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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먼트 -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
워렌 페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를 보면 이 책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이란 문구와 무시무시한 곤충(?) 그림이 그려져 있어 전문서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하게 소설이다. 그것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설정과 전개를 지니고 있다. 읽다가 만나게 되는 생물학에 대한 지식들은 이 소설이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자료와 깊이 있는 연구의 결과들이 상상력과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 시작은 평범하다. 약간 진부하게 보이는 리얼리티 TV쇼 ‘시 라이프(sea life)'란 프로그램에서 시작한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외래종이 토착종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한다. 거기에 1791년 한 영국 함정이 잠시 한 섬을 다녀간 이야기를 짧고 강력하게 보여준다. 이런 밑밥을 생각하더라도 TV쇼 출연진 등이 만나게 될 재앙을 생각하면 조금은 약한 경고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평범한 시작이 곧 악몽으로 변하고, 뒤로 가면서 새로운 사실이 더 드러나면서 공포는 배가된다.
1791년 핸더스 함장이 이 섬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핸더스 섬으로 불릴 이 곳엔 엄청난 생태계와 생명체가 살고 있다. 몇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어떤 장면에서 영화 <에어리언>에서 나온 괴물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핸더스 섬의 생명체들은 그들의 강하고 무시무시한 살상력에 엄청난 번식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먹이사슬이 엄청 빠르게 움직이고,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냥에 들어가고, 조금도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사람들이 이 생태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고 잠시만 한눈을 판다면 그의 생명은 곧 사라지고, 그의 육체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다른 생명체의 배속으로 소화된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작가는 이 생물들에게 희생자들을 잔혹하게 바친다. 처음 TV쇼 출연자를, 다음엔 과신을 한 과학자와 군인들을, 그 다음엔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을 거침없이 희생자로 만든다. 이 장면들과 이 생태계의 상황을 실험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던 생태계의 강자들을 이곳에 집어넣어 생존력을 실험하는 장면은 이 섬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만약 하나라도 이 생명체가 살아서 우리주변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무섭다.
식물학자 넬이나 생물학자 제프리가 중요한 인물로 어느 정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제로의 활약이 이 엄청난 섬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지만 역시 진정한 주인공은 섬의 생명체들이다. 시 라이프가 생중계된 후 많은 사람들과 학자들이 연출된 상황이라고 생각한 반면 NASA와 미 국방부는 섬을 둘러싸고 특별조사단을 파견하여 이 생태계를 조사하고 연구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원반 개미, 핸더스 쥐, 핸더스 말벌, 스피거 등의 엄청난 능력을 직접 만나게 된다. 화성에서도 이상 없이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동 기지가 이들에게 파괴되고, 연구자들이 공격당한다. 이 섬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거주할 장소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 중 단 한 종이라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하다. 생물학적 지식들은 핸더스 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위력을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덕분에 그 공포가 점점 더 자란다. 전문가들이 이 생명체의 공포를 확인시키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들은 긴장을 불러온다.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 연구하고 조사하고 이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기보다 생명의 위협을 더 받아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선 나 자신도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이 섬에 살았던 단 하나의 생명체라도 주변에 나타난다면 집안을 온통 소금밭으로 만들거나 염전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