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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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독서....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은 하애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뮤진에 명산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해 보이지 않은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늦게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닷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해처버릴 수가 없었다,  (중략)

 

눈으로 뒤덮힌 온천마을과

안개가 마을 휘감아 무엇이든 뿌옇게 존재를 삼켜버리는 안개

그리고 고향 (정서적 고향일 수도)에서 만나는 낯선 여인

그 여인에게서 얻는 구원 사랑 허무함

남자는 한량이거나 어떤 생활의 고민따위는 없는 참으로 안개같고 눈같은  비현실적인 환타지스러운 존재

 

삶에 지치거나 삶에 권태를 느끼는 남자가 먼 타지 혹은 마음의 고향에서 여자를 만나 구원을 얻는 이야기 그러나 허무하고 덧없는 이야기

나이 40을 넘으면 이해하고 동감하게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나이를 더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눈 질척이며 들러붙는 눈 사이를 막아버리는 눈 떄로는 그대로 고립시키는 눈

그낯설과 환상적인 온천 마을에서 시마무라는   코마코와 요코를 만난다

 

안개처럼 뿌옆고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무진행에서 나는 미친 여자를 만나고 죽은 작부를 보고 인숙을 만난다

 

그리고 일어나는 혹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들

마을과 자연과 눈과 안개와 마음 마음 마음

그럼에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불쑥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읽으면 또다른 것들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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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EBS를 무심히 보다 우측 상단에 부모자격시험 이란 글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걸 봤다,

아마 EBS 프로그램 예고였을것이다,

아이랑 보다가  무심하게

  "정말 부모 자격시험이 필요한거야, 아무나 부모가 되니까 학대받는 아이도 생기는거고

   자식을 키운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되지"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는 저 시험 통과할 수 있을거 같아?"

 

내가 답했다

    "당연히 통과 못하지.. 내가 어떻게..  아마 시험에 떨어지면 재시험을 봐야 할거고

    그러려면 아마 모여서 합숙 훈련을 하거나 자녀를 빼앗기겠지

    자격이 없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 안되니까 아마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자녀를 빼앗길거야"

  

   "엥? 자식을 빼앗아간다구?"

  

 '당연하지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아마 합격해야 자녀를 돌려주지 않을까?

   그동안 자녀는 국가가 관리하겠지뭐.. 아마 난 머리가 나빠서 서너번은 떨어져야 자격시험에  

  합격할거야 어쩌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자격박탈을 당할지도 모르지

  그럼 자식을 못키울거고 그러면..."

 

  "엄마 너무 즐거운거같아..."

 

 아 순간 자격이 없어 자식을 키울 수 없는 상황아리는게 너무 즐거워지는거다,

뭐 내가 싫다고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없어서 못한다는데 어떡하겠어?

나혼자 저항할 수도 없고 자격이 없으니 스스로 물러나야지...

흐흐흐...

상상만으로도 즐거운걸 보면 난 모성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 진저리치게 힘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뭐든 대충대충 그까이꺼 하는 마음으로 하다보니 그다지 힘든 게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게 요즘 생각이다,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설마 내 아이가 이상하겠어? 그럴리가,,,"

정말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무탈하게 아이들을 커갔다,

그렇게 힘든게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괴롭고 우울하다고 한 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난 늘 여기서 탈출하는 꿈을 아이가 없었더라면 하는 꿈을 꾼다,

심지어 요새는 뻔뻔스럽게 모든 여자가 다 모성이 있는게 아니야 모든 엄마가 더 그래야하는 것도 아니야 하면서 아이들에게 쇄뇌시키는 중이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씩 낮추면서 조금만 신경써줘도 서로가 감동할 수 있게...

 

 

 

 

 

 

 

 

 

 

 

 

 

 

 

 

 

아마 이 책을 다 읽는데 몇달이 걸렸을 것이다,

리뷰에서도 썼을 텐데 정말 진도가 나가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지루하고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딱히 별일이 일어나지도 않지만 나는 손에서 놓지 못했고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오랜만에 읽을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었다,

핑거본 마을의 루스와 루실 자매

그 자매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살해버린 아이들의 엄마의 삶과 선택을 늘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어린 자매를 남기고 죽었을까

익숙하게 봐 왔던 할머니도 아니고 처음 본 낯선 마을에 사는 할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렇게 돌진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을의 지루하고 나른하구 끈적이고 진흙같이 꾸덕꾸덕한 나날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내 그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했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용기를 내서?

읽으면서 내게 내려꽂힌 것은 단 하나...

자매를 남기고 죽으면 안되겠구나,

적어도 자매가 성인이 될때 까지는....

 

가끔 상상한다 나도 내가 지금 없다면 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미친 중딩시절 엄마가 없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라는 수능을 앞둔 시기에 엄마가 없다면?

내가 대단히 좋은 엄마도 아님에도...  대한민국에 아들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딸들에게 엄마가 없는 유년시절이 있다는 것은 참 많은 상실감을 주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시절을 엄마가 있어서 보냈음에도 엄마가 있어 고맙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늘 당연하다고 여겼고 일상이고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서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것을 걷어내고 나면 .. 끔찍하지만 남는게 없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정신적으로 그랬다,

내가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지 않았다고 나름 외롭고 불안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얽매이지 않았다고 여기면서도 엄마에게 받았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는 지긋지긋하고 떨쳐버리고 싶었던 끈끈한 무언가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그것이 나를 지탱시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성과 다른 모성애라기보다 모성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긴 할것이다

루실과 루시 자매도 나름 잘 살아가고 있었다. 둘이서 씩씩하게 모른 척하며 때로는 아는 척하면서 척척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상실감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빈 틈이 있지 않을까

[ 할머니도 이모도 줄 수 없는 일상은 일상이지만 무언가 딱 아귀가 맞지 않은 느낌 같은 거 말이다

책의 주제와 무관하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적어도 아이가 아이일 동안 내 마음대로 죽겠다는 건 하지말아야겠다고 내내 생각했었다,

 

 

이 소설을  다시 보면서 얼마전 읽었던 윤성희의 소설  <베개를 베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의 표현보다는 건조하고 단단한 묘사와 서사가 이어지는 것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소설집 속의 한 단편  "못생겼다 말해줘" 였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해버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매번 상황에 따라 이유를 바꾸어가며 딸을 낳기로 결심한 순간을 말하는 엄마가 나오고 그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딸이 나온다,

엄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꼭 한마디씩 하고 딸과 나란히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그래서 그 순간 나는 딸을 낳기로 했어 라고 한다,

그 말이 매번 반복되고 매번 달라지는 건 어쩌면 그건 내가 딸을 잘 낳은거라고 절대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같았다,

이건 잘못된 선택이 절대 아니었어

이건 옳은 결정이었어.

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게 왠지 속물적 관심일거라 여기게 될 만큼 어머니의 어조는 강하고 단호하다,

아니 강하지도 단호하지도 않아서 더 그렇게 들렸다,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삶의 한 모퉁이 모퉁이 찰라의 순간 주체적으로 선택했던 소소한 경험에 비추어 자꾸자꾸 강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누구나 엄마가 되는 순간 자꾸자구 자기의 걸정에 대해 누군가 공감하고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것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음에 대해 존중해달라고 소심하게 바라는 마음이 내게 왔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일을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 컸다고 믿는 것처럼 아이도 스스로 자랄거라고

양육을 하고 교육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스스로 자만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양육과 교육보다 더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 많았다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을 체력을 요구하고 바닥없이 깊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물론 아이가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요구하지 않은 것들을 해주면서 불안과 죄책감마저 느껴야 하는 것이 모성이고 육아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많이 했다,

아하,,, 이래서 엄마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구나

조금만 내 마음을 몰라주면 섭섭하고 속상하고 배신감을 느끼겠구나,

그걸 경계하고 싶었었다,

그냥 그까이꺼 대충대충 죽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 병나지 않을 만큼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이겨먹고 싶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가끔은 모른 척 하고 싶고

때로는 내가 그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묘한 모녀가 나온다,   

이디스와 그레이스다,

이디스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은 아마 선천적이었을 것이다,

엄격하면서 속물적인 집안 가풍과도 연관이 없진 않았을 것이고

첫눈에 빠진 스토너와의 결혼이 실수라는 걸 너무 이르게 알아버렸고 그 이후의 삶은 복수하듯이 그렇게 자기를 던지며 살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기를 찾기도 힘들었고 스토너에게 맞추기도 힘들었을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책속에 비중이 적게 나오고 나와도 그녀의 기행같은 모습만 나오니 그녀의 입장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레이스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모두 납득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그녀가 그레이스를 바라보는 시선속에 내가 내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몇가지쯤은 겹쳐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만 스토너와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부시간을 그녀가 빼았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더 모성이 모자라서 그렇게 나 대신 누군가가 대신해주기만 하다면 무조건 좋다고 하는 것인데 이디스에게는 이지러졌을지언정 모성이 있어서 그 누군가 대신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깊이 길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디스의 입장을 너무 알고 싶었다,

그냥 그런 모성도 이해하고 싶었던 건 내 속에 이디스 역시 존재하기 때문일것이다,

 

 

 

 

 

 

 

 

 

 

 

 

 

 

 

 

 

 

이 책에도 골때리는 엄마 가우리가 있다,

고백하건데 가우리는 어쩌면 내가 상상만 했던 모든 것을 실행으로 옮긴 인물이었다,

자식을 낳고 늘 저기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여자

지금 여기에 있기로 결정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딘가 저기를 바라보며 자기를 무엇보다 가장 우선에 놓는 그녀를 나는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을 따라 이른 나이에 가족을 버리고 결혼을 했고

그 사람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았고

자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시부모를 떠나 사랑하지 않던  남편의 형을 따라 미국으로 왔고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전남편의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그 아이도 그댇로 두고 떠난다,

그리고 멋지게 성공도 했다,

그리고 가능한한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힘들었다,

 

 

사회성이라기보다는.... 사교성이 좀 부족한 나는 모임이나 동창회에 늘 대는 핑계가 아이였다,

아이는 그럴 때 참 유용했다,

아이가 어려서

아이가 아파서

아이가 지금 예민할 시기라,,,

아이가 이유가 되면 어떤 불참도 이해가 되었다,

뭐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사회생활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돌아오는 말은 좋은 엄마네,... 이런 말들

사실 좋은 엄마여서가 아니라 솔직히 아이처럼 좋은 핑계가 없었다,

어른들이나 누구든 아이가 핑계가 되는 건 돌아서서 쑥덕거릴지언정 앞에서는 괜찮다고들 했다,

나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없진 않았지만

아이가 이렇게 유용할 수도 있구나,,, 하고 못된 생각도 했었다,

 

음...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모성보다 자신이 더 중요한 여자들에게 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거나 뭐라고 쑥덕거리며 욕을 듣더라도

나 자신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악녀라고 할 수 도 있고 비정한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들었을 사람들

그리고 그녀 자신들의 선택이 늘 옳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스로도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다시 되돌아가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지금의 선택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

 

어쩌면 좋은 엄마도 되기 힘들고 그렇다고 딱 내  중심으로 살아가기도 눈치보고 있는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서 차라리 이렇게 딱 중심을 잡고 세상을 나 중싱으로 돌려버리는 '

인물들이 무지하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그리고 지금도 꿈만 꾸면서 망설이기만 하는 길을 주저없이 택한 그녀에게

그저 응원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풀고 있는 거 같다,

 

 

 

 

    이 책을 빠뜨릴 수 없겠다,

   나는 책으로 영화로 눈구보다 에바에게 감정이입을 했었으니까

   정말 호로자식같은 캐빈을 결국 포기하지 않은 엄마 에바

  그녀는 캐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거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때로는 내게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스웨터같았던 존재가  때로는 벗을 수도 입고 있을 수도 애매하고 손에 들고 있기엔 거추장 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는 것....

감히 그것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 속에서 에바가 감옥에 간 캐빈을 면회 갔을 때 만난 어떤 여자가 말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사람들이 하는 흔한 말 그 엄마가 어땠는지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는지 너무 구속하고 달달몪지 않았는지 술주정뱅이였는지 아이는 내팽개치고 나돌아다니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따지고 묻는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그 아버지는 무얼 했는지는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과장인지 모르지만 엄마라는 말에는 늘 자식이 함께 존재한다,

모성이라는 이름이 때로는 하나의 족쇄가 된다,

모성은 그렇게 굉장하게 여겨진다,

그걸 대단하다거나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 무게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딱 집어서 남자들이 더 강조하는 편이다,

모성은 위대하므로 희생은 대단한 것이고 그것은 아동들에게 절대적인 것이고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모성을 느끼지 못한 아동은 결핍을 느껴서 문제아가 된다,

위의 여성처럼 아이의 문제에서 엄마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심리학자들도 엄마의 존재의 역할을 늘 강조한다,

조금  확대해서 대체모성까지  포함헤주지만 늘 아이의 주 양육자는 엄마였고

엄마가 양육을 담당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나 에외적인 상상응로 몰아붙이면서 은근하게 그것은 비정상이라고 말하진 않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린다,

치사한 것들....

결국 위 소설속의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손가락질을 받거나 모멸감과 무책임함을 스스로 견딜 뿐이다,

아빠들은? 생물학적이든 정서적이든 아빠들은?

그저 타자이고 관찰자이고 방관자들이다,

아이가 잘못 되는 것에서 아빠는 늘 하나의 방패를 가진다, 엄마라는....

 

봉준호의 <마더>에서 엄마는 결국 미쳐버린다,

스스로 ,,, 미치지 않으면 자식을 지킬 수 없다,

결국 자기 아들 대신 감옥에 간  청년을 보며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걱정한다,

"넌  널 도와줄 엄마가 없니?"

그렇게 엄마를 몰아붙이면서 그런 엄마가 미치도록 손가락질을 해대는 세상이 현실이다,

극성맞거나 무관심하거나

적절한 모성이란 늘 책임에서 비껴서서 그 희생의 열매를 얻어먹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걸어도 걸어도>이 엄마는 희생적이고 인자한 전반부의 모습과 달리 순간 섬찟한 얼굴로 말한다

네 아들을 죽게한 그 아이는 계속 내 아들의 기일에 와야한다고 그렇게 게속 죄책감을 가져야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라고...

모성은 늘 내 아들 내자식에게만 향해있고 내 바운더리 밖은 모두가 적이다,

그걸 모성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비웃고 손가락질 한다,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하고  아둥바둥 책임을 지려면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적절한 모성이 있지 않냐고?

그게 누구에게 적절한 것일까?

 

내가 가끔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지만

그 한편에는 미안함이 늘 자리잡는다,

다른 엄마들은 안 그럴텐데

내 엄마는 그런 적이 없었을 텐데..

정말 그럴까?

 

엄마라는 이름을 갖는 순간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참 싫다,

그냥  나도 좀 나쁜 그러나 엄마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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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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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어떤 감정도 없이 담담하게 혹은 냉정하게 혹은 무심하게

대상을 묘사하거나 일상을 따박따박 순서대로 나열하는 글쓰기

그런 글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고 감정을 흐르게 하고 감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은 소소한 일상에 대해

내가 겪은 시시한 일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건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그런 사건의 흐름을 짚어내는 글을 쓰면서 스윽 알게 모르게 긴 여운을 주면 좋겠다고 욕심을 냈다,

결론적으로

글은 안쓰고 있고

써도 늘 읽어보면 감정과잉에 내 마음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징징대거나  쿨한척 하거나 그런 글만 쓰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서 다시 살폈다, 뭔가 약점을 잡야내겠다는 삐뚤어진 신념으로 문장들을 다시 홇어도  그녀의 문장들은 모든게 묘사고 담담한 서술이었다, 슬프다 기쁘다 아팠다 우울하다 괴롭다는 말이 없었다,  내가 졌다,,,

 

 

요새 고기가 땡기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릴 때 고기반찬만큼 편한게 없다,

볶아먹든 구워먹든 삶아먹든 고기란 그 자체로 밥상의 모든 걸 커버한다,

딱하나 커다란 접시에 상가운데를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는 뭘로 채우든 상관이 없다,

반면 나물찬은 너무 힘들다.

씻고 다듬고 삶고  데치고 혹은 생채로 양념을 만들어 무치고 그 타이밍도 딱 들어맞지 않으면

물이 흥건히 생겨서 금방 숨이 팍 죽어버리거나 너무 펄펄  살아서 금방이라도 밭으로 뛰어갈 기세거나,, 그렇게 차려도 뭔가 초라하고 티도 안나는...

그런데 자꾸 요새 그런 찬이 땡긴다는 거다,

그냥 뚝딱 콩나물무침을 하고 취나물을 데쳐 무치고  무 생채를 서걱서걱 비벼내는 그런 찬

그냥 찬밥에 그런것들을 척척 올려 한그릇을 들고 앉아 소박하게 때로는 청승맞게 먹고 말고 싶은 ...

책읽기도 뭔가 휘몰아치는 갈등과 구조대신 심심하고 밋밋한 이야기가 끌렸을까

이 소설집은 그냥 가정식 백반같았다,

주인공은 없이 그저 조연들 아니 엑스트라 찬들이 모여서 그럭저럭 먹을만해지는 ...

딱히 끌리진 않지만 질릴 일도 없고 어제처럼 먹고 내일도 또 먹어도 그만일거 같은

그런 단편 10개가 비슷한 맛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맛을 내면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낙엽이나 동전을 아래 놓고 그 위에 흰종이를 올린후 뭉툭하게 깍은 연필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들고 힘을 빼고 살살 칠해주면 연필 칠 앙래로 희미하게 동전이나 낙엽의 문양이 서서히 드러난다, 낙엽의 임맥이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평소에 무심했던 동전속의 다보탑이나 이순신장군의 얼굴  때로는 학 한마리가 나 여기 있소.. 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저 검은 칠처럼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색 위로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별일 아닌 일상들

하나도 특별할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사람들의 시시하기까지 한 삶들의 한 단편에서 우리는 서서히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럼에도 그 나름의 독특한 무늬를 가진 삶들이 드러난다,

 

뭐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 되지?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야기는 시작될 듯 시작될듯 주춤주춤거리다가 어느 순간 툭하고 끝이 난다,

우리 할머니가 뭘 잘하는지 물어보면서

베개에 묻은 침자국을 보면서

12살 차이가 나는 친구의 수술실 앞에서

와인잔에 막걸리는 마시다가

군복을 입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첫차시간에 집에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제멋대로  시작을 했다가 제멋대로 끝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어느 한토막을 툭 잘라서 보여준다면 이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에게는 의미있는 순간이고 시간이었던 그 마다마다의  시간이 타인에게는 무심하고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이룬다는 것

필부필부의 삶들이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쉬고 싸우고 한숨쉬고 놀고 위안되던 거 시간들이 차곡차곡 묘여 삶이고 역사가 된다,

긴 역사의 사간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던 전쟁 변혁  문화융성기  왕위 찬탈 외교 진군 정벌  그런시간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닐것이다,

그런 일들은 일상적이지 않아서 너무나 크고 버라이어티한 상황이라 기록되고 보존되겠지만 한사람한사람의 일상 그 사람들의 삶이 그 사이사이 빈틈을 매우면서 우리가 살아내고 살아온 역사를 완성시키는게 아닐까

 

이 소설집의 열가지 이야기는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들

절대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못할 한 순간의 이야기들

그럼에도 무의미하게 버려질 수 없는 그 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준다,

어떤 감정의 묘사도 없이 인물의 감정을 알 수 있고

어떤 대단한 사건도 없으면서 대단한 삶의 다이나믹을 보여준다,

별일 아니라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별일 아니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소함이 주는 가치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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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희망님이 쓰시고 싶은 글의 장르가 에세이에 가깝군요. 푸른희망님이라면 잘 쓰실 겁니다. ^^

푸른희망 2016-12-21 23:16   좋아요 0 | URL
아뇨 제가 쓰고싶은건~~~피칠갑도 목잘린 시체도 없지만 뒷 목이 서늘한 미스테리입니당=3=3=3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구병모가 따뜻해졌다.

그 이전 작품이 따뜻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서늘하고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각성을 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마냥 흐물흐물 풀어지면서 행복하게 읽었다,

사실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고 그리고 사실 빨간구두당은 개인적으로 읽다 말았다,

고병권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그 책이 내게 왔을 때 내가 집중할 상황이 아니었고 우리의 만남 사이에 어떤 적절한 상황이 없어서 그냥 꺼끌거렸다고 할까,,,

이전 '파과"는 당시 그다지 호평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문체가 이렇게 길고 장황했던가 해서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읽혔고 아마 그때도 따뜻함을 느꼈던 거 같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위로받는 느낌이랄까,,,나는 그랬다,

 

낡은 동네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명정

그에게는 낯선 나라에서 얼굴을 모르는 며느리와 살고 있는 아들이 있고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다가 황망하게 떠나버린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오래동안 떨어졌던 아들은 시신을 찾을 수 조차 없는 사고로 먼저 갔고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그에게 묵직한 택배상자가 배달되었다,

17살의 소년 모습을 한 로봇...

어쩌면 그 소년의 얼굴에서 인간보다 로봇보다 시체를 먼저 읽은 명정에게 삶은 살아 숨쉬고 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일거다.

이웃의 도움으로 로봇을 작동하고 함꼐 동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명정은 그 로봇에서 만약 둘째를 낳았다면 붙였을 이름 "은결"을 준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이제 우리는 타자가 아니라는 것

이제 너는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는 것

나는 너를 알고 너도 이제 나를 알거라는 믿음 그것이다,

로봇은 숫자와 영문으로 조합된 낯선  번호로 불리는게 아니라 살과 땀과 온도를 가진 은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명정의 삶에 스며들었다,

은결에게 인간의 세상은 언제나 미지의 세상이었다,

로봇의 연산과 정보체계에서 늘 한박자씩 혹은 한 뺨정도 어긋난 존재가 인간이었다

정보를 모으고 인간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고 다시 가설을 세우고 예측을 하지만 그 에측은 번번히 어긋난다,

이렇게 예상하면 저렇게 행동하고 이런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만큼이나 다양하다,

화난 표정이 단순하게 화가 났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눈물이 술프기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웃고 있다는 게 기쁘거나 웃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은결은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으듯 품어가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처음엔 수줍게 다가와 오빠라고 부르던 소녀가 어느 순간 너라고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엔 나를 내려다 보게 되도록 자라는 시간동안 은결은 여전히 소년의 말간 얼굴을 하고 그자리에 계속 있었다.

은결을 움직이게 했던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멍한 눈빛으로 다시 골목 빌라로 돌아고고  또래보다 먼저 세상을 알아버리고 적응해버린  소녀는 자라서  숙녀가 되지만 삶이 만만치 않다, 골목에서 공부를 잘 했을 소년은 세상은 넓고 세상엔 저같은 아이들이 무수하게 많고 더 나아가 더 뛰어난 녀석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한두가지 표정을 가졌던 아이들은 다양한 표정과 걸맞는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여러갈래로 너무 많이 나뉘어져 있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배워가고 어떤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본능적인 반응과 표정 감정을 이어나간다,

 은결에게는 절대 풀리지 않은 공식이 없는 문제처럼 다가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수 만큼의 공식이 제각각 존재하고 그 공식을 모두 입력하려 든다면 은결의 엔진은 터져버릴 것이다, 인간도 모든 인간을 알고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공감할 수 잇는 인간의 범위는 정말 하찮을만큼 적은 부분이다,

은결에게 그런 인간의 변화는 따라잡기 벅차지만 언제난 초기회하지 않고 그대로 데이터로 축적하고 남겨둔다,

그에게 대상의 어떤 감정 어떤 표현 어떤 언어나 비언어 그 모두가 하나의 자료이며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그냥 당연했었다

희노애락을 느끼는 일.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 모르고도 아는 척 하는 것 좋으면서 아닌척 하는 것 아니면서 좋은 척 하는 일들이 어쩌면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하고 숙자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 모든 과정은 광장히 순간적인 시간이다,

생각하는 순간 행동하고 느끼는 순간 표정이 드러난다,

그게 인간이다,

그러나 은결에게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행동과 표정 모든 인간사의 일들은 언제나 낯설다, 은결의 눈을 통해 보는 인간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존재였나 새삼 놀라게 된다,

저마다의 개성이나 저마다 가지는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이 결국은 어떤 데이터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제각각의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지만 결국은 그것조차 어떤 경우에는 어떠한 결과라는 공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존재 공식이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 은결

그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가 만들어진 계기가 무엇이건간에 그의 몸속에 흐르는 것이 피도 아니고 따뜻한 체온도 없지만

그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사람만도 못한 사람

인간 이하의 인간은 여전히 우리주변에 있고

나도 어느 순간 어느 포인트에서 인간임을 잊거나 저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이어서 위대하다

사람이어서  품위있게 살아야한다는 것

사람이어서 아름답게도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람이어서 무의미해보일지라도 해야할 일이 있을거라는 것

로봇 은결을 보면서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지면서

이제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부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 왔다 

 

차가운 겨울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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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12-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가운 겨울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이라니, 꼭 봐야겠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3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작가를 많이 편애해서 사심가득한 추천이지만 님께도 좋은 독서였으면 바랍니다~^^

cyrus 2016-12-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만도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희망님은 그들보다 훌륭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른희망 2016-12-13 17:27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을~~*^^*
 

우리 부부는 국가관이나 사회관 같은건 잘 맞는 편이다,

광화문도 함께 나가고 뉴스를 보면서 다투는 일도 별로 없다,

다만 더 어려운 문제 그러니까 서로의 취향 입맛 취미는 정말 안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결혼 20년이 다되가는 지금 내가 아직도 이해하면서 이해가지 않는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의문은

남편은 자기 의견에 가족이 반대하는 걸 무지하게 싫어하고

배고픈 순간을 절대 못참는다는 것과 삼시 세끼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우리 부부싸움의 원인은  남편이 홈쇼핑서 보고 사고 싶어하던 소파를 내가 싫다고 했고 그래서 남편이 화가 났고 늘 화가 나면 휙 하고 나가는 게 싫어서 이번엔 내가 나갔다 올게 하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 그럼 밥은?' 이말에 더 뚜껑이 열렸고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고 아이들은 커서 손이 가는 상황도 아닌데

오로지 자기 밥만 생각하는 밥통같은... 그럼 마음에 가출을 했었다,

그리고 갈 데가 없어서 가 아니라 굳이 돈을 써서 어딜 가고 싶지 않아서 도서관에 앉아 종일 책을 읽었다,

 

 

굳이 이 책에서

"하늘로 가는 길"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 더 재미있던 건 그냥 그게 더 재미있을 뿐이었다,

뭐 남편을 살해하는 이야기라서 그런건 절대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다,

그냥 그 때 더 재미있었을 뿐이다,

 

그날 도서관 닫는 시간에 집에가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결국

저녁을 차려서 함께 먹은 것이었다,

밥.. 밥.. 밥....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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