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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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어떤 감정도 없이 담담하게 혹은 냉정하게 혹은 무심하게

대상을 묘사하거나 일상을 따박따박 순서대로 나열하는 글쓰기

그런 글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고 감정을 흐르게 하고 감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은 소소한 일상에 대해

내가 겪은 시시한 일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건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그런 사건의 흐름을 짚어내는 글을 쓰면서 스윽 알게 모르게 긴 여운을 주면 좋겠다고 욕심을 냈다,

결론적으로

글은 안쓰고 있고

써도 늘 읽어보면 감정과잉에 내 마음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징징대거나  쿨한척 하거나 그런 글만 쓰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서 다시 살폈다, 뭔가 약점을 잡야내겠다는 삐뚤어진 신념으로 문장들을 다시 홇어도  그녀의 문장들은 모든게 묘사고 담담한 서술이었다, 슬프다 기쁘다 아팠다 우울하다 괴롭다는 말이 없었다,  내가 졌다,,,

 

 

요새 고기가 땡기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릴 때 고기반찬만큼 편한게 없다,

볶아먹든 구워먹든 삶아먹든 고기란 그 자체로 밥상의 모든 걸 커버한다,

딱하나 커다란 접시에 상가운데를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는 뭘로 채우든 상관이 없다,

반면 나물찬은 너무 힘들다.

씻고 다듬고 삶고  데치고 혹은 생채로 양념을 만들어 무치고 그 타이밍도 딱 들어맞지 않으면

물이 흥건히 생겨서 금방 숨이 팍 죽어버리거나 너무 펄펄  살아서 금방이라도 밭으로 뛰어갈 기세거나,, 그렇게 차려도 뭔가 초라하고 티도 안나는...

그런데 자꾸 요새 그런 찬이 땡긴다는 거다,

그냥 뚝딱 콩나물무침을 하고 취나물을 데쳐 무치고  무 생채를 서걱서걱 비벼내는 그런 찬

그냥 찬밥에 그런것들을 척척 올려 한그릇을 들고 앉아 소박하게 때로는 청승맞게 먹고 말고 싶은 ...

책읽기도 뭔가 휘몰아치는 갈등과 구조대신 심심하고 밋밋한 이야기가 끌렸을까

이 소설집은 그냥 가정식 백반같았다,

주인공은 없이 그저 조연들 아니 엑스트라 찬들이 모여서 그럭저럭 먹을만해지는 ...

딱히 끌리진 않지만 질릴 일도 없고 어제처럼 먹고 내일도 또 먹어도 그만일거 같은

그런 단편 10개가 비슷한 맛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맛을 내면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낙엽이나 동전을 아래 놓고 그 위에 흰종이를 올린후 뭉툭하게 깍은 연필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들고 힘을 빼고 살살 칠해주면 연필 칠 앙래로 희미하게 동전이나 낙엽의 문양이 서서히 드러난다, 낙엽의 임맥이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평소에 무심했던 동전속의 다보탑이나 이순신장군의 얼굴  때로는 학 한마리가 나 여기 있소.. 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저 검은 칠처럼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색 위로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별일 아닌 일상들

하나도 특별할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사람들의 시시하기까지 한 삶들의 한 단편에서 우리는 서서히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럼에도 그 나름의 독특한 무늬를 가진 삶들이 드러난다,

 

뭐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 되지?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야기는 시작될 듯 시작될듯 주춤주춤거리다가 어느 순간 툭하고 끝이 난다,

우리 할머니가 뭘 잘하는지 물어보면서

베개에 묻은 침자국을 보면서

12살 차이가 나는 친구의 수술실 앞에서

와인잔에 막걸리는 마시다가

군복을 입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첫차시간에 집에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제멋대로  시작을 했다가 제멋대로 끝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어느 한토막을 툭 잘라서 보여준다면 이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에게는 의미있는 순간이고 시간이었던 그 마다마다의  시간이 타인에게는 무심하고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이룬다는 것

필부필부의 삶들이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쉬고 싸우고 한숨쉬고 놀고 위안되던 거 시간들이 차곡차곡 묘여 삶이고 역사가 된다,

긴 역사의 사간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던 전쟁 변혁  문화융성기  왕위 찬탈 외교 진군 정벌  그런시간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닐것이다,

그런 일들은 일상적이지 않아서 너무나 크고 버라이어티한 상황이라 기록되고 보존되겠지만 한사람한사람의 일상 그 사람들의 삶이 그 사이사이 빈틈을 매우면서 우리가 살아내고 살아온 역사를 완성시키는게 아닐까

 

이 소설집의 열가지 이야기는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들

절대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못할 한 순간의 이야기들

그럼에도 무의미하게 버려질 수 없는 그 순간을 포착해서 보여준다,

어떤 감정의 묘사도 없이 인물의 감정을 알 수 있고

어떤 대단한 사건도 없으면서 대단한 삶의 다이나믹을 보여준다,

별일 아니라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별일 아니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소함이 주는 가치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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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희망님이 쓰시고 싶은 글의 장르가 에세이에 가깝군요. 푸른희망님이라면 잘 쓰실 겁니다. ^^

푸른희망 2016-12-21 23:16   좋아요 0 | URL
아뇨 제가 쓰고싶은건~~~피칠갑도 목잘린 시체도 없지만 뒷 목이 서늘한 미스테리입니당=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