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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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568권이다.


보통의 시집보다 두툼하다.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 가장 분량이 많다.


시 편수만 놓고 보면 62편으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이보다 더 두툼한 시집도 있지만 선집이 아닌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단지 두툼하기만 하다면 별로 힘들지 않겠지만 쉽게 읽히는 시집이 아니다.


아니 난해하다. 문장이 기호처럼 다가온다.




시집의 제목도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겨를은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미들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인 듯하다.


어떤 삶의 중간 지점에서 이런 시어들이 나왔을까?


시어들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번 읽었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내가 성급하게 놓친 부분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읽어왔던 시집과 다른 형식의 시어들.


어떤 시는 점자로 표시된 듯한데 한글로 된 시도 어렵다.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 부분)


“왔다가 가더라도 갔다가 오더라도 못 오더라도/


 상실 언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언니가 갖고 있어”(<상실 언니에게> 부분)


이처럼 말꼬리를 무는 듯한 시어들은 천천히 음미해야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동(東)을 “해日가 나무木에 걸렸다고/ 상형象形을 얘기하고 있었어요” 말할 때 한자를 다시 본다.


영화나 다른 책에서 본 문장을 시 속에 인용해 시를 완성하기도 한다.


비틀즈의 노래 <A day in the life>를 제목으로 한 시에서


“없어진 것이라 보였던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라고 한다.


음악과 시의 공감이자 우리의 인식 문제를 풀어낸 시어다.




시집을 읽을 때보다 이 글을 쓰면서 단편적으로 읽는 것이 순간적으로 더 와 닿는다.


최근 현대시의 난해함에 무력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돋움으로 괴면서 끌어 올리고 있다.” (<뼈가 있으니 살이 있으니>의 부분)처럼 천천히 시의 이해를 끌어올려야 할 모양이다.


이런 시집들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지금 보지 못한 이미지나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또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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