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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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이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느꼈고, 그녀의 단편이 이미 몇몇 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작가 중 한 명 이상은 아니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느낀 감정에 비하면 조금 약한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조금은 덜어내는 작품집이 이 소설모음이다.  

 

 총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앞의 두 편을 읽는 동안은 <달콤한 나의 도시>와 비슷한 느낌에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슷한 느낌 때문이라기보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품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도시적 감수성에 소위 말하는 된장녀의 모습에 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그들. 하지만 그들을 몰아치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너무 적나라하기에 부담이 된 것이다. 아마 이 소설집이 나왔을 때 보았다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약간은 그저 그렇고 부담스런 상황들일 뿐이다.  

 

 사실 재미를 느낀 작품은 <순수>와 <홈드라마>다. <순수>의 경우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하였고,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만나는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과 사고들은 제목과 다르게 섬뜩한 것들이다. 최근에 많이 읽는 책들과 유사한 분위기와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냉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홈드라마>는 결혼까지 가는 한 커플을 보여주는데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쌍방 가족들의 내심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커플들의 타협과 포기와 충돌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재치 있는 문장과 진행으로 재미있었다.   

 

 <이십세기 모단걸>을 보면서 처음 생각한 것은 김영하의 <아랑은 왜> 등과 같은 고전소설 등을 새롭게 해석하고 꾸며낸 소설들이다. 비록 이젠 고전들에 대한 기억이 많이 퇴색하였지만 전설이나 민담을 작가들이 자신들만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망을 살포시 느끼게 하였다. <소녀시대>는 요즘 나온 여자 그룹의 이름을 먼저 떠올려주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보면 작가가 자신은 주변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글로 표현한다는 그 말처럼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어두운 한면을 보는 듯하다. 동성애를 다룬 <무궁화>나 한 구청 여직원이 외로움을 토해내는 <신식키친>도 나름 재미있었다.  

 

 

 정이현의 새로운 소설집이 나온 것을 알고 있다.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소설과 구별되어지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다시 한국소설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요 몇 년간 한해에 한두 명 정도 잘 몰랐던,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작가들을 발견한다. 그녀가 새롭게 발굴한 작가는 아니지만 이 소설집이 그녀에 대한 나의 평가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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