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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다. 왜 이렇게 표현했나면 그만큼 이 작품이 준 충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알고 있던 중국 문학에 대한 모든 선입견이 이 한 작품으로 깨졌다. 능청스런 이야기 전개와 매력적인 주인공과 사람들의 삶이 우리의 옛 모습을 잠시 떠올려주면서도 중국 색채가 강하게 풍겼다. 이 이후 중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좋은 작가들을 만났다.
이번 단편집은 모두 여섯 편이 담겨 있다. 위화가 선별해서 뽑았다고 한다. 위화의 작품세계가 1990년대를 기점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그 이후에 쓴 글들이다. 한 편 한 편이 다른 느낌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허삼관 매혈기>에서 받은 충격이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몇몇 작품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이다.
첫 작품 <전율>은 이제는 퇴락한 시인과 그를 좋아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우연히 발견한 십이 년 전 편지를 통해 만남이 이루어지고, 서로 엇갈린 기억과 감정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다. 결국 마지막에 제목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그 뜻을 분명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고통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율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자 마란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 옛날의 열정보다 가지지 못한 열정의 집착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 <우연한 사건>이다. 협곡 카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두고 두 남자가 그 원인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에 시간의 흐름과 한 남자의 엽색 행각을 같이 보여준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살인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고 편지로 논의하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예상된 결말이 펼쳐졌을 때 앞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생각한 것이 현실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자의 승리>는 바람을 핀 남편을 둔 한 여자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여자의 승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순간 자기기만의 감정들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넘쳐난다. 표제작 <무더운 여름>은 조금은 예상하고, 그 예상과 조금은 다른 결말이지만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미묘한 대립과 허세가 재미있다. <다리에서>는 임신을 둘러싼 부부 이야기인데 왠지 모르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 작품인 <그들의 아들>에선 힘들어도 아끼고 절약하면서 살아가는 부부와 대비되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중국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자주 본 장면들이다. 부모가 아까워서 돈 몇 백 원을 절약할 때 아이들은 수십만 원짜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구입한다. 세대 갈등이 일어나야 할 부분이지만 자기 자식만은 귀하게 키우려는 부모의 심정이 현실과의 갈등으로 번지는 장면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들이 아닌 후기처럼 쓴 <나의 문학의 길>이다. 이 글에서 위화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어떤 작가에게 영향을 받았고 성장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그의 성장을 읽으면서 위화의 대표작인 <허삼관 매혈기>가 왜 그렇게 매력적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작가가 어떻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로서 나를 능가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240쪽)”을 읽는 순간 이 오만한 표현이 그가 성장하는데 얼마나 큰 밑거름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어도 많이 모르고, 문장도 잘 쓰지 못하고, 단지 발치사란 직업을 벗어나기 위해 문학의 길을 나선 그의 일생을 보면서 한 인간의 멋진 성장과 성공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