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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를 어느 순간부터 한 권씩 읽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대부분의 여행서가 정보 전달과 피상적 감상에 빠져 있는 것에 비해 그의 책은 깊은 사색이 돋보인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행서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반면에 그의 책은 읽으면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경험하고, 그 속에서 생각한 것들이 나의 직접 간접 경험과 충동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약간 더딜 뿐이다. 동시에 공부해야 할 것을 던져준다. 그냥 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기엔 나의 머리가 너무 컸다.
이번 아메리카 여행에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모터홈이다. 쉽게 말해 주거 가능한 자동차다. 그는 이것을 서부개척기 포장마차의 현대판으로 생각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음에도 힘들게 이런 도구를 선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 안의 시점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서나 숙박이 가능하다는 편리성 때문이다. 후자는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모터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터홈만의 교통법규와 모터홈 주차장을 대부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착각을 통해 긴 여행을 한 그가 모토홈으로 일주일이라도 미국을 여행해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많은 도움과 신선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60마일쯤 남쪽 바다를 따라 이어진 라구노 비치의 호텔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낯선 곳에서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일주일을 머문 후 한 노부인이 중년의 백인여성과 같이 걸어오다 말을 한다. 이 말을 받아 그가 대답한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같은 날 밤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가 바로 루스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작가를 보고 그녀는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미국 가정 속 일면을 들여다보고, 그녀와 함께 사는 자클린느를 통해 할리우드에서의 삶을 되짚어본다.
긴 여행을 통해 작가는 미국의 한 가지 특성을 말한다. 그것은 짧은 역사를 가진 다인종 다민족 국가란 것이다. 미국인의 연설에 유머가 들어가는 것과 모두가 알고 있는 우상을 똑같이 부러워하는 감정으로 동경하고 있다는 연대감이 미국이란 국가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이벤트를 본 후 느낀 그의 감상은 고개를 주억이게 한다. 하지만 다시 열광적인 분위기 뒤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미국식 ‘고독한 군중’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여자를 통해 더욱 가슴으로 와 닿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 가장 소중한 양식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7개월간 약 2만 킬로미터 여행이다. 사람이 밀집한 공간도 있지만 로키산맥의 바위투성이나 사막을 만나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그의 사색은 멈추지 않는다. 차로 달리면서 변하는 주변풍경은 풍요에서 불모로, 생명의 합성지대에서 죽음의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느낀 것은 한 단어로 표현된다. 애쉬(ash). 재다. 이것은 다시 달을 다녀온 두 우주인 이야기로 나누어지고, 각각 다른 반응을 묘사하면서 결국 재로 돌아온다.
뉴욕에서 여자를 Man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각한다. 이것을 다민족이라는 환경이 낳은 하나의 소산이라는 인식에 이르는 순간 다시금 그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다민족 다인종 국가란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 앞에 패밀리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과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면서 애완견으로 미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하는데 이 부분도 역시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재미난 에피소드는 역시 맥도날드와 관련이 있다. 일본 발음상 맥도날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 맥도날드임을 생각하면 그 상황들이 묘하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한때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맥노날드고, 이 경험으로 미국 식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면서도 가로젓게 한다. 가슴 짠한 멕시코 소년의 에피소드는 모토홈의 가재도구가 소란을 피우게 만들 정도로 그를 흔들어놓았다. 긴 여행에서 그의 감정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20년 전 여행기지만 그가 경험한 것들과 생각들은 아직도 펄떡펄떡 뛴다. 다민족 다인종이란 현실에서 시작하여 그 눈으로 바라본 미국이지만 결국은 그가 본 것은 미국이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자기 안의 또 다른 뿌리를 그곳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다시 나와 우리의 뿌리와 현실이 그곳에 닿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 여행기라기보다 현대문명에 대한 고찰이란 역자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