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구병모가 따뜻해졌다.

그 이전 작품이 따뜻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서늘하고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각성을 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마냥 흐물흐물 풀어지면서 행복하게 읽었다,

사실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고 그리고 사실 빨간구두당은 개인적으로 읽다 말았다,

고병권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그 책이 내게 왔을 때 내가 집중할 상황이 아니었고 우리의 만남 사이에 어떤 적절한 상황이 없어서 그냥 꺼끌거렸다고 할까,,,

이전 '파과"는 당시 그다지 호평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문체가 이렇게 길고 장황했던가 해서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읽혔고 아마 그때도 따뜻함을 느꼈던 거 같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위로받는 느낌이랄까,,,나는 그랬다,

 

낡은 동네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명정

그에게는 낯선 나라에서 얼굴을 모르는 며느리와 살고 있는 아들이 있고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다가 황망하게 떠나버린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오래동안 떨어졌던 아들은 시신을 찾을 수 조차 없는 사고로 먼저 갔고 그렇게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그에게 묵직한 택배상자가 배달되었다,

17살의 소년 모습을 한 로봇...

어쩌면 그 소년의 얼굴에서 인간보다 로봇보다 시체를 먼저 읽은 명정에게 삶은 살아 숨쉬고 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일거다.

이웃의 도움으로 로봇을 작동하고 함꼐 동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명정은 그 로봇에서 만약 둘째를 낳았다면 붙였을 이름 "은결"을 준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이제 우리는 타자가 아니라는 것

이제 너는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는 것

나는 너를 알고 너도 이제 나를 알거라는 믿음 그것이다,

로봇은 숫자와 영문으로 조합된 낯선  번호로 불리는게 아니라 살과 땀과 온도를 가진 은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명정의 삶에 스며들었다,

은결에게 인간의 세상은 언제나 미지의 세상이었다,

로봇의 연산과 정보체계에서 늘 한박자씩 혹은 한 뺨정도 어긋난 존재가 인간이었다

정보를 모으고 인간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고 다시 가설을 세우고 예측을 하지만 그 에측은 번번히 어긋난다,

이렇게 예상하면 저렇게 행동하고 이런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만큼이나 다양하다,

화난 표정이 단순하게 화가 났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눈물이 술프기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웃고 있다는 게 기쁘거나 웃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은결은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으듯 품어가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처음엔 수줍게 다가와 오빠라고 부르던 소녀가 어느 순간 너라고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엔 나를 내려다 보게 되도록 자라는 시간동안 은결은 여전히 소년의 말간 얼굴을 하고 그자리에 계속 있었다.

은결을 움직이게 했던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멍한 눈빛으로 다시 골목 빌라로 돌아고고  또래보다 먼저 세상을 알아버리고 적응해버린  소녀는 자라서  숙녀가 되지만 삶이 만만치 않다, 골목에서 공부를 잘 했을 소년은 세상은 넓고 세상엔 저같은 아이들이 무수하게 많고 더 나아가 더 뛰어난 녀석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한두가지 표정을 가졌던 아이들은 다양한 표정과 걸맞는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여러갈래로 너무 많이 나뉘어져 있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배워가고 어떤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본능적인 반응과 표정 감정을 이어나간다,

 은결에게는 절대 풀리지 않은 공식이 없는 문제처럼 다가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수 만큼의 공식이 제각각 존재하고 그 공식을 모두 입력하려 든다면 은결의 엔진은 터져버릴 것이다, 인간도 모든 인간을 알고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공감할 수 잇는 인간의 범위는 정말 하찮을만큼 적은 부분이다,

은결에게 그런 인간의 변화는 따라잡기 벅차지만 언제난 초기회하지 않고 그대로 데이터로 축적하고 남겨둔다,

그에게 대상의 어떤 감정 어떤 표현 어떤 언어나 비언어 그 모두가 하나의 자료이며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그냥 당연했었다

희노애락을 느끼는 일.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 모르고도 아는 척 하는 것 좋으면서 아닌척 하는 것 아니면서 좋은 척 하는 일들이 어쩌면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하고 숙자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 모든 과정은 광장히 순간적인 시간이다,

생각하는 순간 행동하고 느끼는 순간 표정이 드러난다,

그게 인간이다,

그러나 은결에게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행동과 표정 모든 인간사의 일들은 언제나 낯설다, 은결의 눈을 통해 보는 인간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존재였나 새삼 놀라게 된다,

저마다의 개성이나 저마다 가지는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이 결국은 어떤 데이터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다,

제각각의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지만 결국은 그것조차 어떤 경우에는 어떠한 결과라는 공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존재 공식이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 은결

그가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가 만들어진 계기가 무엇이건간에 그의 몸속에 흐르는 것이 피도 아니고 따뜻한 체온도 없지만

그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사람만도 못한 사람

인간 이하의 인간은 여전히 우리주변에 있고

나도 어느 순간 어느 포인트에서 인간임을 잊거나 저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이어서 위대하다

사람이어서  품위있게 살아야한다는 것

사람이어서 아름답게도 살아야 한다는 것

사람이어서 무의미해보일지라도 해야할 일이 있을거라는 것

로봇 은결을 보면서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지면서

이제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부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 왔다 

 

차가운 겨울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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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12-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가운 겨울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이라니, 꼭 봐야겠습니다~^^

푸른희망 2016-12-13 17:26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작가를 많이 편애해서 사심가득한 추천이지만 님께도 좋은 독서였으면 바랍니다~^^

cyrus 2016-12-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만도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희망님은 그들보다 훌륭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른희망 2016-12-13 17:27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을~~*^^*