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만약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벌어질 일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지구가 끝나는 날을 알고 있던 주니어의 이야기다. 그의 머릿속에 속삭이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는 그가 알고 있는 종말의 날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러니 그의 삶이 평탄하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니 당연하다. 스피노자가 말했던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 한 것이.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구가 사라지는 그 날을 말이다.  

 

 두 가지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하나는 97로부터 1까지 역순으로 세면서 진행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주니어와 그를 둘러싼 가족과 연인 에이미의 시점에서 본 현실이다. 숫자로 표현된 문장들이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그 종말이 필연임을 알려준다면 다른 시점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주니어의 시점이 들어가는 순간 뒤섞여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삶과 생각들이 종말로 확정된 미래를 우리로 하여금 묻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는 지구의 종말이란 기본 설정 외에도 재미난 설정을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천재 주니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종말을 알고 공포를 느끼며 살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차이고, 알코올 중독이 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에이미와 헤어진 후 알코올에 절어 살아가는 그 모습에선 확정된 미래를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의 한 표현이다. 자신에게 종말을 알려준 존재들이 그의 종말론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예언자들이 지구 종말을 예언했지 않은가 말이다.   

 

 또 다른 설정으론 그의 형 로드니다. 어릴 때 로드니 삼촌 집에서 코카인을 시험 삼아 했다가 중독된 그의 삶이 흥미롭다. 육체적으로 뛰어나지만 약 중독으로 치료원에 들어가고, 그 때문에 지성을 많이 잃게 된다. 하지만 타고난 육체 능력은 야구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엄청난 명예와 부를 이루게 도와준다. 재미난 것은 약물 중독으로 지성을 잃은 후 갖게 된 운동 능력도 있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이다. 동생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것도 약물 중독이었을 때 결코 가지지 못한 것임을 생각하면 삶이 다른 측면도 있음을 부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니어의 삶을 따라가면 사실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중반까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그가 느낀 공포와 절망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 후엔 너무 변한 모습 때문에 흥미롭기는 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약간 무리라고 보이는 이 설정이 다음에 나올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초석임을 알게 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종말의 시간이 알려진 순간 펼쳐지는 사람들의 수많은 반응들도 흥미롭다. 작가는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종말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상황 하나하나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한다.  

 

 묵시록적 판타지다. 종말은 실제 발생한다. 하지만 종말이 주제가 아니다. 단지 이것은 소재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에서 주니어와 사람들의 삶이 중심이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란 제목처럼 종말의 순간에도 모든 것은 존재한다. 마지막 숫자 1이 모든 이야기의 끝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독창적이란 것이다. 모두 읽은 지금 다시 묻는다. 과연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아마 늘 생각한 것이지만 지금처럼 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급하게 좀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 나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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