

왜냐고? 무사고 산업현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사고 며칠이란 숫자를 보면 믿기 힘들다.

그리고 나 자신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반성하게 된다.

조선업의 활황이 모두의 부를 올려줄 것이란 착각 때문이다.

정규직일 것이란 착각도 같이 말이다.

오래 전 활황기에 조선소 하청업체로 간 선배가 생각난다.


소설은 빽빽하게 글자를 채우기보다 적절하게 비웠다.

어떤 대목은 한 편의 시를 읽은 것 같다.

어떤 대목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대목은 연극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 같다.

그들의 이름, 소리, 감정, 힘겨운 일상 등이 빈 곳을 채운 체 강하게 울린다.

무수히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말과 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린다.

마지막 장면에 탈의실조차 없어 길에서 옷을 갈아 입는 남녀 노동자들이 나온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지만 이 일마저 잃게 되면 삶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언젠가 <철>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인은 지금
김이환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시간과 기회가 되어 드디어 읽었다.

최근 김이환의 소설은 주로 단편 위주였는데 장편은 또 다른 느낌이다.

물론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같은 최근 장편도 있지만 이전에 읽었던 분위기와 다르다.

정말 오랜만에 이전 소설을 읽으니 다른 느낌과 재미를 준다.

괜히 이전 책들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단편들이 지닌 아쉬움을 단숨에 날릴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초인이 등장한다.

화자이자 주인공 정훈은 동대입구 지하철역 화재 사건 당시 초인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과 아비규환 같은 장면이 잘 드러난다.

살기 위해 사람들을 헤치고 밀치고 나가다 넘어졌고, 유독가스를 마셔 몸에 이상이 있었다.

이 사고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고, 초인 덕질을 시작한다.

초인 카페에 가입하고, 초인 뉴스가 나오면 스크랩한다.

이 소설은 정훈이 초인이 사람들을 구한 과정과 그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이다.

초인 카페 가입해 그가 보여준 놀라운 통찰력은 덕질의 결과다.


초인이 사고 현장에 나타날 때 소닉 붐 소리가 난다.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와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초인이 왔다 갔다는 증거다.

정훈은 지하철 화재 당시 초인의 얼굴을 봤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책을 쓰려는 목적도 없는데 초인에게 구함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그리고 초인의 활동 범위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사건을 마주한다.

단지 몇 미터 차이로 서울의 경계를 벗어난 여성이 죽은 사건이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고, 필요에 의해 강철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

서울 어디서나 사건이 일어나면 몇 분 내로 그가 날아와 해결한다.

초인이 서울에 머무는 한 서울에서 범죄를 일으키고 그냥 지나갈 수 없다.

하지만 이 경계 문제는 다른 지역에 차별이 되고, 그 의존성이 사회 문제가 된다.

최악의 경우는 초인을 핑계로 사람들을 대량 살상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의 주장은 이후 다른 곳에서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작가는 이 과정을 정훈의 덕질과 현실을 엮어 재밌게 풀어낸다.

이 과정에 드러나는 초인의 존재와 정체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초인이 만약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어떨까?

현실 속 초인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이다.

초인 덕분에 범죄가 줄어들겠지만 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 또한 존재한다.

살인이나 폭력 등에는 초인이 등장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서울이란 경계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초인 2는 강남만 지킨다.

초인 내부에서 일어난 갈등과 고뇌는 또 다른 재미이자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다.

가장 좋은 것은 초인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이자만 현실은 초인을 갈망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