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회상록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 지음, 박선옥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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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목이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이다. 그녀의 성장과 죽음과 재생을 다루면서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게 만든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생각보다 무겁고 때로는 재미난 이야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부족한 지식들이 아쉬움을 준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 몇 곳을 제외하면 짧은 지식으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고 지나가기도 했다.  

 

 주목. 사실 잘 모르는 나무다. 사실 나무 그 자체를 잘 모른다. 한때 이름 몇 개를 외우고, 늘 보는 나무 몇 종류를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거대하게 자란 나무를 보면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이제 수명이 다한 나무를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상쾌함을 느끼고, 곧게 자란 나무들을 보면 무의식중에 목재를 생각한다. 나 자신도 모르게 고마움과 이익을 동시에 느끼고 생각한 것이다. 

  

 

 주목이 얼마나 사는 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은 엄청나다. 처음 그녀가 죽음을 만날 때가 1400년이 넘을 때다. 이 죽음이 지난 후 살아남은 뿌리에서 부활한다. 재미난 것은 그녀에게 죽음을 내린 사람들이 수도사였고, 그녀의 재생을 보고 기적을 외치며 보호한 사람도 수도사였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이중성이 극과 극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이 인간에게 증오를 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증오를 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자신 주변에서 벌어진 나무들의 대학살로 인한 울부짖는 고통을 들으면서 좀더 성숙한다. 이제 그녀는 한층 여유롭게 따스하게 주변과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주목의 회상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나무들의 세계를 말한다. 처음 그녀가 사람을 만난 장면이 살인이고, 인간이 나무에게 가하는 도끼질은 나무들의 죽음이다. 이 죽음을 통해 그녀가 인간을 만났고, 주목을 숭배하는 종교인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들은 한정적이다. 아니 이기적이다.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한 전투나 다른 나무들이 도끼에 쓰러질 때 결코 느끼지 못했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에게 대입한다면 어떨까?   

 

 작가가 뒤에 쓴 작품개요에서 “자연에 대한 경시이자 극도의 인간중심주의”(335쪽)가 기독교의 결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자연환경과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천지만물 중에서 인간이 최고 귀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 대운항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배를 만드는 목재로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그 시대의 바탕에 깔린 감정이 바로 강한 탐욕이다.   

 

 적자생존이나 진화설에 대한 의문으로 마무리한다. 인간들이 행동이 세상의 영원한 법칙이란 말로 표현된 진화나 적자생존을 넘어 공존을 말한다. 자연계의 모든 것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를 꿈꾼다. 하지만 “세상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싸움터”(294쪽)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 이 한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는 너무나도 크고 거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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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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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이 <네 탓이야>라고 하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전편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이번 작품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그래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겨울에서 시작하여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이야기는 끝나는데 한 계절에 하나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것도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첫 작품 <짙은 감색의 악마>는 이 작품집이나 다음에 나올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서 중요한 악당이 될 존재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그녀의 언니가 자살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흥신소 일을 시작하면서다. 그녀가 맡은 일은 시오리라는 여성 실업가를 경호하는 일이다. 그녀의 집으로 스토커처럼 악담을 담은 팩스가 들어오고, 혐오스런 택배가 오고, 위에선 화분이 떨어지고, 차가 그녀를 향해 돌진한다.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그녀를 보호하는 일인데 이젠 같이 경호하던 사람마저 그녀를 공격한다. 이 모든 음모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얼까?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혹시 자작극은 아닐까? 의문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악당의 등장으로 여운을 남긴다.  

 

 <시인의 죽음>은 그녀가 낡은 자취집을 벗어나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원인을 파헤친다. 결혼을 앞둔 친구 미노리의 약혼자가 차를 몰고 자살을 한 것이다. 공무원이면서 시집을 내어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능력이 있었던 남자가 말이다. 이 자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숨겨진 비리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비밀은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이 뒤에 많은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이 집이 의뢰인을 만나는 공간이자 그녀의 친구가 탐정 역을 맡기도 한 것 때문이다.  

 

 <아마, 더워서>는 한 여성 사무원의 살인미수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왜 그녀가 그런 일을 벌렸는지와 과연 그녀가 실제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뒤끝이 남는 것은 역시 제목이자 그녀의 심정을 드러낸 문장과 사연 때문이다. <철창살의 여자>에서 만나게 되는 서지학은 반가웠다. 그렇지만 한 화가의 자살과 그의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지는 순간 인간관계와 질투와 살의가 섬뜩함을 주었다.  

 

 

 하무라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 두 작품 중 하나인 <아베마리아>는 한 탐정의 하루 동안 탐문수사 속에 숨겨진 사연이 가슴 아리고 개운치 않은 뒤끝을 남긴다. 표제작 <의뢰인은 죽었다>는 다시 인간의 탐욕과 탐욕이 만들어낸 살인에 놀란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그 모든 알리바이와 거짓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녀의 추리와 해결 능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탐정의 여름 휴가>에선 그녀는 휴가 중이다. 여기서 탐정은 그녀의 친구 미노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과거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그녀의 모습에 새로운 재미가 있다.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는 의뢰인의 조사 요청을 정말 하나도 봐주는 것 없이 사실적으로 대응한다. 자살한 친한 친구가 꿈에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황당한 이 의뢰를 통해 그 자살의 이유를 찾고, 그 이유에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의 연약한 심리상태와 질투가 만들어낸 결과에 놀라게 된다. 마지막 단편 <편리한 지옥>은 첫 작품과 연결되는 동시에 이 단편집에 실린 몇 개의 이야기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바로 짙은 감색의 악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선 새로운 의문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다음 작품집에서 이 악마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하다.  

 

 연작단편이다 보니 독립적이면서도 연관성이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 만나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욕망과 탐욕이 일상에서 어떤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는지 잘 알 수 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는 냉철하고 집요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녀를 등장시켜 사연에 감정 이입하기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조사하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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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먼트 -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
워렌 페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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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면 이 책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이란 문구와 무시무시한 곤충(?) 그림이 그려져 있어 전문서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하게 소설이다. 그것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설정과 전개를 지니고 있다. 읽다가 만나게 되는 생물학에 대한 지식들은 이 소설이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자료와 깊이 있는 연구의 결과들이 상상력과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 시작은 평범하다. 약간 진부하게 보이는 리얼리티 TV쇼 ‘시 라이프(sea life)'란 프로그램에서 시작한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외래종이 토착종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한다. 거기에 1791년 한 영국 함정이 잠시 한 섬을 다녀간 이야기를 짧고 강력하게 보여준다. 이런 밑밥을 생각하더라도 TV쇼 출연진 등이 만나게 될 재앙을 생각하면 조금은 약한 경고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평범한 시작이 곧 악몽으로 변하고, 뒤로 가면서 새로운 사실이 더 드러나면서 공포는 배가된다.  

 

 1791년 핸더스 함장이 이 섬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핸더스 섬으로 불릴 이 곳엔 엄청난 생태계와 생명체가 살고 있다. 몇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어떤 장면에서 영화 <에어리언>에서 나온 괴물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핸더스 섬의 생명체들은 그들의 강하고 무시무시한 살상력에 엄청난 번식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먹이사슬이 엄청 빠르게 움직이고,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냥에 들어가고, 조금도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사람들이 이 생태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고 잠시만 한눈을 판다면 그의 생명은 곧 사라지고, 그의 육체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른 생명체의 배속으로 소화된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작가는 이 생물들에게 희생자들을 잔혹하게 바친다. 처음 TV쇼 출연자를, 다음엔 과신을 한 과학자와 군인들을, 그 다음엔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을 거침없이 희생자로 만든다. 이 장면들과 이 생태계의 상황을 실험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던 생태계의 강자들을 이곳에 집어넣어 생존력을 실험하는 장면은 이 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만약 하나라도 이 생명체가 살아서 우리주변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섭다.  

 

 식물학자 넬이나 생물학자 제프리가 중요한 인물로 어느 정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제로의 활약이 이 엄청난 섬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지만 역시 진정한 주인공은 섬의 생명체들이다. 시 라이프가 생중계된 후 많은 사람들과 학자들이 연출된 상황이라고 생각한 반면 NASA와 미 국방부는 섬을 둘러싸고 특별조사단을 파견하여 이 생태계를 조사하고 연구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원반 개미, 핸더스 쥐, 핸더스 말벌, 스피거 등의 엄청난 능력을 직접 만나게 된다. 화성에서도 이상 없이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동 기지가 이들에게 파괴되고, 연구자들이 공격당한다. 이 섬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주할 장소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 중 단 한 종이라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하다. 생물학적 지식들은 핸더스 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위력을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덕분에 그 공포가 점점 더 자란다. 전문가들이 이 생명체의 공포를 확인시키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들은 긴장을 불러온다.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 연구하고 조사하고 이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기보다 생명의 위협을 더 받아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선 나 자신도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이 섬에 살았던 단 하나의 생명체라도 주변에 나타난다면 집안을 온통 소금밭으로 만들거나 염전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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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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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이자 판타지소설이다. 헨리 데이와 애니데이란 두 소년을 통해 성장을 말한다면 이 둘의 삶이 뒤바뀌고 그 과정과 결과를 풀어내는 방식이 판타지소설이다. 바꿔친 아이가 파에리로 불리고, 이 파에리가 다시 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아이를 훔쳐 사람의 아이가 되는 동시에 훔친 아이는 파에리가 된다. 이 순환 과정을 통해 파에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되고, 바꿔친 아이는 파에리로 변하면서 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린다.   

 

 이런 순환과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책 앞부분에 사람의 아이로 변한 파에리들이 적응을 제대로 못하거나 눈치 빠른 부모 등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순간 섬뜩했다. 부모들이 분명한 차이를 발견한 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얼마나 심한지를 생각하면 의외의 상황이자 불안감이 만들어낸 공포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집중하는 것은 이 장면이 아니다. 훔친 아이로 변한 파에리와 파에리로 변한 아이의 정체성과 성장을 다루고 있다.   

 

 두 아이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파에리였던 헨리 데이다. 그가 훔친 아이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을 짧게 그리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곧 애니데이로 불릴 진짜 헨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과 안락한 집에서 사라진 후 파에리와의 삶이 시작한다. 이 시작을 보면서 파에리들이 왜 이 나이 또래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 두 소년의 삶이 진행되는데 이 둘의 모습을 보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고, 꼬리를 무는 뱀 우르보로스가 생각난다.  

 

 

 헨리 데이가 평범한 가정에 조용히 들어온다. 이 가정에 조심스럽게 적응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음악 재능이 발휘된다. 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 의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어느 날 마주친 진짜 헨리 데이인 파에리를 본 후 더욱 커진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감정 때문인지 자살한다. 이 장면과 나중에 헨리가 정체성과 고민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녀가 보여준 반응을 생각하면 다른 대응방식 때문에 놀라게 되고, 어머니의 강인함에 다시 한 번 더 감탄한다.  

 

 헨리 데이는 성장을 하지만 보통 사람처럼 늙지 않는다. 파에리의 능력으로 조금씩 노화시켜야 한다. 이 과정은 힘들고, 주의를 요구한다. 인간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이 능력이 조금씩 퇴화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지만 이미 그가 살아온 시간이 백 년이다. 그렇지만 그 백 년은 보통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세파에 시달리며 온갖 것을 경험하는 사람에 비해 파에리의 것은 어떻게 보면 한 동안의 꿈과 같다. 그 때문인지 파에리들은 살면서 그들의 과거 기억들을 하나씩 잊고 살아간다.  

 

 애니데이는 사실 파에리 중 별종이다. 물론 그가 좋아했던 스펙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파에리들이 쾌락과 생존에 힘쓸 때 애니데이는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 이전에 누구도 하지 않은 행동이다. 이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다. 적은 것 중 일부는 소실되었고, 이 삶을 사는 동안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이 잃어버리는 것은 상상력이 다시 만들어내지.”(414쪽)란 문장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이 두 아이들이 정체성과 과거의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 마법이 펼쳐지고, 그 마법이 현실에서 다시 나타난다. 자신을 찾고, 잊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다. 헨리 데이가 자신이 파에리란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백 년 전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다면 애니데이는 언제 사람들이 자신들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점점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붙잡아두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서로 바뀐 삶을 살지만 그들은 과거의 진실과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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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센터 문학총서 2
호르헤 부카이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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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은 분량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맞다. 분량도 많지 않고 가볍게 읽었다. 하지만 그 가볍게 읽은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짧은 글들에 깊은 의미나 생각을 담아냈을 경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때로는 읽은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에 잠기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게 된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하나씩 그 의미가 파고들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서문 역할을 하는 ‘세 가지 진실’을 제외하고 모두 스물여섯 편의 이야기가 있다. 각각의 분량이 다르다. 한 쪽으로 끝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짧은 단편소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읽으면서 순간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은 정확한 의미를 파악 못해 이리저리 궁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작가가 이야기 속에 실어내는 의미에 손바닥을 딱 치기도 한다. 물론 살짝 미소를 지을 때도 있다.  

 

 첫 이야기 <찾는 자>부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찾는 자’로 불리던 남자가 묘지에 쓰여 있는 짧은 기간에 가슴 아파할 때 그 기간의 진실을 알려주는 순간 삶 속의 행복함을 다시 생각한다. 현명한 왕이 되는 과정 속에 느끼는 공포와 평온함을 다룬 <두려운 적>을 지나 <후안 신피에르나스>에 오면 마지막 대사에 섬뜩함을 느끼고, 소통부재의 상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두렵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숨겨진 집착을 벗어나 가볍게 고개를 돌리면 평안한 해결책이 보이는 <깨달음>, <이야기 속 이야기>는 대화 속에 그 의미를 담아내고, <탐욕>에선 자기기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 수 있다.  

 <오로지 사랑만을 위하여>와 <너>는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삶 속에서 우리가 지고 가는 무거움과 힘겨움이 느껴지는 <장애물>을 지나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의 결실을 말하는 <아이들만 있었다>을 만나고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찰나>를 생각한다. 우물들의 경쟁과 은유를 통해 내면의 가치를 새롭게 보여주고, <주정뱅이의 논리>에서 웃음을 짓는다. <사소한 자전적 이야기>에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린 한 남자를 통해 주체성과 정체성을 생각하고, 분노의 옷자락 뒤에 숨은 슬픔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편지 속에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현실을 드러내고, <꿈>을 통해 환상을 보여주고, <전사>의 예상하지 못한 신전 이야기는 바람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현대인이 시계의 노예가 된 상황을 <반란>으로 표현하고, 각 개인의 영혼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노래하고, 한 남자의 부고를 통해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면서 <숲 속 어느 곳>에 있었던 전설과 이야기를 통해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이야기들을 생각해본다. 읽을 당시 느꼈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하고, 잘 몰랐던 의미가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도 한다. 사랑, 꿈, 명상, 행복 등을 노래하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예전에 알았지만 잊고 있던 감정과 감성을 일깨우고, 다시 생각한다. 삭막해지고 삶이 공허해질 때 이런 책 한 권은 삶을 돌아보고 잔잔한 기쁨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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